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 3년 차.
세상은 이전의 모습을 점차 찾아가기 시작하였다. 활기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그리웠던 나라들은 이들의 움직임을 환영하듯 문을 활짝 열어두고 들어갈 여지마저 주지 않았던 나라들도 하나둘 눈치를 보며 살포시 문을 개방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여정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탄 이들이 공항으로 모이게 되면서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여행자들을 위한 자리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시각, 방 안에서 형형색색의 색깔을 내뿜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키보드와 마우스를 정신없이 두드리는 이가 보인다. 그녀 또한 지독했던 3년 동안 여행의 목마름으로 꽤나 힘든 계절을 보내왔다. 그녀도 이쯤이면 여행을 가고 싶을려만, 가만히 있는 것을 보아하니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일을 이어가다 갑자기 파란색 빛이 그녀의 얼굴에 비치었다. 눈동자에 새겨진 비행기 아이콘과 함께 비친 스카이스캐너 로고가 보인다. 이제는 때가 온 건가? 으음 바로 창을 닫고 일을 이어가는 것을 보니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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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또다시 시작된 여정
#1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여정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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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아, 너는 여행 안 가?
반가운 인사와 함께 언제 여행을 가냐는 질문은 늘 따르는 안부 중 하나였다. 10대에 열성을 다해 덕질했던 힘이 여행에 쏟아진 만큼 이에 진심인 걸 아는 지인들은 나의 여정 여부가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음.. 아직은 생각 없어!
지인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여행이야기는 뒤로 한채 하던 이야기를 쭉 이어갔다.
정말로 여행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당연히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전향한 지 이제야 겨우 3달 채 되지 않기도 하고 아직은 휴양지를 제외하면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들의 행보가 코로나 이전처럼 활달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주춤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내게는 해외로 바로 달려들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여행이란 행위는 미치도록 가고 싶은 '때'가 있다. 어떠한 것이 질려버리거나 어떠한 것을 씻겨내고 싶은 '때'가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와 행복에 아직 내 마음속은 그때가 오지 않고 잠잠하였다. 나는 여행을 위한 준비로 그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2월이 찾아왔다.
과할 정도로 많은 수정요구로 혼을 쏙 빼놓은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을 지나치니 여행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세상의 모든 굴레와 어쩌구 업무의 스트레스는 여정의 '때'를 완벽히 만들어내지는 못하였다. 일을 하면 스트레스가 당연히 있기에 큰 동기라고도 할 수 없었다. 더불어 그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 아주 재밌게 새로운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의 '여행의 때'는 예상치 못하게 불현듯 '과거의 감정'으로부터 찾아왔다.
작년, 심적으로 혼동이 왔던 시기를 잠시 지나쳐 본래의 자신감 넘치고 활기가 넘치는 나로 돌아왔다. 살면서 처음 느꼈던 감정을 겪어본 이 시기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보다 더 잘 알게 되었고 이전보다 성숙해진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젠 실패라는 경험이 두려워지지 않아지고, 투정대신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 만큼 이제는 내 옆에 부정적인 사람을, 투덜거리는 사람을, 무엇보다 스스로 이겨내보려 하지 않고 의존하려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아졌다. 스스로에 인해서도 그리고 누군가로 인해서도 부정을 타는 게 극도로 싫어졌다. 현재 평온한 나의 삶에는 이에 걸맞은 특정한 대상이 옆에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날의 내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무던하게 받아줬던, 대놓고 나에게 의지할 수 있도록 내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그 감정이 불현듯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갑자기 밀려오듯 찾아온 잔잔한 분함과 질림이라는 부정적인 감정에 나는 이 도시에 잠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완벽하게 때가 왔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가고 싶을 정도로 의지가 다다랐다. 달력을 보니 이번 달에 처리할 일들이 여럿 보이고 5월, 6월에 예정된 일정들이 보였다. 내게 공백으로 채워진 4월. 이때구나!!
손뼉 지르지 말고 머리 쳐~ 5월의 일정이 확실하게 픽스되어야 확실한 여행 기한을 세울 수 있기에 지금 당장은 비행기 표를 뒤로 하고 여정을 가기 위한 나만의 준비부터 시작하였다.
3월이 되자마자 나는 계획이라도 한 듯 곧바로 스페인어학원을 다니고 곧 떠날 여행지의 현지 정보를 알기 위해 네이버 카페, 오픈채팅 방에 들락날락하며 정신없이 정보를 주워 담았다.
일하느냐 학원 다니냐 현지정보 알아보느냐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2주를 흘러 보내니 업무 일정도 확실하게 픽스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비행기 티켓을 끊을 수 있겠다. 하루가 달리 비행기 값이 사정없이 오르는 걸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던 나는 여행을 떠나기 2주 전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렇게 3년 만에 또다시 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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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멕시코로
떠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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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다시 시작된 여정에 이르기까지 나는 매일같이 여행을 꿈꿔왔었다.
코로나가 1년 내에 금방 종식될 줄 알았던 20년도의 나는 졸업전시회가 끝나자마자 러시아 횡단열차에 올라타 오로라 헌팅을 꿈꿨었고,
코로나가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에 체념한 21년도의 나는 코로나 직전에 다녀온 쿠바에 향수라도 생긴 듯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 그곳에 머물길 꿈꾸었다.
이제는 정말 끝이 보일 것 같았던 22년도의 나는 자리만 잡히면 당장 떠날 듯이 마음을 다잡으며 어떠한 곳이던 여행할 때만을 기다렸다.
오랜 기간 꿈꿔오고 긴 인내의 잠식을 버텨온 만큼 코로나 이후 첫 여행지는 어디로 향할지 꽤나 오랜 고민을 하였었다.
새로운 대륙도 밟아보고 싶은데..
또 이전에 못 가 아쉬웠던 나라들이 아른거리네..ㅜㅜ
속으로 이미 전 세계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늘 그랬듯 여행을 떠나기 전 내 마음이 끌리는 곳을 향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자연스레 내 마음이 끌린 곳은 또다시 중남미였다.
험난한 사건사고 끝에 청춘의 한 장면 같았던 쿠바여정을 다녀오고 늘 마음 한켠 멕시코에 대한 미련이 한가득이었다. 당시 멕시코 직항이 있어 쿠바를 가는 많은 여행객들은 멕시코를 경유해서 쿠바로 입국하였다. 나는 이들과 달리 고생을 자처하여 미국과 파나마를 거쳐 쿠바로 들어가면서 멕시코를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늘 품고 있었다.
타코의 맛은 대체 어떠한지, 프리다칼로의 나라는 어떠한 색채를 지니고 있는지, 유튜버 빠니보틀이 그렇게 좋다고 했던 똘란똥고는 대체 얼마나 재미난 곳인지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이전의 아쉬움과 호기심 뒤에는 내 나름대로의 고충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압도하던 '두려움'이라는 친구였다.
사실상 쿠바를 굳이 돌아서 갔던 크나큰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멕시코에 대한 두려움이 큰 부분을 차지하였었다. 미디어에서 전해 들려오는 흉흉한 이야기에 겁을 먹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였다. 때로는 가볼 날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미련을 접어보기도 하였다. 내가 보다 더 많은 여행 경험이 쌓이면 그때는 담대하게 있는 그대로의 멕시코를 즐겨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하나로 멕시코 대신 미국 레이오버를 선택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3년간 여행유튜브로 갈증을 해소하면서 멕시코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였다. 생각날 때마다 남미카페를 들리며 현지 상황을 슬리 슬쩍 확인해 보니 혼자서도 안전하게 잘 다녀온 사람들 투성이었다.
생각보다 갈만할 것 같은데..?
여행을 갈 때 늘 빠질 수밖에 없는 딜레마 중 하나이다. 나라에서 지정해 주는 여행 권고 및 금지 지역이 아니라면 어쨌든 어느 나라던 사람이 사는 곳이다. 어디든 업무로 인해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들이 있고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보이는 유럽 여행객들과 미국 여행객들은 즐겁게 여행하고 있다.
근데 혼자서 정말 괜찮을까?
끝없이 꼬리를 무는 질문의 끝은 '여자 혼자서' 잘 갔다 올 수 있는지였다. 나이가 점차 들고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었다. 낭만 가득한 혼자만의 배낭여행을 매번 꿈꿔왔지만 비교적 시간이 넘쳤던 20대 초중반에는 늘 내 곁엔 동행이 함께하였었다. 모두 회사에 묶여있는 20대 후반의 지금, 홀로 자유로운 몸을 가진 나는 이번 여행이 꿈이자 도전이 되어버렸다.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고 익숙한 여행지로 떠날 것인가 아니면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이국을 경험해 볼 것인가.
두려움보다 호기심과 설렘이 이겨버린 나는 결국 그저 마음에서 이끌린 멕시코 티켓행을 끊어버렸다.
막상 티켓을 끊고 나니 두려움보다 설렘이 압도되었다가도 가끔 사건사고의 기사들을 보면 두려움이 확 차오르는 날도 있었다. 가만있어보자 내가 이전 여행들도 두려움이 없이 떠났었나..? 시계를 거꾸로 뒤집어보니 몽골을 떠났을 적에도 쿠바를 준비했을 적에도 이국에 대한 두려움은 늘 존재하였었다. 설렘이 두려움을 이겨버렸을 뿐 나의 여행에는 변함없이 존재하던 감정이었었다. 몽골여행 때도 몽골카페에서 흉흉하던 강도 사건사고들을 보고 첫 3일간은 게르에서 잠을 잘 때 카메라와 여권 그리고 지갑이 담긴 가방을 손에 꽉 쥐고 잠을 잤었으며 쿠바여행 때도 5페이지 중 1번의 게시물에서 꼭 등장하는 심각한 캣콜링 문제를 머리에 새기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었다. 결론적으로 두 여행 모두 떠나기 전 긴장을 하고 갔으며 여행지에 머물수록 무서운 감정은 있었기라도 한 듯 까마득히 잊은 채 좋은 추억을 쌓아갔다.
떠나지 않았던 여행에서는 호기심보다 두려움의 감정에 먹혀버린 적도 있었다. 한 때 모로코에 꽂혀 거의 갈듯이 준비를 마치다가 두려움을 끝끝내 이기지 못하여 쿠바로 여행지를 변경한 적도 있었다. 지금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호기심 그리고 설렘의 이끌림이 더 큰 것일까? 아니면 두려움이 나를 삼켜먹고 있는 것일까?
나의 마음은 변함없이 멕시코였다.
이전의 비슷했던 감정을 회기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이제는 정말로 설렘이 두려움을 삼켜먹으면서 여행자로서의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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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홑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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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아, 너는 여행 안 가?
다시 시작된 반가운 인사와 함께 언제 여행을 가냐는 질문으로 인사말을 연다. 이제는 진짜 여행을 가니 대답을 할 수 있겠다.
응, 곧 여행 가 4월에
드디어 가구나!!!! 어디?
멕시코
헤엑??? 멕시코? 너무 위험하지 않아? 혼자서???
놀란 두 눈과 함께 벌어진 상대의 새까만 입 안이 나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 검은 공간에서 온갖 걱정과 근심거리의 대답이 울려 퍼진다.
이번 멕시코 여정은 정말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몽골, 쿠바 그리고 멕시코까지. 비대중적인 여행지를 갈 때마다 지겹도록 듣는 걱정과 근심 그리고 호들갑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냥 입을 닫는 길을 선택하였다.
호들갑이라는 표현이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여 이렇게까지 표현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이만큼 이해하기 쉬운 단어가 없다 생각하여 이 단어 사용에 양해를 미리 드린다.
정말 오랜 고민 끝에 결정지은 여행지.
내 마음이 가장 이끌린 곳으로 결정지은 여행지.
조금이라도 더 수월한 소통을 위해 학원까지 끊으며 결정지은 여행지.
조금이라도 더 조심하기 위해 현지정보를 매일같이 확인하며 결정지은 여행지.
누구보다 신중하게 누구보다 진지하게 누구보다 기나긴 고민 끝에 스스로 선택한 여행지였기에, 더 이상 상대방의 과한 호흡을 함께 맞춰줄 수 없었다. 부모님을 제외한 걱정은 완벽하게 사절이다. 당연하게 귀한 자식 걱정할 부모님을 위해서 내 나름대로 매일까지 연락할 것을, 그리고 위험한 행동을 안 할 것을 약속하며 최대한 주변 사람들 모르게 조용히 여정의 준비를 끝마쳤다.
누군가의 시선과 참견에 방해받지 않는 홑몸으로,
여정의 변수를 흘러가는 대로 즐길 수 있도록 아무런 계획도 없이,
오로지 왕복 비행기 티켓과 첫날에 묵을 수 있는 1박 숙소만 예약한 채로 나의 멕시코 여정의 길에 올라탔다.
드디어 내가 멕시코를 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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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6월부터 로컬 여행자의 여정기를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
매주 목요일마다
한 달에 1명의 여행자씩
짧고 간결하게
정보성이 아닌 '이야기'를 중점으로
여정의 길을 늘 갈망하는 이들에게 재미난 에피소드로, 일상의 지루한 틈을 타 짧은 여행을 보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그 경험이 모여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게 만들어 주는 동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여행의 이야기들을 모아, 지금 바로 move or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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