윤동주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읍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오,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오,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詩(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佩(패), 鏡(경), 玉(옥) 이런 異國(이국) 少女(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쓰 짬,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詩人(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하늘과바람과별과시, 1946년; 1941년 11월 5일 작, 연희전문학교; 한국현대시문학대계 8, 지식산업사, 1980)
*프랑시쓰 짬: Francis Jammes. 프랑스의 시인, 소설가, 극작가이자 비평가이다. 프랑시스 잠은 창작하는 데에 있어 큰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던 베아른과 바스크 지방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냈다. (위키백과)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에서 평생 사랑과 생명을 노래한 전원시인 프랑시스 잠(1868~1938). 그는 절친한 벗 앙드레 지드와 알제리를 여행한 것과 잠깐 동안의 파리 생활을 제외하고는 외딴 산골 마을에서 지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껴안고 어루만지는 포용과 모성의 시인, 세기말 프랑스 문학의 퇴폐적인 요소를 씻어낸 자연주의 대가로도 꼽힌다.
그의 작품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겸손과 온화로 이끌어주는 것들이었다. 고답적이고 난해한 시에 넌더리를 내던 독자에게는 청순한 샘물과 같았다. 이른바 ‘잠주의(Jammisme)’라는 문학운동까지 생겼다.
그를 좋아한 시인들이 많았다. 릴케, 말라르메 등 서양 시인뿐 아니라 동양의 윤동주와 백석도 그를 사랑했다. 릴케 소설 《말테의 수기》에서 청년 말테가 반한 시인은 당대 최고의 파리 시인들이 아니라 ‘맑은 공기 속에 울려퍼지는 종소리 같은 시인’ ‘자기 집 창문이나 아련히 먼 곳을 비추는 책장의 유리문 이야기를 해 주는 행복한 시인’ 프랑시스 잠이었다.(한경, 고두현, 2017. 9. 25.)
*라이넬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 오스트리아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다.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다. (위키백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는 1875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장교로서 출세하지 못한 하급관리 아버지와 허영심 강한 어머니의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일곱 살 때까지 여자 옷을 입고 키워졌다. 여덟 살 때 부모가 이혼하고 릴케는 아버지의 뜻을 좇아 육군 군사학교에 적을 두었으나, 섬약한 시인의 감수성을 타고난 데다 병약하여 중퇴한다. 그 뒤 20세 때인 1895년 프라하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예술사와 문학사를 공부하였고, 곧이어 1896년 뮌헨 대학으로 옮겨 예술사, 미학 등을 공부하였다.
1897년, 릴케는 성공한 작가이자 평론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열네 살 연상의 여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만나게 된다. 1899년과 1900년 2회에 걸쳐서 루 살로메와 함께 러시아를 여행한 것이 시인으로서의 릴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1902년에는 파리로 가서 조각가 로댕의 비서가 되었다. 로댕과 한집에 기거하면서 로댕 예술의 진수를 접한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 6월 스위스의 어느 문학 단체의 초청을 받아 스위스로 갔다가 거기서 영주하였다. '두이노의 비가(Duineser Elegien)'나 '오르페우스에게 부치는 소네트(Sonnette an Orpheus)' 같은 대작이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릴케의 문학이 처음부터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05년에 씌어진 '기도시집(祈禱詩集)'을 통해 비로소 릴케는 평단과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시작했다. 1907년 발표한 '신 시집'에서는 한층 더 성숙된 그의 시세계를 선보인다. 또한 이 무렵 로댕과 함께 일하면서 조각의 세계를 통해 사물을 보는 눈이 더욱 깊어지게 된다.
1910년 만들어진 소설 '말테의 수기'도 릴케 문학의 완숙기에 창작된 중요한 작품이다. 덴마크 출신의 젊은 시인 말테가 파리에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수기 형식으로 담은 이 소설은 릴케의 문학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신 시집'에 대응되는 산문으로 된 작품이다. 그동안의 시들이 상징주의자의 순수시였다면, '말테의 수기'는 실존주의자적 관점으로 만든 첫 작품이다.
릴케의 문학세계와 삶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수많은 여인들이 스쳐지나갔다. 수많은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여인은 단연 루 살로메다. 릴케가 22세였던 1897년, 당시 36세인 루 살로메를 만나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루와의 만남은 릴케의 인생에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하면서도 따뜻한 모성의 여인이었다. 시원하면서도 강렬하고 자유분방한 그녀의 정신세계는 또한 릴케의 젊은 열정과 만나 불꽃을 튀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만나자마자 릴케의 가슴은 루 살로메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릴케에게 루 살로메가 각별했던 것은 그가 한 해 전에 읽은 그녀의 에세이 덕분이기도 했다. 루의 에세이 '유대인 예수'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은 릴케는 익명으로 그녀에게 몇 편의 시를 우송하기도 했다. 그녀의 에세이를 탐독하고 또 함께 했던 각별한 시간을 추억하는 젊은 시인에게 루도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 사이는 급진전되어 금세 연인 사이가 된다. 루는 릴케에게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을 알려주었으며, 나아가 러시아 문학의 세계를 소개해 주었다.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1861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미모에 지적 편력이 더해져 평범한 여자가 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21세 때 스위스로 건너온 루는 38세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33세의 철학자 파울 레를 만난다. 두 사람 모두 루에게 빠져들었으나 루는 레를 선택해서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자 니체는 패배감과 상실감으로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다. 당시 니체는 실연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열흘 만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Also sprach Zarathustra)'를 탈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레 역시 오래 가지 않아 루에게서 버림받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한다.
루 살로메는 26세 되던 때 베를린의 문헌학자 프리드리히 칼 안드레아스 교수와 우정 관계를 전제로 결혼했으며, 28세에는 극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과 사귀었다. 36세 때는 22세의 문학청년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만나 러시아 여행길에 나섰다. 루를 향한 릴케의 사랑은 온 영혼을 다한 것이었지만, 루는 릴케의 어두운 영혼을 오래 감당할 수 없었다. 그 뒤 루는 국제정신분석학회 바이마르 회의에서 프로이트를 만나 그 밑에서 정신분석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다 프로이트의 제자 타우스크와 한때 열애에 빠지기도 했으나, 루는 타우스크를 버렸고 그 역시 루가 떠나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그녀를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므파탈이었다는 부정적 평가도 없지 않다. 그러나 루는 사랑과 성을 남녀의 인생을 잡아끄는 커다란 자력의 운명적 힘으로 여겼고, 그러면서도 사랑과 성에 자신을 구속시키지 않은 자유의 여신이었다는 평가가 대세를 이룬다. (뉴스핌, 이철환, 2017. 8. 30.)
*북간도: 간도(間島)는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의 조선인 거주 지역을 일컫는 말로 두만강 북쪽인 연변 지역을 '북간도'(또는 '동간도'), 그 서쪽인 압록강 북쪽 지역을 '서간도'라 부르기도 한다. (위키백과)
Note:
옛날에는 구름과 별이 TV이었겠다. 요즈음엔 유튜브가 열일한다. 도시에선 별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 밤 마음 속의 별을 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