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내게 주는 담담한 한 마디
다이어리를 쓴다. 일기는 아니고, ‘자동차보험 갱신’이나 ‘미용실’,‘A와 술 먹고 개 됐어 ㅠ.ㅠ’ 같은 단편적 일들을 적는다. 숫자를 기억하는 능력이 ‘해달이 하늘을 나는 재능’ 정도라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친구의 생일이나 보험 갱신일 같은 것을 통째로 날려 먹기 때문에 취하는 어쩔 수 없는 조치다.
해마다 이맘때면 다음 해의 다이어리를 열고 탁상용 달력을 펼친 후 양력 혹은 양력으로 변환한 음력 등 기념일들을 적어 넣는다. 뇌의 반쯤은 묵묵히 기입을 하고, 나머지 반은 반성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고 좌절도 아닌 감정을 다독다독한다. 그것들을 굳이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새해에 세웠던 목표 중 해낸 것은 하나도 없군.”, “여전히 똑같군.” 정도다. 좀처럼 발전이 없다.
스스로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너무 뻔히 들여다 보이는 실수를 했을 때’라던가 ‘시간 계산을 잘못해 어이없이 기회를 놓칠 때’, ‘내 책임이 분명한 데도 미적거리다 여러 사람 피해 보게 했을 때, 등등 경우의 수는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완벽하지 못해서’ 화가 나는 것이다.
애초 원인이 ‘나’ 에게 있으니 타인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화풀이를 하고 나서 더 좌절하기도 한다. 완벽하지 못한 데다가 멍청하기도 한 스스로를 발견하면 어디 어두운 구석에라도 기어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저 잊는 것이 최고라고 덮어 버릴 수도 없다. 좋던 싫던 ‘나’는 내가 평생 데리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 여기저기 나이테를 세기다 보니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는 결코 완벽할 수가 없다.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진화론을 믿던 그렇지 않던 우리는 생물이다. 지구의 자장 안에서 모든 생명체는 먹고 마시고 호흡해야 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식물이 물을 빨아들이고 박테리아에서 양분을 얻는 것처럼 사람은 어디에서인가 얻은 음식을 섭취하고 배설하며 생명을 이어 나간다. 스님들은 개미 한 마리 덧없이 밟아 죽이지 않기 위해 발걸음 조차 조심한다고 하지만 그래 봐야 다른 생명을 취하여 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같다.(채식을 하는 것도 결국 다른 생명을 죽여야 가능하다)
하지만 생명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그것을 ‘가장 덜 폭력적인 방법으로’ 취하겠다는 입장과 고대 로마의 귀족처럼 매일 밤 향락을 위해 먹은 것을 토해내고 또 먹고 마시며 ‘나에게 조차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는 것에는 원론적인 차이가 있다.
시험을 볼 때도, 일을 할 때도, 아이를 키울 때에도 우리는 완벽을 꿈꾸고 도달하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이 땅의 생물인 우리의 운명은 먼저 자신을 돌보고 잘 다독인 후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시험공부에 쫓기다가도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일을 하다가도 속이 뒤틀리면 화장실로 뛰어갈 수밖에 없다. 아이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며칠 밤을 새우게 되면 부모는 잠깐씩 정신을 놓게 되어 있다. 그런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이기에 가져야 하는 숙명 같은 것이다. 머리로 아무리 이것이 훌륭하다 저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 떠들어봐야 스스로에 대한 미움만 쌓일 뿐이다. 이런 미움으로는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조차 끓일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나를 위해주고 나를 가장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적어도 내가 ‘최선을 다 했는지’ 정도는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를 제외한 외부의 상황들은 대개는 억압이고 고난이다. 떠지지 않는 눈을 부릅뜨고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억압이고 침대 가운데로 꺼져 버리고 싶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회사에 가야 하는 것도 고난이다. 술 마신 다음날 잔소리를 듣는 것은 힘겨운 일이고 잠깐 딴생각을 하면 쌓여있는 집안 일거리를 바라보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용케 버티고 여기까지 살아 있다면, 그래서 비록 튀어나온 부분 여기저기 잘려 버렸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면, 이제 다시 그 뭉툭해진 형상을 이리저리 만져 나의 미래의 상을 조각하면 된다.
‘완벽함’ 보다는 ‘최선’이, ‘최선’보다는 ‘잊지 않고 있음’이 낫다. 내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기억하고 주어진 내 생명을 예쁘게 다듬으며, 될 수 있는 한 주위에 가장 덜 폭력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동화의 한 장면처럼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벌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쌓이고,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천천히 형성되는 것이다. ‘잊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발전일 뿐, 자고 일어나니 창문 앞에 ‘우뚝 솟아있는 건물’ 같은 완벽함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발터 벤야민은 ‘행복하다는 것은 경악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깨달을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만하면 됐고, 충분하다. 하지만 이제 또 걸어가자. 이것이 오늘 나에게 주는 토닥토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