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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진 Jan 31. 2017

어머니가 요리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


<요술처럼 펼쳐지는, 아들을 위한 진수성찬>


안부전화를 드릴 때마다 어머니의 첫 마디는 ‘밥’에 관한 것이었다.


서른 살 넘은 아들의 밥걱정에 때로는 하실 말씀을 잊곤 한다. 그러다 고향에 내려가겠다고 하는 날이면 반드시 ‘무엇이 먹고 싶은지’ 확인하신다. 그리고 나의 일정을 체크하면서 집에서 몇 끼를 먹을 수 있는지 계산하고,

먹고 싶다고 말한 음식을 끼니마다 만들어주신다.


서울에서의 삶이 고달픈 상황에서 어머니와 통화할 때면 나도 모르게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말해버리는 불효를 범한다. 돼지고기 두루치기, 김치찌개, 유부초밥, 미역국, 김치전, 쇠고기전골, 갈치찌개… 어머니는 고민 없이 그저 조심히 내려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일선 한정식집에서 구경할 수 있는 코스 요리가 준비돼있다.


찌개가 놓여있지만 국이 존재하고, 메인 요리로 육류가 있건만 생선 또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싱싱한 푸른 채소가 조화롭게 밥 상 위에 장식돼 있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렇게 차려진 따뜻한 밥상은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밥을 한 그릇만 먹는 비정상적인 사람은 없으며, 못해도 두 그릇을 먹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남겨진 찬(饌)을 바라보며 기억 속에 저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머니께서는 무슨 이유로 사명감을 가지고 밥을 해주시는 걸까. 보릿고개의 어려움을 온 몸으로 체험한 터라 아직까지 밥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으신 것일까. 아니면 수년간 나를 위해 밥을 지어주신 관성(慣性) 때문일까. 어머니께 직접 여쭤본 적이 없으니 아직까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께서 지어주시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밥을 두고 ‘집밥’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개인이 자신을 위해서 집에서 밥하고 반찬 만들어 푸짐한 한상을 차려먹는 것은 집밥이라고 할 수 없다. 어머니의 숨결과 사명감 그리고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있을 때 집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늘 혼신을 다해 밥을 해주시는 어머니께 나는 과연 무엇을 해드렸을까. 맛있게 먹어치우고 사회생활이 힘들다는 푸념만 늘어놓지 않았던가. 그 흔한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드린 적이 없음에 한쪽 가슴이 아려온다. 조만간 찾아뵈면 레시피(recipe)를 뒤져서라도 아들이 직접 만든 집밥을 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음식에 ‘맛’을 담을 순 없겠지만 ‘나의 마음’은 담을 수 있겠지.


아, 어머니께서는 늘 이런 마음으로 요리를 하신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음식 만드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그렇다. 어머니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이유 없이 나의 밥을 챙겨주실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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