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자매> (2021)
*출처 네이버 영화 (이하 동일)
영화 정보
영화 : <세자매>
개봉일 : 2021.01.27
감독 : 이승원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15분
*출처: 네이버 영화
평점
네이버 : 8.95 (10)
왓챠피디아 : 3.8 (5)
내 평점 : 4 (5)
2021년에 개봉한 이승원 감독의 <세자매>
독립영화와 유사한 형식의 장면과 내용으로 주변 영화덕후들에게 추천을 받아 넷플릭스에서 시청했다.
사실 영화의 초반 부분과 제목만으로도 어떤 내용인지 유추가 되었지만 예상하더라도, 뻔한 소재라도 충분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나는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이기 때문에 크게 공감을 못할 수도 있겠지만 가족에 대해 깊은 사랑과 연대를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영화 속 세 자매는 개인마다 고통과 시련을 마주한다. 첫째 희숙은 암 진단을 받고, 남편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하는 상황 속 딸 보미마저 자신을 무시한다. 소심한 성격의 희숙은 말끝마다 "미안해"를 붙이며 소극적이고 자존감이 낮은 인물임을 보여준다. 둘째 미연은 외적으로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의 아내로서 교양 있는 모습을 보이려 항상 애쓴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미연은 언제나 완벽해야 하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한 듯하다. 마지막으로 셋재 미옥은 알코올 중독의 모습을 보이는 극작가로서 다소 폭력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많이 심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며, 새 아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채 가정을 방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셋은 영화의 제목과 같이 자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매임에도 서로 굉장히 상반된 모습을 띈다. 소심하고 자신감이 낮은 첫째, 완벽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둘째,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셋째는 같은 자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다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은 서로의 말투에서도 묻어 나오는데 희숙은 투박한 사투리와 함께 말끝을 흐리고, 미연은 기품 있는 표준어와 함께 천천히 말을 하며, 미옥은 굉장히 빠르고 직설적인 말투와 함께 언제나 높고 큰 목소리로 말한다. 이는 그들의 성격을 짐작게 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같은 유년기 시절을 보냈음에도 다른 환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영화 <세자매>는 "자매" 혹은 "가족"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세자매>는 "자신"에 대한 얘기에 더욱 가깝다. 자매들은 서로 가족이라는 핏줄로 연결되어 있지만 영화 속에서 세 자매가 소통하는 장면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미연과 미옥이 같이 밥을 먹는 장면, 미연이 희숙의 가게를 찾아가는 장면 등) 그 장면 속에서도 그들은 각자의 고민이 있지만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내뱉지 않는다. 그저 과거를 회상하거나, 겉으로 상대방을 위로할 뿐이다. 또한, 세 자매 모두 순탄한 가정생활을 이루지 못하여 심적으로 고통스러워하지만 그것은 영화의 후반부에서도 끝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가족 구성원끼리의 대화나 소통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영화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때문에 내가 생각했을 때 <세자매>는 "자기 자신", 즉 개인의 시련에 대한 영화이다. 암, 남편의 불륜, 엄마가 돼보지 못한 채 새 아들의 엄마가 되는 것은 세 자매 모두 겪어보지 못한 시련이다. 충분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더라도 난생처음 마주한 상황에 대해서는 당황하기 마련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지금껏 자신이 해왔던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시련의 벽은 굉장히 거대하고 높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세 자매들은 그들의 뿌리를 기억하고 서로를 찾는다.
보미야.
그지같은 엄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엄마 안 싫어할까?
엄마 암이래. 좀 무섭다.
-희숙-
(효정을 발로 밟으며) 쉿, 쉿.
내일 아침 먹기 전까지 반지 갖다 놔.
알았지?
-미연-
언니, 그러니까 언니가 나 좀 가르쳐줘
엄마는 뭐 해야 돼?
언니, 나는 진짜 엄마가 뭐 하는지 모르겠어.
-미옥-
각자의 시련은 개인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애초에 나의 문제를 가족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심히 부담스럽고 부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세자매의 아버지 생신을 맞이해 한곳에 모이게 되는데 이때 서로의 울분이 폭발한다. 진섭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변을 뿌리는 것을 시작으로 세자매와 아들인 진섭의 과거가 회상되며 그들이 겪었던 치욕, 트라우마들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진섭을 포함한 네 명의 자식들이 아빠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가족"이라는 단체에서 삐끗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예상케 한다. 희숙과 진섭은 미연과 미옥과 엄마가 달랐기 때문에 진섭과 함께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청소년기를 기억한다. 미연과 미옥은 그 사실을 어른들에게 말하고 경찰에 신고해 주길 바랐지만 어른들은 오히려 그들에게 화를 낸다.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빠는 이제 교회의 장로가 되었다. 아빠는 스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반성했을지 모르겠지만 세자매와 진섭의 상처는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껏 쌓아왔던 울분을 터트리며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말한다. 희숙의 돈에 대한 압박, 죽음에 대한 두려움, 미연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 지금까지 마음껏 표현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감정, 미옥의 폭력에 대한 분노 등 참고 참았던 자신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자라나던 가지들이 자신의 근원지인 뿌리에게 시선을 돌렸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과거를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며 자신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위로받은 자는 아무도 없다. 미연의 다그침에도 아빠는 끝내 사과하지 않으며 자신을 자해할 뿐이었다. 세 자매는 전보다 더욱 돈독해졌지만 이것은 시작(치유의 단계)일 뿐이다. 희숙의 암 상황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사이비 종교에서의 활동은 계속해서 이어지는지, 딸과의 관계는 원만해졌는지. 미연은 남편과 이별했는지, 이후로도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완벽을 연기하는지. 미옥은 엄마의 역할로 가정의 일원이 되었는지, 알코올 중독과 작가로서의 생업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시청자)는 모른다. 영화는 세 자매가 앞으로도 사진을 더욱 많이 찍자는 말과 함께 열린결말로 끝나게 된다.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인생 역시 열린결말에 가깝다. 세자매들이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세자매가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인간 역시 열린결말인 삶에서 구태여 미래의 정답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내일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어제의 성찰이다. 또 어제의 성찰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감정이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건강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세 자매들은 말해주고 있다.
인간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죽음에 가까워지더라도 끝없이 난관에 봉착하고 이를 해결하여 더욱더 성장한다. 이러한 성장은 내면에 쌓이게 되고 그 끝은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찾기 위한 발판이 된다. 그 발판을 모아 나만의 정답에 가까워졌다면 우리는 끝내 열린결말의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