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게 하라

나를 연애하게 하라~

by 지안

소설 ‘엽기적인 그녀’는 1999년 당시 유행하던 PC통신 유머 사이트에서 출발했다. 업데이트에 감질내며, 참았다가 (미니시리즈를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 번에 몰아보는 심정으로) 출력해서 읽던 친구들도 여럿 됐다. 얼굴이 ‘많이 예쁘고’ 성품이‘좀 엽기적’이긴 했지만 여주인공은 대학생이었고, 성격이 ‘믿지 못할 정도로 착하’긴했지만 남주인공 역시 평범한 학생이었다.


드라마 계의 전설로 남은 2000년 가을동화도 2002년 겨울연가도 출생의 비밀이니 말도 안 되는 설정 같은 것이 얽혀 있었지만 (이런 것이 없으면 도무지 드라마가 성립되기 어려우니 그러려니 해 줄 맘이 들 정도의) 넘사벽 수준은 아닌 주인공들이 때로는 울고 가끔 웃는 연애를 했다.

주말에 보고야 말핬다. 저 심각한 나이차의 커플을....


주말, 훤칠하고 전지전능한 도깨비 남주의 드라마를 보다 흠칫했다. 이제 연애는 끝난 것인 가. 이제 평범한 남녀의 연애라는 것이 가능한 시대는 끝났는가….


2007과 2016년의 공유는 비슷하다. 나이를 안 먹네. 드라큘라냐..-_-;;;


2007년의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공유는 기껏해야(으응?) 재벌 3세였다.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 해. 갈 때까지 가보자.” 같은 오글거리는 멘트는 요즘도 늘상 나오는 것이니 이해한다. (거짓말! 실은 좋아한다. 까흥~) 그런데 이번엔 도깨비다. 여주가 원하는 모든 곳에 순간이동으로 나타나고, 돈 그까짓 것, 금 나와라 뚝딱 이면 넘쳐흐른다. 이래 가지고야 스케일이 다르다.


생각해 보면 근래의 드라마 남주들은 점점 전능한 자가 되고 있다. 외계인(별에서 온 그대) 이거나, 타인의 생각을 다 알아듣거나 (너의 목소리가 들려), 만화에서 튀어나온 완벽남(W)이다. 여주인공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상대하기 벅찬 남주와 영혼 정도는 바꿀 수 있거나(시크릿 가든), 최고의 배우(별에서 온 그대)이거나, 귀신과 이야기 정도는 할 수 있는(주군의 태양) 특별한 사람이다. 평범한 사랑은 모두 과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응답하라 1988이나 1994,1997이 그렇다. 그러고 보면 현실적인 사랑은 IMF시대 이후로 종언을 고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나를 연애하게 하라!!


돌아보면 ‘연애’란 특별한 경험이다. 호르몬 탓이라지만 갑자기 벌렁대는 가슴에 놀라고, 자신의 식탐보다 상대방의 식성에 집착하고, 별 뜻 없는 말 한마디에 하루 기분을 잡치는 경험은 연애 중이 아니고서는 경험하기 힘들다. 음악 취향이 바뀌고 스타일이 재편되고 기상시간이 바뀌는 변혁은 이 시기가 아니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늦어진 귀가시간에 대한 변명거리가 삼 만개쯤 생기고, 데이트 자금 융통을 위한 거짓말도 오만 팔천육십 개 정도 마련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연애란 나보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배우고, 이전의 나와 결별하게 하며, 부모로부터 독립하게 만드는 엄청난 순간인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날아간 것인가? 모든 평범한 연애는 끝난 것인가?


바쁘다는 아우성은 커지고, 이동시간은 핸드폰과 함께 하며, 혼밥이나 혼술은 꼭 정복해야 하는 필살기 정도로 여겨진다. 보자, 바쁘게 뛰어다니며, 눈은 핸드폰을 향해 있고, 혼자 밥 먹고, 술 마시면 연애는 언제 하나? 견우는 늦은 밤 지하철 안에서 술 취한 엽기적인 그녀를 만난다. 핸드폰에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야 될 일이 아니다. 일단 마주쳐야 연애를 하던, 싸움을 하던 할 터인데, 만날 시간도 장소도 없다. 우발적인 어떤 마주침도 없이 매일 일상적 공간에서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징그러운(부장님 같은) ’ 사람들과 하루를 보낸다. 슬프다.


내가 예전에 좋아하던(지금은 고인이 되어 버려서…ㅠ.ㅠ) ‘달빛 요정 역전 만루홈런’은 살아생전 “나를 연애하게 하라”라고 목이 터지게 외쳤었다.


<나를 연애하게 하라 사랑하게 하라. 뜨겁게 활활 타오르게 하라>


그렇다. 매일이 지루하고 일상이 지겹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연애하자. 연애 좀 하자.


무찌르기엔 좀 너무 잘생기신 드라큘라님들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라가 짓밟힌 것에 분노한 영주는 ‘드라큘라’로 불멸의 삶과 완벽한 악의 화신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그런 절대악을 처단한 것도 조나단과 미나라는 평범한 연인이다. 연애하라.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범접할 수 없는 드라마 주인공들에 대항하는 방법 역시 평범한 연애뿐이다! (어차피 도깨비를 찜 할 수 없으니 딴지 좀 걸어 본 것은 비밀..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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