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사이드 아웃 2> 리뷰
지난 2015년, 대한민국에서 관객 수 약 500만 명의 인기를 끌었던 디즈니사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후속편이 10여년 만에 개봉되었다. 2024년 6월 12일에 개봉한 <인사이드 아웃 2>는 작성일(24년 6월 17일) 기준 누적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했고, 네이버 영화 기준 관람객 평점 9.21을 기록하며 흥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 ‘라일리’가 사춘기를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성장기의 청소년은 물론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불안’에 흔들리는 어른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감정은 기억을 만들고, 기억은 신념을 형성한다. 영화 초반부 기쁨이는 ‘기억의 저편’으로 부정적인 기억을 날려버릴 수 있는 발명품을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기쁨이는 그동안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억 중 긍정적인 기억만을 선별하고, 주인공 ‘라일리’의 신념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부정적 기억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날려 보낸다. 이로 인해 라일리는 기쁨이에 의한 ‘인공적인’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
‘라일리’는 기쁨이가 만들어 낸 ‘좋은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학교 수업 중 곤란에 처한 학우를 도와주며 라일리는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고, 함께 아이스하키 캠프에 참여하기로 하며 그 우정을 돈독하게 다진다. 그러나 캠프 참가 전날, 사춘기 경보로 인해 감정이들의 본부는 전면 개편되고, 새로운 감정이가 나타나게 되며, 라일리는 인생의 큰 변환점을 맞이한다.
새로운 감정들은 불안이, 부럽이, 당황이, 따분이로 그 중 사춘기를 겪고 있는 라일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건 단연 ‘불안이’다. 라일리는 다른 두 명의 친구가 자신과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는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지지만, 캠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지역에서 유명한 하키팀에 들어가 원활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불안이의 계략에 따라 지금까지의 신념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한다.
사춘기 라일리의 감정 중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불안이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고, 성과를 이뤄야 한다는 ‘불안한’ 마음에 라일리를 엄격하게 제어한다. 기존에 라일리의 감정을 제어했던 기쁨이와 슬픔이, 까칠이, 소심이, 버럭이는 불안이에 의해 본부에서 내쫓긴 채 유리병에 갇혀 자신의 존재를 되돌아본다. ‘우린 억압된 감정들인가봐’라고 한 소심이의 말은 마치 사춘기에 의해 일차원적인 감정은 억압되고, 더욱 복잡한 감정들에 의해 인격이 형성됨을 암시하며, 단순한 감정들로만은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자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만든 긍정적인 신념만 되찾으면 라일리가 원상태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은 기쁨이는 친구들과 함께 신념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이 만든 신념을 발견했지만, 그 신념은 불안이가 만들어 낸 기억에 의해 빛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절망에 빠진 기쁨이는 자신이 선별해 만든 신념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어른이 되는 건 그런 건가 봐. 기쁨이 줄어드는 것.’
기쁨이가 한 말처럼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기쁨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는, 인생에서 기쁜 일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춘기를 겪으며 더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마주해 기쁨을 느낄 순간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동급생과 선배를 보며 ‘부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때로는 쿨해 보이기 위해 ‘따분함’을 연기하기도 한다. 어른이 될수록 더 많은 감정들이 나타나 우리의 감정 제어판에 손을 올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불안’이라는 감정은 ‘기쁨’과 ‘슬픔’과 같은 일차원적인 감정 못지않게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감정 중 하나다. 교유관계에 대한 걱정, 진학에 대한 걱정, 부모님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걱정은 모두 ‘불안’이라는 감정의 형태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이는, 사춘기 시기뿐 아니라,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모든 일생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불안은 마치 증식형 바이러스와 같아 더 큰 불안을 만들어내는데, 폭풍처럼 거대해진 감정의 쓰나미는 이를 만들어 낸 ‘불안이’조차 제어할 수 없었다.
인간에게 불필요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고, 신념은 단일한 감정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표면상으로 이 영화는 긍정적인 감정의 대표 격인 ‘기쁨이’와 부정적인 감정으로 보이는 ‘불안이’의 대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영화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으며, 모든 감정이 모여 ‘나(라일리)’라는 인격이 형성된다는 것. ‘언제나 긍정적이어야 하는’ 기쁨이도,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 밤새 최악의 수를 고려해야 하는’ 불안이도 우리에게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감정이다.
‘굳게 믿는 마음’을 뜻하는 신념이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영화의 메시지 역시 방황하는 어른에게 전하는 따듯한 위로로 다가왔다. 기쁨이가 나쁜 기억을 날려버리고, 좋은 기억들로만 신념을 형성하려고 한 행위는 불안이의 행동과 다르지 않았다. 단일한 감정으로 형성된 신념은 라일리를 어른으로 만들 수 없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다양한 감정을 수용하고, 이를 적절히 사용하며 복합적인 신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이 깨지더라도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며 다시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캐릭터화한다는 설정이 매우 흥미로워 1편을 재밌게 관람했는데, 이번 후속편 역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초반 템포가 조금 빨라 원작을 보지 않은 시청자에겐 이해가 잘 안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잘 전달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직접 사춘기를 겪고 있는 청소년은 물론,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어른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른 아이’들에게도 큰 격려와 위로를 주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