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반 전에 '너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지 마세요'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었다. 7급 공채 시험이 200대 1에 근접하던 시절이었고, 공직 쏠림 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창창한 젊음들이 노량진 골목에 처박혀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내 눈에도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선험자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생각하라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쭙잖은 조언을 건넸었다.
지금은 공직에도 눈길을 달라고 애원할 판이다. 200대 1은 고사하고 몇 십 년 만에 최저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본다. 처음에는 공공기관이 학령인구가 줄어 그렇다는 분석을 내놓았었다. 그런데 모두가 안다. 학령인구가 줄다 못해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매력 있는 직업에는 사람이 몰린다. 학령인구가 줄면 그만큼 빈자리가 내게 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인데 경쟁률이 왜 떨어질까. 직장 때려치우고 나와서라도 공무원 시험을 볼 텐데 말이다. 현상의 원인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구차한 변명이었고, 이제는 그런 변명마저도 쑥 들어갔다.
공무원의 직업적 매력이 떨어졌다. 그것도 많이 떨어졌다. 직업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지위와 인식을 완전히 갈아엎을 정도로 확연하게 떨어졌다. 이것 이외에 다른 근본적 원인은 없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문제의 원인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너희가 애를 너무 안 낳아 이 사달이 났다고 할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을 사람들이 그저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다.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공무원의 인기가 떨어진 이유가 뭘까. 이미 언론에 여러 분석이 나와서 새롭게 내세울 건 없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물가가 치솟았고, 가뜩이나 박봉이었던 월급은 완전히 소멸 직전이다. 또한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의 수익률이 훨씬 앞선다는 것을 모두가 체감해 버린 상황 속에서, 목돈 즉 시드머니를 마련하는 데 공직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게다가 꽉 막힌 조직문화와 촘촘한 직위에서 오는 불필요한 의전은 직업적 일상을 숨 막히게 한다. 민원응대를 몇 번 하면 인간혐오증에 걸릴 것만 같고, 워라밸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그나마 버틸 이유였던 연금도 박살이 나버렸고, 이런 상황 속에서 안 짤린다는 것은 장점이라기보다는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고난의 무한루프와 같은 말이 돼버렸다. 정년 때까지 이렇게 근근이 살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충격적인 것을 하나 더 알려주려고 한다. '공무원의 인기하락'이라는 현상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나다 보니 그것의 원인도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입사했던 7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딱히 무엇이 최근에 더 특별하게 안 좋아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무원은 (눈물 한번 닦고) 원래 이랬다.
그렇다면 왜 최근에 지원자가 갑자기 줄까.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사소한 이유'가 나오는데, 나는 sns를 비롯한 개인미디어 발달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한 3~4년 전에 현직 공무원들이 자신의 월급 명세서를 인증하는 컨텐츠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이 될까말까 하는 명세서를 인증하면서 자기가 얼마나 고생스럽게 사는지 전시하는 내용이었는데, 같은 공무원 입장에서 신기했던 건 거기에 달리는 댓글들이었다. 거의 전부 '뻥치지 말라'는 식이었다. 아마도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알바 수준의 월급을 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그때 올라왔던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사실이다. 그 돈으로 어떻게 사냐고 눈 동그랗게 뜨고 묻지만 놀랍게도 그 돈으로 살아왔다. 다만 최근에는 물가가 올라서 고통이 더 커졌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이런 실상이 알려져서 이제는 공무원의 월급 고백은 진부한 컨텐츠가 돼 버렸다.
공무원의 워라밸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공무원 하면 업무 널널하게 하다가 6시에 칼퇴 따박따박하는 사람들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한다. 격무부서의 경우 웬만한 민간기업 뺨을 후려치고도 남고, 말 그대로 격무 때문에 건강이 망가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나도 그렇고 요즘 들어오는 신입들도 가장 놀랄 때가 공무원이 바쁜 직업이라는 사실을 마주했을 순간이다.
최근에 연금 수준이 안 좋아진 것을 급격한 인기하락의 요인으로 말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마도 지금 들어오는 사람들은 퇴직했을 때 용돈 연금이 돼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게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당사자인 나도 워낙 내용이 복잡해 구체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이미 내가 들어왔을 때도 연금은 많이 줄어있었고, 내 선배들도 지속적으로 줄고 있었다. 물론 지금 들어오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약간 유리한 점이야 있겠지만, 이것이 경쟁률을 거의 3분의 1토막 낼 정도로 엄청난 차이는 아니다. 이것 역시 공무원의 실상이 많이 알려진 상황과 무관치 않다. 그로기 상태에서 피니쉬블로우를 맞은 셈이라고 할까.
그 외 답답한 조직문화니 민원응대니 하는 것들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사는 세상에 예나 지금이나 있던 것인데, 수많은 유튜버들의 브이로그와 블로거들의 고백과 블라인드 속 푸념들이 쌓이고 쌓여 공무원을 둘러싸고 있던 장막이 걷히면서 그 극한의 면모가 드러났을 뿐이다. 느낌상, 이제야 비로소 공무원도 직업의 하나로서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직업 공무원제도가 이렇게 실현될 줄은...
공공서비스 안정을 위해서 공직에 유능한 인재가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한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공무원은 그러기엔 장점이 별로 없는 직업이다. 모든 직업에는 장단이 있고 플러스 마이너스를 상쇄하고 남은 것을 근거로 우리는 직업을 선택한다. 더러워서 못해먹을 직업도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을 봉급을 주면 가는 이치와 같다. 과연 공무원은 플러스 마이너스를 상쇄하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 단점은 너무 구체적이고 많은데, 그걸 상쇄할 만한 장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현직에 있는 나에게도 그렇게 보이는데, 바깥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까. 정보가 많아지면서 공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냉정해졌다. 직업으로서 공직만의 장점이 절실한 시점이다.
얼마 전에도 부서에서 한 명이 나갔다. 계약임기제로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2주 만의 퇴사였다. 예전에는 임기제도 못 들어와 난리였는데 요즘은 제발 있어달라고 해도 아니다 싶으면 그냥 나간다. 선택에 망설임이 없다. 그만큼 매력이 없다는 반증일 것이다.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럴 때마다 무력감을 많이 느낀다. 기왕 하는 거 열의 넘치고 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날이 갈수록 쉽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까 걱정이다. 매력 있는 직업으로 재탄생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악화되어 게토화가 될 것인가. 중요한 변화의 시점에 와있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