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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슐랭가이드 Nov 21. 2021

바쁘게 살지 마세요

 지친 몸을 알람 소리에 강제로 일으켜 세우고,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잠이 깨기도 전에 스스로를 다그친다. 이른 아침부터 정류장의 사람들은 오지 않는 버스에 발을 동동 구르고, 도로 위에서는 다른 차가 앞에 끼어들까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없는 좁은 간격을 두고 오매불망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며 빼곡하게 서있다.


 더 빨리 하라고, 더 속도를 내라고, 더 많이 바빠지라고, 매일을 수도 없이 강요받는다. 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을 뿐인데 그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시험받으며, 쓸모의 유무를 타인에 의해 결정받는다.

 존재만으로 존중받아 마땅할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존재의 필요를 결정받는다.


 목적이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는, 득달같이 달려드는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서 시시때때로 좌절하고, 자신을 비탄에 빠트리기도 한다. 압사당할 것만 같은 재촉에 시달리다가 계속하여 살아가는 것에 의문을 품고 누군가는 남들 몰래 깊숙한 곳에 숨어 삶을 포기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유가 사치인 삶을 산다. 세상이 정한 틀에 갇혀 정해진 시간을 보내고, 세상이 정한 규율에 따라 정해진 행동을 하며 하루를 산다. 때론 인간이 만든 인간답지 않은 규율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고 순응해야만 현재를 영위할 수 있고, 가끔 우리 중 누군가가 도전적인 눈매를 하고 고개를 들었다가 단두대에 올려지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살아가는지 영문도 모른 채, 달리기에만 여념이 없다. 옆사람이 지쳐 나자빠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가다간 제풀에 못 이겨 결국 모조리 혼이 빠져버려 주저앉을 수 있음에도, 우리는 희망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멈추지 못한다.


바쁘게 살지 않아도 된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

외면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떠날 사람이라면 이미 떠났다.

바쁘게 살아갈수록 삶은 오히려 탁해지고,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깊게 들여다볼 혜안을 점점 잃는다.

정작 돌아봐야 할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만다.

더 이상 담지 못할 만큼 가득 차 버려서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누군가가 말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고,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에 올랐더니 자신의 경조사가 있을 때면 입구에 신발이 가득했다고. 뒤늦게 찾아온 손님들은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입구에서부터 신발이 너무 많아 발도 들이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어느 순간 그가 그 자리를 내려놓을 즈음엔, 그 많던 사람들이 온 데 간데 없어졌고, 명성을 얻고 주목을 받게 되는 순간은 아주 짧은 찰나였다고 했다.

  세상 만물을 다 가져본 자들에 의하면, 세상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다. 세상이 만든 것은 무의미하며, 신이 만든 자연에서 파생된 것이야 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치열하지 않아도 좋다.

붉고 노란 낙엽들을 바스락 밟으며 걸어도 좋고,

때론 한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푸르른 하늘을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다.

지금 그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좋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스스로를 칭찬하고,

살아있어서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느낄 수 있음은,

병상에 누워 있는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소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그대로도 충분히 좋고,

아름답다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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