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끼리 김밥을 먹고 있을 때, 내년 봄 결혼을 앞둔 여직원이 고개를 푹 숙이며 ‘시금치가…’라며 중얼거렸다. 일순 씹던 입을 멈추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뭐? 왜? 김밥이 이상해?
젓가락까지 내던지고 고개를 떨궜던 그녀는 일행들이 입 속의 밥을 정리하고 다음 김밥을 집어야 할까 사장을 불러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쯤 말을 시작했다. 각자의 집에 인사를 드리고, 살 곳을 정하고, 혼수에 관해 의논하는 시기라고 했다. 결론은 “여자들이 왜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아요.”였다. 김밥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머지 일행들은 안심한 표정으로 제각기 맘에 드는 방향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바야흐로 그녀는 연애라는 마라톤 완주를 마무리 짓기 위해 결혼이라는 스타디움으로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분명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지친 발걸음을 경기장 안으로 넣는 순간 다시 한번 펼쳐진 트랙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처음 뛰는 그녀로서는 몇 바퀴를 돌아야 끝인 지도 알 수 없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은, 둘이 있다는 후 사건적인 조건 아래 이루어지는, 세계의 경험 또는 상황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독립된 인격체로 만나서(후 사건적 조건 아래) 세계 또는 상황을(두 사람이 함께하는 모든 시간) 경험한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랑에 빠지면 홍대 앞 9번 출구 앞에서도 헤매지 않고 상대방의 얼굴을 즉시 알아볼 수 있다. 사내 커플인 선배 한 분은 (사내커플임을 밝히는 이유는 두 사람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남편을 처음 봤을 때 얼굴 뒤로 후광이 비추더라는 경험담을 말해주기도 했었다.(내 경험이 아니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여야 했다)
말하자면 연애란 막 시작한 연극 무대 같은 것이다. 막이 올랐고 무대 위에는 두 주인공뿐이다. 각자의 머리 뒤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객석은 보이지도, 볼 이유도 없다. 각자에게 집중하면 그만인 것이다. 어쨌거나 무대의 주인공들이니까.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처럼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수가 많아서 가끔 두 가지가 비슷한 성격의 어떤 것이 아닌가 오해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그것도 매우 다르다.
결혼은 연극이 끝나고 극장 안 조명이 들어온 때와 같다. 둘 뿐인 줄 알았던 주인공 뒤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던 스탭과 감독과 기타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인사를 한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도 보인다.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위키피디아에서 ‘결혼’을찾아보면 “두 성인의 사회적 계약”이라고 적혀있다. “결혼은 상호간 성기의 독점 사용에 대한 계약과 신뢰”라고 말한 칸트의 쌀쌀맞은 정의가 아니더라도 결혼에는 어쩐지 싸늘하고 매섭고 계약적인 냄새가 난다.
그렇다. 결혼은 엄연히 ‘민법’에 속해 있으며 ‘가족 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해 성립된다. 민법 상 결혼은 ‘상대방의 성행위, 노동력, 재산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배우자의 가족과 인척관계를 만드는’ 계약인 것이다.
결혼. 영어로 Wedding인이 단어의 Wedd는 Weddian이란 단어에서 유래됐다. 어원으로 올라가 보면 ‘경마에 돈을 건다’, ‘신랑이 신부 아버지에게 지불하다’ 정도의 뜻이다. 벌써 좀 싸해진다.
고대 서양에서는 근친혼을 막기 위해 신부는 다른 부족에게서 데려와야 했는데 신부 아버지에게 줄 돈이 여의치 않을 경우 선택한 것이 약탈이었다. 사람 하나를 약탈하러 가는데 혼자 갈 수는 없다. 친구 몇을 동행한다. 그리고 몇 달이 됐든 몇 년이 되었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동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때쯤 되면 신부 측 가족들도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지금의 결혼식에도 남아 있다. 신부를 약탈하러 같이 가던 친구들은 ‘들러리’라는 이름으로 신랑 옆에 서고, 언제 신부를 찾으러 올 지 모르는 신부 측 가족과 싸우기 위해 오른손에는 칼을 들고 왼쪽에 신부를 세웠던 모습 그대로 주례 앞에 선다. 신혼여행은 납치한 여자와 떠나는 사랑의 도피(아무리 읽어 봐야 납치당한 여자의 의지 따위는 없다. 당연히 사랑도 없다)다. 허니문 베이비를 놀릴 일이 아니다. 어차피 베이비를 만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신혼여행인 것이다.
느꼈겠지만 결혼은 남자들의 입장에서 시작되었다. 생물은 진화를 하고 사회구조도 시간이 지나면 그에 걸맞게 모습이 변한다. 그러니 지금의 결혼은 저것과는 많이 다르기는 하다. 그렇지만 속성이 “계약"인 점은 변하지 않았다. 철수와 영희가 계약을 하면 자동적으로 영희는 철수 분의 관계까지, 철수 역시 영희가 그동안 맺고 있던 것까지 덤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오는 격이다.
자식은 한 가족의 피라미드 구성으로 볼 때 아래쪽에 위치해 있기 쉽다. 하지만 같은 자식이라도 아들과 딸의 위치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외할머니는 내가 야식으로 끓여먹은 라면 냄비를 치우지 않고 자면 야단을 치셨다. 뭐니 뭐니 해도 야식이란 먹은 다음 손끝도 움직이지 않고 쓰러져 자는 데에 묘미가 있다는 것을 모르셨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오빠가 같은 일을 한 경우는 무사통과였다. 덕분에 가끔은 오빠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기도 하고, 둘이같이 먹은 경우는 내 수저만 씻어 놓기도 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은 반드시 있다.
이런 구도는 결혼 한 이후에 명확해진다. 처갓집에 온 사위가 식사 후 설거지를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경우보다는 시댁에 간 며느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두 사람이 계약을 맺은 것은 분명한데, 아들의 위치는 피라미드에서 4.5 정도에 위치하고 며느리는 5 정도에 위치하는 것이다. 뭔가 억울하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미 계약은 끝났다고 한다. 낭패다.
두 사람만 살고 있는 집에 있을 때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4년 서울 가구 가사 분담 비율을 보면 ‘아내가 주로 하고 남편이 약간 도움을 준다’가 58%, ‘아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가 30%, ‘아내와 공평하게 나눈다’가 12%다. 결혼을 해도 야식 먹은 라면 그릇을 남편이 설거지할 경우는 12프로 밖에 안 되는 것이다. 육아의 문제는 제외하자. 시작하면 머리 터진다.
얼마 전 아내의 발 냄새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는 중국 남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외토픽에서 들었다. 결혼 7년 차의 남편은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는데, 아내는 잘 안 씻는 것은 라이프 스타일이므로 바꿀 수도, 이혼을 해 줄 수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잘 씻고 안 씻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생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무실 옆자리 부장님이 식 후 매번 트림을 하고 코를 후벼대는 것은 퇴근을 고대하며 참을 수 있지만(물론 참는 일이 만만치는 않다), 같이 사는 경우는 괴롭기가 이를 데가 없다. 대부분 신혼 초 싸움의 원인은 설거지 마친 그릇을 엎어 놓는 것이 맞느니, 바로 해 놓는 것이 맞느냐 같은 말도 안 되는, 하지만 하늘이 결단 나도 물러설 수 없는 종류의 일인 경우가 많다.
부부 사이에는 가벼운 실랑이 후 그릇이 제 위치를 잡는 선에서 끝나지만, 시어머니와 같은 일로 부딪힐 경우에는 답이 없다. 그 말이 법인 것이다. 피라미드의 밑바닥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헌법 아래 민법이지만, 가끔 헌법상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하기도 한다. 종교의 자유 같은 것이 그렇다.
밥 맛이 뚝 떨어졌다며 젓가락을 놔버린 그녀에게 마지막 김밥 꽁다리까지 다 먹은 후 조용히 말해줬다. 결혼을 선택했다면,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착해 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는 것뿐이다. 무의식 중에 하는 ‘착한 와이프’와‘예쁜 며느리’ 코스프레 같은 것은 애당초 포기해라.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말하고, 아니면 아니라고 끝까지 주장해라. 지금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찬스다. 피라미드 속에 편입되기 전에 자신의 자리를 적어도 신랑 정도에 맞춰 놓지 않으면 눌려 죽기는 그야말로 연탄불에 오징어 굽기다.
얼마 전 동성혼을 선택한 김조광수 감독의 인터뷰를 봤다.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인 감독에게 “요즘은 비혼자도 많고 이혼도 늘어나는 추세인데 굳이 결혼을 꼭 하고 싶은 이유가 뭐냐?” 고 묻자 대답했다. “이성애자들에게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지만, 동성애자들에게는 현행 법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할 수 없다고 하니까 더 하고 싶다.”
맞다. 결혼하면 내 재산도(그런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병원에 가서 보호자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도 있다. 내 보험료로 평생 잘 살게 해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일상을 공유하며 감정을 소통할 수도 있다. 그러니 현명하게 결혼하기 바란다. 결혼은 연애가 아니다. 퇴근 없이 이어지는 생활이다.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