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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안 Feb 06. 2022

가족이라고 다를 게 있나

나와 살게 된 이후로 본가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은 특별한 일이 되었다. 1년에 딱 이틀, 설과 추석 당일이 그날이다. 이번 설에도 나는 의무감에 하루 저녁과 다음날 점심까지의 시간을 보내고 왔다. 굳이 즐거운 마음이 아닌 의무감이 동반되었던 이유는 나의 아버지라는 존재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라는 사람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언제인지도 기억이 없을 정도로 성장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존재가 싫었다. 그다지 가진 것도 없고 많이 배운 것도 없는 그 시대 평범한 사람인데,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 사람이 보기 싫어졌다. 그리고 자존감 약한 사람이 간혹 자기보다 약자에게 상처를 화풀이하는데, 그 대상을 가족으로 삼았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부터는 용서할 수 없게 미웠다. 


아직도 나에게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는데, 고등학생이었던 어느 저녁 그 사람이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왔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지금은 그 일들이 어떤 일들인지 대충 짐작은 되지만, 그 시절 어린 나에게는 그가 술에 취해 들어와서 예민하게 굴고 가족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날도 가족들과 마찰이 생기더니, 화를 못이겨 현관문 유리를 발로 차서 박살을 내었다. 굵은 유리 파편이 여기저기 튀어 난장판이 되었고, 유리를 밟은 내 발에도 피가 났다. 그 사람의 발도 찢어져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기분을 알아주길 원하는 말을 줄줄이 쏟아내었다. 그날이 한글날이었다. 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한글날이 되면 세종대왕보다 이렇게 차근차근 흘러가준 시간에게 더 감사하다. 


그래서 나에게 父情은 영원한 미지의 영역이다. 아버지를 위해 눈물 흘리거나 애틋해하는 장면을 보면 도통 그 감정이 뭔지 모른다. 대학교 시절, 친구가 과방에서 무얼 골똘히 고민하고 있길래 뭐냐고 그랬더니 아버지 생신 선물을 사 가야 하는데 뭘 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무슨 과도한 이미지 관리냐 싶었지만, 학교 다니면서 가족 간에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당연한 문화라는 것을 안 순간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그의 생일은 축하의 의미가 1도 없는 하루치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대화해본 지 몇 년 되었다. 따로 살게 되면서 서로 얼굴 볼 일도 별로 없고, 간혹 보더라도 솔직히 그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번 설에 오랜만에 보니 머리가 많이 세어있었다. 약간 낯설긴 했지만, 그게 안타까워 집나갔던 효심이 불타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냥 티비에서 얼핏 기억나는 사람의 근황을 다시 보게되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 정도였다. 아마도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그에 대한 미움이 이제는 조금씩 증발하고 있는 것 같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고 미움의 궁극은 무감정이라고 하던데, 나도 그에게서 초연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간혹 가족에게, 그것도 부모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듣는다. 미안하지만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마음의 칼로 이미 깨끗하게 잘라낸 부자의 인연을 다시 이어붙이면 어떻게든 예전의 감정이 되살아날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제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있을 수 있으나, 지난 날의 그 기억들을 뒤로 할 정도로 나는 관대하지 않고, 내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았다. 그저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는 나와 무관한 존재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되는 친구들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좋은 기억이다. 유년시절의 기억은 평생을 가지고 가는 재산이다. 그러니 너도 자식에게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주도록 노력해라. 이 말을 꼭 한다. 물론 귀담아 듣지는 않는 거 같은데, 나는 진심으로 그 말을 한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가족은 쉽게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정성을 쏟아 보살펴야 하는 소중한 '인간관계'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이라고 다를 게 없다. 내가 준 애정만큼 돌려받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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