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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지구인 Apr 28. 2023

나 홀로 Jeju3 _ 자전거, 내게 정직해지는 시간

자전거로 느낀 제주 땅.

#1


자전거 바퀴가

제주의 땅을 꾹꾹 딛으며 유영한다.


제주 땅의 질감이

자전거를 타고 몸으로 고스란히 전해 온다.


자전거로 참 많은 길을 달렸건만

이토록 낯선 질감은 무엇일까,


문득,

상상해 본다.

 

한때, 지구의 핵 가까이서

바다보다 훨씬 장엄한 두께로 잠자고 있던 이글거리던 용암은,


어느 날, 생물처럼 움직이는 지구의 얇아진 지층의 찰나를 타고

샘이 터져 나오듯 지구 몸 밖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그리고 용광로 같던 붉고 거대한 용암은 광활한 바다를 만나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부둥켜안는다.


무수한 연기는 바다 위를 웅장하게 채우고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바다와 용암은 서로의 온도를 맞춘다.

 

그리고 비로소,

용암은 땅이 된다.


학자들은 제주가

신생대 3기~4기 동안, 5번의 화산활동과 110회 이상의 용암 분출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1년에 한 번씩을 밟아온 것 같은

이 제주 땅에서


처음으로 자전거가

이 땅의 시간을 상상케 한다.


#2


사실,

자전거는 무척 단순하다.


땅에 닿아 굴러가는 바퀴 두 개,

바퀴에 동력을 실어주는 페달,

그 페달의 동력을 바퀴를 이어주는 체인,

체인에 실린 동력에 향방을 결정하는 핸들,

그 동력을 멈춰 세우는 브레이크,

그리고 이 모든 기관을 지탱해 주는 프레임.

마지막으로 프레임에 우뚝솓아 자전거를 타는 이를 떠받혀주는 안장.


이게 다다.



요즘엔, 흡사 저건 오토바이인가 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친구들도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경계에서 무수히 태어나


문명의 기술을 탑재한 갖가지의 자태로

계속 진화를 반복하고 있다만,


정작 자전거의 매력은,

그저 몸에서 비롯된 정직한 동력으로만 나아갈 수 있다는 데 있다.




#3


저런 사람을 볼 때가 있다.

자전거 같은 사람.


잠깐 만났는데, 그 이가 살아온 삶의 결이

참 정직하고 단단한 사람.


얼굴에 띄는 작은 표정에서,

그가 부르는 노래 한 소절에서,

한걸음 내딛는 걸음걸이 자태에서,

지그시 어딘가에 무심코 주는 시선에서,


그가 지닌 성정이 무척이나 정직하고 순결하여

내 혼탁함을 무척이나 부끄럽게 만드는 이.


그리고 질문 하나로 멍해진다.

저리 곧고 정직한 마음은 어찌 지닐 수 있었을까.



#4


"에로스"를 주제로 당대의 철학자들이 모여 100분 토론을 펼치는

25세기 전에 쓰인 [향연]이란 재미난 책을 여행을 떠나오기 바로 전에 읽었다.


참가선수는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아리스토파네스, 아가톤,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향연의 현장에 있던 저자, 플라톤.


사랑에 대한 갖가지의 화려한 향연이 어찌 이리도 재미날 수 있을까 싶은 철학자들의 대화 끝에

끝판대장 소크라테스가 떠서 모든 대화를 평정하는 풍경을 보며 찬탄에 마지않은 플라톤은,


결국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루는 이분이 이른 아침에 한 곳에 서서 무언가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하셨는데,

 사색해도 진척이 없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서 탐색하시더군.

 한낮이 되자 모두들 이분을 알아보고 감탄하며,

 소크라테스 선생님이 이른 아침부터 무언가 사색에 잠겨 그곳에 서 있다고 서로 수군거렸다네.

 이윽고 저녁이 되자 몇몇 동네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나서 시원한 곳에서 잠도 자고

 이분이 밤새도록 그곳에 서 계시는지 지켜볼 겸 거적을 들고 나오더군.

 이분은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새고 해가 뜰 때까지 그곳에 서 계시다가

 해에 기도를 올리고 나서 떠나가셨네. "


정직해야

무언갈 이룬다.


정직해야 무언가에 깊이 머물 수 있고,

그래야 다른 깊이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정직한 만큼이 내가 할 수 있는 질문 하나의 무게이고,

그 질문의 무게만큼이 답을 찾는 여정에 길이 되어준다.


2500년이 지나도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살아오는 이유는

그가 지녔던 정직함의 무게일지 모르겠다.



#5


자전거 위에서만이라도,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오롯이 내 몸의 동력으로만 나아가며  

몇 겁의 시간의 서사를 지닌 땅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사람.


그 땅의 질감 아래 쌓인 시간들처럼

정직하게 뿌리내려진 생의 질감을 가진 사람.


세차게 지나는 세상위로 흩날리는 나의 생을 부여잡아

근원의 질문 하나만을 지닌 채 정직하게 자기의 땅을 다져가는 사람.


오늘따라 제주의 오르막이 많다.

더 정직하게 패달을 밟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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