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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Sep 20. 2023

21세기의 떠오르는 샛별, 세계관.

[예술] <세계관 만드는 법> - 이지향

현실에 지쳐 벗어나고 싶을 때면 나는 종종 두 눈을 감고 망상을 하곤 한다. 내 머릿속 내가 그려내는 또 다른 세계. 그 안에서 나는 고등학생 농구부의 주장이 되기도 하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반 프로듀서가 되기도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고, 고통은 잠시 동안 사라진다. 상상력이 풍부한 N형 인간이라 그럴까. 나의 머릿속엔 무수히 많은 세계가 존재한다.


세계관. 흔히 OO유니버스라 불리는 이 단어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지며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돌 세계관, 마블 유니버스, 세계관 충돌 등 세계관이라는 표현이 대중적인 쓰임을 갖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그 세계관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또 현재 모든 기업과 소비자들이 세계관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쓰기의 말들> <동사의 맛> 등 편집자를 위한 책 시리즈로 유명한 “유유출판사”의 신작 <세계관 만드는 법>에서 우리는 세계관의 의미와 그 쓰임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Yes24


도대체 세계관이 뭐길래?


지금이야 세계관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지만, 사실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저자의 경우 ‘세계관’이라는 단어가 2015년경을 기점으로 의미가 변화했다고 했는데, 과거 ‘세계관’은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대로 “자연적 세계 및 인간 세계를 이루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를 뜻했다. 1990년도부터 2015년까지의 기사를 검색해 본 결과 대부분의 기사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사전적 의미의 ‘세계관’으로 쓰였다고 한다.(p.10)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인 세계관의 의미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미디어와 문화산업의 발달로 게임, 만화, 영화 등의 콘텐츠에선 가상의 ‘설정된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고, 업계인들은 이를 점차 “세계관”이라는 단어로 통합하여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세계관은 특정 콘텐츠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그 쓰임이 확장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앞서 내가 했던 망상 속 세계 역시 하나의 세계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업에서 세계관에 집중하는 이유


이렇듯 다양한 콘텐츠에 사용되는 세계관은 전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단어가 되었다. 해리포터와 마블 스튜디오가 장기간 사랑을 받고, 팬덤을 보유한 이유도 탄탄하고 흥미로운 세계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심지어 현실에 존재하는 아이돌 역시 세계관을 따라 행동하고, 몰입한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세계관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기업이 세계관에 집중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세계관이 ‘충돌’한다는 말이 이처럼 널리 쓰인다는 건, 개별 콘텐츠의 세계관이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일 겁니다. 사람들이 그 ‘연결’에 관심이 깊다는 것도요. (p.65)

앞서 말했듯 세계관은 가상 세계에 임의로 설정된 배경이다.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미처 해소하지 못하는 욕구와 욕망을 가상 세계에서 풀어내길 원한다. 최근 유튜브에 늘어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인기가 상당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MZ세대의 특징을 묘하게 비틀어 20·30세대의 회사 생활을 풍자한 “SNL 코리아”, 중장년층 산악회의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한 “피식대학” 등 현실에 있을 법하지만 가상으로 설정된 세계에서 이들은 시청자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공감을 불러일으켜 대신 욕구를 해소한다. 내가 직접 회사를 때려치울 순 없으니 남이 회사를 때려치우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으로 삼는 것이다.


혹자는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에 몰두하는 이러한 행위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상 세계는 우리의 고정관념처럼 유치하고, 쓸데없는 것만은 아니다.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 따르면 ‘상상’과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낸 일이야말로 인간 문명 발달의 첫 단추라고 할 만큼 (p.28) 가상 세계는 우리에게 필연적이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외면받던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종종 세상을 변화시키듯 상상과 허구로 이루어진 가상 세계는 기업에 더 발전된 미래를 가져다줄 수 있다.


게다가 세계관을 설정했을 경우 소비자의 소비 욕구가 늘어나는 것 또한 기업에서 세계관을 만들어 내려는 이유 중 하나다. 동일한 제품이나 서비스더라도 그 안에 서사가 존재하면 소비자들은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인지심리학자 제롬 브루너에 따르면 사람이 스토리를 통해 정보를 접하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스물두 배나 정보를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p.30) 최근 많은 기업이 카드뉴스나 짧은 동영상으로 상품과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세계관이 기업 내에서 중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쓰인다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비자가 자연스레 팬덤을 형성하고,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선 세계관을 이용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창작자도 향유자도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더 오래, 더 깊이 사랑하는 일에 ‘세계관’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도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 (p.161)


이 책은 안전가옥의 스토리 프로듀서이자 이 책의 저자 “이지향”이 생각한 세계관의 견해를 담았을 뿐 아니라, 책 제목답게 실제로 세계관을 만드는 방법 역시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목차에서는 이 글에서 알아보았던 세계관의 변화된 정의와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사례로 들어 설명했고, 두 번째 목차에선 캐릭터, 시공간 설정 등 세계관을 세분화하여 실제로 구축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마지막 목차에서는 이러한 세계관의 활용 방안과 IP의 가치에 대해 전달한다. 유유출판사 본연의 느낌답게 에세이처럼 술술 읽혔고, 실용서다워 많은 밑줄이 그어졌다.


세계관 대통합, 세계관 충돌 같은 단어가 일상 속 대화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이제는 전문가뿐만 아닌 일반인도 직접 자신의 세계관을 만들고, 이를 향유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처럼 소비자와 창작자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면, 많은 이들이 세계관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해당 콘텐츠를 더욱 애정하게 되지 않을까?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서 기업들은 이제 현실적인 부분을 넘어 가상의 세계관 역시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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