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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Oct 07. 2023

죽을 때까지 청년의 삶을 살았던 사람

[매거진] <쿨투라 2023년 9월호> - 최인호와 청년문화

영원히 청년으로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년세대의 중심에 서 있음에도 점차 청년의 자리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시간의 일차원적 흐름이 야속하기만 하다. 친구들과 가볍게 술을 한 잔 마시는 동안에도 우리의 대화 주제는 예전처럼 가볍지 않다. ‘올해는 자격증 합격 인원을 대폭 감소한다더라’ ‘이쪽도 똑같지 뭐. 취업난이라고 회사도 공채 인원을 줄였더라’ 청년이라고 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인 내용의 이야기들로 술자리가 채워질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른들은 우리 나이를 보며 청춘을 즐겨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청춘이란 뭘까. 이런 고민 역시 청춘의 일부인 것일까? 청춘이라는 말도 가끔은 청년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여기, 죽을 때까지 청년의 삶을 고수하며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되는 인물이 있다. 월간 문화전문지 ‘쿨투라’는 청년문화의 아이콘 최인호의 삶을 재조명하며 2023년 9월호 주제로 ‘최인호와 청년문화’를 선정했다. 한 인물의 삶이 문화잡지의 메인주제가 된 것만으로도 최인호가 문화계에서 얼마나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최인호가 이뤄낸 업적과 그의 삶으로 시작하는 이번 테마는 최인호의 인생을 함께한 이들의 좌담과 함께 총 다섯 편의 글이 함께한다. 글을 쓴 사람들은 문학평론가와 영화평론가, 극작가와 영화평론가, 그리고 시인에 이를 만큼 다양했고, 이는 최인호가 순수문학뿐 아닌 여러 방면에서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쿨투라>


영원한 청년, 최인호의 삶.


최인호는 고등학교 2학년 나이에 <벽구멍으로>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여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인’의 타이틀과 조선일보에 소설 <별들의 고향>을 연재하며 ‘최연소 신문 연재 소설가’라는 굉장한 업적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작품이 가장 많이 영화화된 작가’ ‘책 표지에 사진이 실린 최초의 작가’ 등 당시 문학계에서 가장 주목을 많이 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1975년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가족>은 무려 34년 6개월의 시간 동안 연재되며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문학인들 역시 그의 공로를 인정해 올해 처음 ‘최인호 청년문학상’을 제정했다.


최인호가 대단한 이유는 그의 영향력이 문학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을 연재함과 동시에 연출가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본인이 직접 창작한 <메리 크리스마스>와 몰리에르의 <수전노>, 유진 오닐의 <고래>, 손톤 와일더의 <결혼중매인>, <유식한 이 아들>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별들의 고향>과 <바보들의 행진> 등 최인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명작들 역시 본인이 직접 작품에 개입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지금껏 수많은 작가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보내고 찬사를 받았지만, 최인호처럼 열정적이고 꾸준하게 다방면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원한 작가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는 예술문화를 사랑했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최인호가 모든 작품에서 표출하고자 했던 ‘청년문화’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전적 정의로 청년 문화는 '젊은 세대, 특히 10대와 20대에 해당하는 세대의 독특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문화'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에서 청년문화는 주로 1970년대 초반 대학생층에게 크게 유행했던 대중문화의 경향을 지칭한다고 하는데, 당시에는 주로 통기타 음악과 생맥주, 청바지와 짧은 미니스커트 등의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이지만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파격적인 일탈이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유신체제로 인해 대중문화가 심한 억압을 받는 상황에서 이러한 청년문화는 당시 기성세대의 눈살을 찌푸리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인호가 청년문화를 지지하고 생산해 낸 데에는 사회문화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강유정 영화평론가에 따르면 최인호에게 ‘청년’은 단순히 생물연대로 구분되는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차별적인 정신의 집약체이자 일종의 증상이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청년문화의 핵심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 그리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지배 권력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자유였다고 해석한다. 최인호가 만들어 낸 작품들은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선 청년들이 이루고자 하는 자유의 메시지였고, 억눌려 있던 청춘의 열기를 폭발시키는 매개체였다.




수십 년이 지난 현재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청년문화라는 말은 사회에서 반항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MZ세대라고 불리는 현재의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괴한 문화에 열광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소비하며 문화층을 형성해 낸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 역시 과거에는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청년들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성숙한 청년이라 불렸던 이들은 다 큰 어른이 되었고, 하루도 쉬지 않고 놀기 바쁜 청년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요즘 젊은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현재 청년세대의 중심에 서 있는 나 역시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될 것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말이 기원전 196년 고대 이집트의 로제타석에 적혀있는 것처럼 나 역시도 미래의 청년들을 한심하게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청년문화의 중심에 있던 최인호를 떠올리며, 나 역시 청년이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청년들이 만들어 내는 문화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영원한 청년으로 남을 순 없어도, 뜨겁고 통통 튀는 청년들의 마음을 영원히 기억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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