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식탁에서 사각사각.
하루 종일 아이를 안아준 탓에 핏줄 하나하나까지 욱신거리는 듯한 묵직한 통증이 맴돌고,
허벅지엔 아직도 밥풀 하나가 끈적하게 붙어 있다.
거울 속 내 머리카락은 기름에 튀긴 듯 반쯤 떡져있고,
그제야 찾아온 집 안의 고요가 낮의 소란스러움을 삼켜버리는 듯하다.
누가 뭐라도 안 물어본 게 다행인 하루였다.
엄마, 물!
엄마, 배고파!
엄마, 엄마, 엄마!
나는 오늘 하루도 열두 번은 불렸고,
그 울림 속에 '나'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세상 모든 호칭이 '엄마'로 수렴되는 듯한 날들 속에서,
내 본래의 이름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듯했다
거실 불빛을 줄이고 조용히 앉았다.
그제야 문득 떠오르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아무도 보지 못한 하루의 구석에서
나도 모르게 적어둔 마음 하나.
“나는 오늘도, 사라지지 않기 위해 적는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출판 계약도 없고, 조회수는 보잘것없고,
대부분은 초안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쓴 순간만큼은
나는, 나로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에게 부엌은
끝없는 설거지와 식사 준비가 반복되는,
땀 냄새 가득한 공간이었다.
밥솥엔 하얀 쌀밥이 들어있고,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끓는
그 일상의 중심지.
하지만 이젠 다르다.
부엌은 이제 내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장소이자, 나를 잊지 않기 위한 피난처가 되었다.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장소.
가스레인지 앞에서 떠오른 문장을
냉장고 자석 메모지에 급히 끄적였던 날도 있었다.
그 문장은 아무도 보지 못했고,
내일이 되면 찢어져 쓰레기통에 들어갔지만,
그걸 썼던 순간만은 진짜였다.
예전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뭔가 바뀔 줄 알았다.
칭찬을 받거나, 돈을 벌거나, 내 삶이 반짝일 거라고...
그런데 이제는 안다.
글을 써도 세상은 별로 안 달라지고,
나도 여전히 어질러진 부엌을 정리하고 있을 거란 걸.
그런데도 계속 쓰고 싶은 건 왜일까?
아마도,
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엄마’가 아닌 나 스스로의 이름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모든 소리가 꺼진 집 안에서
살며시 펜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오늘도 한 줄을 적었다.
그리고 이 한 줄이 모여 언젠가 나만의 이야기가 될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