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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Apr 14. 2023

별난 건 정말 괜찮을까?

드라마 <별나도 괜찮아> 리뷰

  요즘은 펭귄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며 시간을 보낸다.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펭귄은 꼭 춤을 추는 것 같다. 매끈한 빙판 무대 위에서 눈보라라는 특수 효과 장치까지 갖춰지면 누구도 그들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아, 음악은 없어도 된다. 펭귄들은 기본적으로 조용한 걸 선호한다. 물론 예외는 존재하겠지만. 나는 그저 그들의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댄스 공연을 모두가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다.

  내가 갑자기 펭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샘 가드너 덕분이다. 샘 가드너는 내가 보는 미국 드라마 <Atypical>의 주인공이다. 형용사 ‘typical’은 ‘전형적인’, ‘일반적인’이라는 뜻이다. 거기에 부정 접두사 a를 붙인 ‘atypical’은 ‘이례적인’, ‘특이한’이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제목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국이 번역한 제목은 ‘별나도 괜찮아’이다. 위로, 격려, 응원을 잘 건네주는 정 많은 한국인이라 그런가. ‘모두가 별나. 그러니 괜찮아. 기운을 내’라고 등을 무심히 툭툭 두드려주는 것 같다. 아니면, 별난 것에 괜찮다고 계속해서 확인시켜 주고, 안심시켜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주인공 샘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10대 소년이다. 그는 남극과 펭귄을 사랑하고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어 한다.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샘은 1년 넘게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또, 시끄러운 소리에 민감해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쓰고 다니며 집에서는 거북이를 키운다. 그는 매일 펭귄 캠을 보며 우리에게 남극과 펭귄의 TMI를 풀어준다. 우리의 펭귄 교수님인 샘이 알려준 건데 남극은 매우 조용하다고 한다. 펭귄들이 번식하는 서식지만 빼고. 하긴 그곳이 조용할 리 없지. 펭귄이나 사람이나 조용하지 않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데이터를 원활히 주고받기 위하여 약속한 여러 가지 규약을 프로토콜이라고 한다. 샘에게는 자신만의 프로토콜이 있다. 샘은 규칙이 필요할 때마다 노트에 적는다. 그리고 그 규칙을 착실하게 지키며 살아간다. 어쩌다 이런 규칙들에 착오가 생겨 문제가 발생하면 그만 혼란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때마다 샘은 좁고 어두운 공간에 자기 몸을 숨기고 좋아하는 4종의 펭귄 이름을 중얼거리며 진정되기를 기다린다. 아델리, 턱끈, 황제, 젠투, 아델리, 턱끈, 황제, 젠투.’     

  나의 세계도 나만의 프로토콜로 이루어져 있다. 변화의 곡선 없이, 위기 없이 살다가 가끔 오류가 뜨면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예를 들어, 지갑을 택시에 두고 내리거나, 대략 30명 정도의 무표정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해야 할 때. 이때 기껏 외운 대본 글자들까지 머릿속에서 휘발되어 버리면 끝장이다. 뭐, 나도 그럴 때 샘처럼 펭귄들을 불러봐야 하나. 아델리, 턱끈, 황제, 젠투. 기분이 괜찮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펭귄은 귀엽고 귀여운 걸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참고로 턱끈펭귄이 정말 귀엽고 야무지게 생겼다.      

  샘에게는 든든한 여동생 케이시가 있다. 매일 티격태격 하지만 그 누구도 서로를 대체할 수 없는 둘이다. 그들의 부모님은 자폐를 앓는 샘을 살피느라 정작 케이시에게 많은 관심을 쏟지 못한다. 케이시는 그것이 서운할 때도 있겠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아니, 서운함이 우선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부모님만큼 케이시도 샘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케이시는 달리기를 잘하는 육상부 엘리트여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지만, 그 순간에도 샘을 걱정했다. 케이시는 내가 본 미국 드라마 10대 여자 캐릭터 중 가장 멋지고 어른스럽다. 나라면 그러지 못했을 거라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희생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서 더 좋았다. 케이시는 자기 몫을 챙길 줄 안다. 샘이 열받게 하면 주먹질도 좀 하고. (둘의 싸움을 구경하는 건 솔직히 재밌다.)

  오빠, 나 클레이턴 특목고 안 가도 돼. 그러니까 오빠한테 내가 필요하거나 하면 장학금 거절할 수 있다고.”

  그건 멍청한 짓이야. 케이시 날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알지만 내겐 엄마랑 아빠랑 다른 사람도 많아. 넌 전학 가도 돼.”

  엄마 아빠가 없다면? 예를 들어 두 분이 떨어져 지낸다면?”

  아빠가 출근했을 때처럼? 그럼 퇴근을 기다려야지.”     


  퇴근을 기다린다는 샘의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나도 늘 그런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듯이. 그 순간을 지나면 괜찮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 덕에 우리의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점점 자립해 가는 샘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았다.

  “자연은 단순해. 동물은 짝짓기 할 때 적절한 상대에게 끌리고 날개를 펼치거나 알록달록한 엉덩이를 보여 주고 교미해. 합리적이지. 동물은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춤도 안 추잖아. 사실 어떤 새는 춤을 춰. 아주 많이 웃기는 춤도 있고.”


  샘의 ‘여친 사귀기 대작전’은 보는 사람을 애간장 태우기에 적합했다. 샘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온 페이지가 여친 상대로 알맞은지 장점 단점을 나열해 쓰기도 하고, 정말 페이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리스트를 작성해 체크 표시를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가장 큰 이슈를 제일 먼저 알리고 싶은 사람’. 하나씩 점검해 가는 샘은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 듯하다. 하긴 사랑이 동물처럼 날개와 알록달록한 엉덩이를 내미는 것에서 끝나는 게 다가 아니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페이지가 샘을 위해 졸업 파티 특별 무도회를 계획하는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시끄러운 음악과 발 디딜 틈 없이 정신 사나운 졸업 파티는 샘이 못 견디는 곳이다. 샘과 함께 졸업 파티에 가고 싶은 페이지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안건을 낸다. 이름하여 ‘자폐성 장애 친화적인 졸업 파티’였다. 스피커로 음악을 트는 게 아니라 파티 참여자들이 무선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즐기며 춤을 추는 파티를 열자는 것이 그녀의 아이디어였다. 반대하는 학부모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페이지의 끈질긴 설득과 추진력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파티를 열 수 있었다. 무선 헤드폰을 끼고 춤을 추는 학생들과 그런 파티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 샘. 고요하고 사랑스러운 파티를 즐기는 그들은 마치 펭귄 떼 같았다.


  “아마 예상 밖이겠지만 남극엔 이름 있는 화산이 37개인데 대부분 두꺼운 빙층 아래 묻혀 있어요. 근데 그 겹겹이 쌓인 얼음 밑에서 종종 용암이 뜨거운 동굴을 만들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눈에 별 관심이 없지만 난 아니에요. 눈이 오면 참 조용해져요. 소리를 흡수하거든요. 그래서 눈보라가 치면 지구 전체를 방음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눈이 내려서 절대 안 그치면 좋겠어요.”

    

  남극은 지구에서 가장 외딴 대륙이라던데 그런 곳에서 사는 펭귄들은 어떤 기분일까. 외딴 대륙이긴 해도 서로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조용한 걸 좋아해서 가끔 혼자 있고 싶을 때도 있겠지. 사람인 나도 그런데 말이다. 내가 사는 세상만큼 펭귄이 사는 세상도 독특한 것 같다. 남극은 세계 빙하량의 90%가 있지만 연간 강우량은 약 20cm에 불과해서 사막으로 간주한다. 남극을 보면 사막이란 생각이 안 드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샘은 그래서 남극이 좋다고 말한다. 보기와 다르니까. 그리고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평생을 사는 펭귄을 좋아한다. 그곳에 머물고, 환경에 맞서고 버텨내는 몇 안 되는 종 중 하나가 펭귄이다.

      

  저는 그게 펭귄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머무는 거요. 전 그 기분을 이해해요.”   

  

  나도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하거나 전학을 가는 것이 기존에 살고 있던 곳을 떠나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머물면서도 끊임없이 적응해 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세상인데도 좀처럼 적응이 쉽지 않다. 사막 같은 남극에 사는 펭귄이나, 매번 시험과 선택의 연속인 사람이나. 사는 게 어려운 건 똑같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그래서 펭귄들은 춤을 추나 보다. 그리고 우리는 퇴근을 기다린다.


  남극에 살면 쌀쌀할 거예요. 남극의 겨울이 깊어지며 얼음은 계속 커지고 남극 대륙은 사실상 두 배 크기가 돼요. 두 배요! 바로 이렇게 추위가 물질을 형성해요. 그렇게 존재를 나타내고 공간을 차지하죠. 최근에 연구가들이 발견한 사실인데 펭귄들은 조금만 함께 움직여도 독특한 행동 보온 구조를 형성한대요. 그러니까 황제펭귄의 군무는 체온 유지를 위한 거예요. 펭귄들은 춤으로 지구를 따스하게 해 주는 거죠.”

     

  펭귄은 이런 면에서 음유시인 같다. 정해진 형식이나 꼭 어떤 악기로 연주해야 한다든가 하는 원칙도 없이 그저 춤을 추는 모습이 말이다. 그리고 그 춤으로 자기들끼리 따뜻한 온기를 유지하고 지구 전체까지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지구를 빛내는 생명체 TOP100’에 올려야 할 이유로 충분하다. 무반주 댄스가 그렇게 어려운 건데 그것마저 대단한 동물이다. 사실, 펭귄들은 몰래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우리만 듣지 못하는 것이지, 펭귄들의 세상 속에서는 계속해서 배경음악이 깔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펭귄들의 공연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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