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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Jul 15. 2024

ep.11 [남아공] 구름에 가려진 도시의 매력을 찾아

아프리카 남아공에서


ep11.

구름에 가려진
도시의 매력을 찾아


11시간을 달려 카타르로 넘어와 또다시 10시간의 비행 끝에 남아공에 도착하였다. 지도를 펼쳐 아프리카 대륙을 살펴보면 얼마나 큰 것인지 체감할 수 없었는데 이게 웬걸 직접 와보니 뼈저리게 알겠다. 이곳에 오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튀르키예 가는 거리랑 맞먹는 거리를 2번 왔다간 샘이다.


와봐야지 체감할 수 있는 대륙의 크기에 놀라며 기지개를 한 번 쭉 시원하게 켜준다. 인생 첫 아프리카 대륙인데 이상하게 낯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수하물을 찾자마자 물 흐르듯 유심을 사고 우버를 탈 수 있는 택시존으로 길을 따라나섰다. 사람도 바글바글, 길도 꼬불꼬불. 불과 1년 전에 다녀온 미국과 멕시코에서 신명나게 길을 잃었던 나의 절망스러운 방향 감각이 이곳에서 사라진 듯하다. 텅 비어진 공항 속, 하나 둘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크흠 이 공간에서 황색과 동그란 눈의 생김새는 내가 봐도 눈에 튀긴 하다.


택시존으로 나서자마자 드디어 나와 비슷한 여행자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데구르르 앞 구르기 하며 보아도 SSAP 동양인 상을 가진 나는 서양 여자애들한테 추태의 눈빛을 한껏 받고 있었다. 인자한 엄마미소로 나의 움직임을 따라 돌아가는 눈과 올라가는 입가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웃음으로 답하는 것이었다.


속마음: 나이 물어보면 나보다 어릴 것 같은ㄷ.. 흐극ㅎ걱ㅇㄱㄹㅇ

① 남아공에서 펭귄보기 ②나미비아 대사관 가서 나미비아 비자 따내기 미션을 가지고 있는 나는 비장하게 택시에 올라탔다. 짧은 터널을 지나 도로변에 나오니 여행자들에게 닳도록 들었던 테이블 마운틴이 눈앞에 거대하게 서 있었다. 이십여분 달리는 내내 점점 커지는 테이블 마운틴의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더불어 도시 안에 이러한 산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시내로 진입하기 전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이 감상하느냐 정신이 없었다. 건물이나, 자연이나 하나씩 따로 보면 낯설지 않는 풍경인데 이거 이상하다. 섞여버리니 너무 특색이 있다. 건물은 유럽식 건물에 자연은 산이 껴있는 바다도시. 익숙한 요소들이 한 공간에 화합이 되어버리니, 여행하며 처음 보는 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건물에 가려질 땐 잠시 산과 바다의 존재가 사라지며 온전한 도시의 모습을 보이다가, 한 블럭 지나 펑 트인 도로가 나타나면 그 공백엔 바다와 테이블 마운틴이 떡하니 서 있었다. 도시의 트임에 벌써부터 매료되며 해가 지기 직전 호스텔에 입성하였다.



케이프타운 롱스트릿트 한가운데에 있는 91 루프탑 호스텔은 구글 평점부터 장난 없었던 호스텔이었다. 무려 20명이 들어가는 혼성방을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대마다 캡슐로 분류되어 있어서 가성비 최고짱이었다. 짐도 다 풀기도 전 도착 첫날 국룰 코스인 시원하게 씻으러 코 앞에 있는 화장실로 향하였다. 큼직한 샤워실 3개, 깨끗한 변기 3대, 넓직한 수면대만 무려 4대. 화장실마저도 굿잡이다. 18,000원에 조식도 주고 이 정도의 넓이와 정돈됨, 그리고 프라이빗한 공간이 보장된다니 지금까지 갔던 호스텔 중 가격대비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몸을 잠시 축이고 나서는 바로 로비로 내려갔다. 기내식을 4번이나 거쳐오니 배는 하나도 고프지 않았다. 발걸음이 닿은 곳은 식당이 아닌 인포데스크였다.


메일로 미리 물어봤었는데, 여기서 프린트 가능할까?

아프리카 여행에서 유일무이하게 동행을 구한 나미비아로 향하려면 비자가 필요하였다.(한국엔 나미비아 대사관이 없다.) 안 그래도 까탈스러운 나미비아 비자 발급 준비에 본국에서 미리 온갖 서류들을 준비하였지만, 10개나 되는 수많은 증명서 중, 남아공 입국 도장을 필요로 하여 미처 모든 것을 마무리짓고 올 수 없었다.


직원은 '당연히 가능하지~'하며 곧바로 인쇄를 해주었다. 종이를 건네받고 메일에서 답변받은 대로 프린트 비용을 내려고 하자 아주 쿨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에이 한 장인데? 돈은 괜찮아

아까 체크인 때부터 느꼈지만 이곳 직원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매번 웃어주고 참 친절하다.


2층 방으로 향하는 직전, 로비는 벌써부터 여러 각국의 여행객들이 모여 신나는 음악 속 어느 한 테이블에서는 게임을 하고, 어느 한 테이블에서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남아공의 밤은 위험하기에 대게 호스텔의 밤은 낮보다 뜨겁다. 이러한 파의 광경 바로 옆에서 내향인 모먼트가 발동된 나는 파워 외향인들의 기에 싸악 빨려 너덜너덜해진 채로 밤 10시도 안된 시각 그대로 침대에서 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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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분위기 나면 기 빨려서 도망치는 자



남아공에서의 이튿날이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일을 병행하게 된 이번 여행 또한 현 상황을 단숨에 인정하듯, 자동으로 눈이 떠진 새벽 6시에 노트북을 들고 로비로 나왔다. 1층 대문을 활짝 열고 직원들은 조식을 열기 위해 청소를 구석구석이 하고 있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니, 한국에서 방에 들어박혀 일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기분 좋은 맛이 있다. 기분 좋음도 잠시, 완벽한 이 호스텔에도 유일한 흠이 있었다. 처음 맡아보는 꾸리꾸리한 냄새가 코를 빡- 찌르면서 머리를 진하게 울리게 만들었다. 특이한 찌린내의 주인공인, 대마초 냄새가 로비를 꽉 채우고 있었다. 내가 등지고 있는 벽면에는 빨갛게 '대마초 금지'가 떡하니 적혀있는데 모를쇠다.


오늘의 계획은 한국에서 미리 예매해 두었던 희망봉 투어 & 펭귄이 있는 볼더스 비치 버스 투어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전에 시간 여유가 된다면 나미비아 대사관을 후딱 갔다 올 예정이다. 오늘 막 정한 계획임으로 이는 어찌될지 나도 모르겠다. 오늘 실패하면 뭐, 내일도 있으니.


8시까지 일을 하는 동안 조식 먹을 생각에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작업을 하면서 조식을 먹는 사람들을 힐끗힐끗 쳐다봤었는데 세상에 여기 퀄이 장난이 아니다. 멕시코시티에서 머문 호스텔이 조식 넘버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호스텔은 무려 조식에 메뉴판까지 있다니... 여기 대마초 냄새만 빼면 위치 접근성, 조식, 가격, 직원 친절함 별 다섯 개다.


주문 방식을 잘 몰라 사람들을 따라 줄 서서 주문을 넣었는데 오라랏..?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내 것만 안 나오는 것이다. 그래.. 주문이 밀렸을 수도 있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기다림만 50분째, 분명 나보다 늦게 주문한 사람도 지금 받았는데 내 자리의 테이블만 텅- 비어있었다. 이미 대사관을 다녀오는 건 물 건너갔고, 곧 있으면 버스 투어를 하러 나가야 하였다. 마음의 조급함과 슬 짜증이 밀려왔을 때, 바빴던 직원들이 여유가 보이는 틈 사이 호다닥 물어봤다.


나 이제는 가야 하는데 내가 주문한 조식이 아직도 안 나왔어..ㅠㅠㅠ
어? 잠시만..
미안한데 너의 주문이 들어가지 않았어..ㅠㅠㅠ


핳... 이쯤 되면 인종차별이 아닌가 싶었는데 내가 방번호를 말하지 않아서 주문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덩달아 슬퍼하는 직원을 표정을 보며 기억을 더듬더듬해보니, 직원이 '방번호 찾아오고 다시 주문해 줘'라는 말을 대충 듣고 그림의 떡만 간절하게 침 흘리며 보고 있었던 것이다.

침만 흘리고 있는 바보아닌교....

내일의 조식을 기대하며 허기진 배를 들고 남아공 길거리의 분위기를 쓰윽 살펴볼 겸 조금 일찍 나왔다. 이곳의 여행 후기를 보면 남녀 모두 하나같이 했던 말이 있었다. '둘 이상 같이 다니는 건 괜찮은데, 혼자 다닐 때는 확 분위기가 달라지는 걸 체감했어요. 혼자보다는 같이 다니는 걸 추천해요.' 남자 여행자들도 이렇게 느꼈을 정도면 빼빼 말라 힘이 없어 보이는 나에겐 더더욱 유의해야 할 사항임을 유념하며 남아공의 거리로 나왔다.


핸드폰 사용은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꽉 쥐고 살짝 많이 쫀 채로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숙소 근방은 괜찮았다. 영화 촬영을 하고 있어서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였다. 촬영 장소를 벗어나 길을 따라 쭉 걷다가 5분 뒤, 바로 숙소로 줄행랑쳤다. 내가 겁을 먹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유독 다른 나라에서보다 현지인들의 분위기에 압도되었음을 느꼈다. 유난히 현지인들이 무리 지어 다니었고, 그간 여행의 빅데이터를 통해 인종이 신기해서 쳐다보는 것과 다른 느낌을 받자마자 이건 아니다 싶어 바로 뒤돌아왔다. 실제로 아프리카 내에서 무리 지어 미행 강도를 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잠깐의 나섬이었지만, 안전한 여행을 위해 코앞에 있는 버스투어 정류장을 제외하면 도보 15분 근방의 대사관과 버스터미널은 우버를 타고 다니기로 결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경험은 쌓이는 것이라고 이번 여행은 벌써부터 내 나름대로 노련미가 돋보이는 것만 같다. 빠른 판단, 빠른 조치 아주 나이스했어~~~~.


이제 드디어 진짜 남아공 여행을 하러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내가 생각했던 버스투어는 2층짜리 거대한 버스였는데, 직원이 안내해 준 버스는 너무나 작고 소중한 봉고차 빨간 버스였다. 머쓱한 상태로 버스에 입성하자마자 모든 승객이 날 쳐다보았다.


아니 잠시만, 할머니 할아버지 밖에 없으시잖아...?


잠만 내상상과 다르잖ㅇ..?

'젊은 동양인이 여긴 웬일인겨~' 하는 표정으로 모두 나를 바라봐주셨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도 이게 이런 투어인 줄 몰랐습니다만...? 과거 나는야 대학시절 알바몬 인생좌. 백화점 알바를 통해 아주머니, 할머님들이랑 친해지기에 이미 도가 터있는 사람으로서 자신 있었다. 서양인 할무니 할부지들 아저씨 아주머니들 사이의 유일무이 동양 girl 잘 부탁드리겠습네다~~~~


잘 부탁드려효

가이드가 함께하는 투어인지 몰랐었는데, 설명을 엄청나게 자세하게 해 주셔서 영어를 꽤~나 못하는 나는 영문도 못 알아먹고 그저 풍경만 바라보았다. 근데 진짜 풍경 기똥차다.. 창문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과 자연을 볼 때마다, 치안이 안 좋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구름에 가려진 이 도시의 매력에 휩싸이는 듯하였다.


구름이 삼켜버린 도시.. 이 풍경 마저도 멋있었다

1시간 가량을 설명과 함께 열심히 언덕을 올라올라 첫 번째 도착지점인, 희망봉에 도착하였다. 우리나라의 빡빡한 투어 패키지와 다르게 아주 널널한 1시간 30분이라는 자유시간을 주었다. 자유를 다시금 거머쥐자마자 배고픈 배를 채울 식당으로 달려갔다.


조식을 못먹었던 게 꽤나 섭섭하였던 팔 길이만한 샌드위치 하나랑 커피를 하나 뽑았다. 마치 무기를 든듯냥 긴 바게트를 손에 쥐고 테라스 자리로 향하였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풍경과 달리 테라스 자리는 텅텅 빈자리와 음료수병이 대신하고 있었다.


아니, 이래 말도 안 되는 풍경에 왜 사람들이 별로 없지?


풍경만 봐도 벌써 맛있는 샌드위치

명당자리에 앉아 바게트를 한입 베어 물었다. 요거요거 겉모습과 다르게 생각보다 선방하는 맛인걸? 뜨끈한 커피를 홀짝거리 바게트와 열심히 싸우며 풍경을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나를, 아니 샌드위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할로?

색깔부터 불길한 이 친구들은 내 바게트가 짧아질수록 하나둘씩 내 곁으로 달라붙기 시작하였다. 불길한 마음이 엄습하여 눈치싸움을 하듯 바게트를 최대한 빠르게 입에 욱여넣는 게임은 이미 진작이었다. 몇 분 간의 기싸움은 바로 익숙함으로 끝이난 줄 알았다. 검은 새들이 고개를 돌려 신경을 안 쓸 때쯤 틈을 타 풍경을 보며 멍- 때리자마자 새놈의 새끼 한 마리가 내 손에 쥔 바게트 샌드위치를 촵-! 하고 바로 낚아채었다.


이 사진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하늘 위로 빈 손의 뻗침과 이와 함께 자지러지는 괴성으로 주변에 있던 새들은 퍼드득 퍼더덕- 삼삼오오 모여 내 앞에서 샌드위치 식사 파티를 벌이고 있었고 그 곁으로 직원들과 사람들이 원을 그려 모두 나를 쳐다 모았다.


정말 미안해!!!!! 새 대신 내가 사과할게

열심히 쪼아 먹고 있는 새의 옹뎅이를 걷어차듯 직원은 바로 쫓아내며 내게 사과를 대신 전하였다. 아름다웠던 뷰를 가진 테라스는 순식간에 웃음장이 되어버렸다. 허탈한 웃음과 함께 테라스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관광객들은 엄지를 치켜세워주고 직원들은 웃참을 하며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였다. 테라스에 사람이 없었던 건 다 이유가 있었군하..? 나의 마지막 세 입을 훔쳐먹은 망할 새놈들이지만 배두둑한 상태로 이곳에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빅웃음을 선사해 주었으니 봐주겠다 흥.


새 덕분에 적당히 두둑한 배와 더불어 영문도 모르는 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한 이 자는 기분이 좋은냥 촐싹거리는 걸음으로 전망대 쪽으로 산책도 하고, 혼자 셀카도 찍다가, 기념품 샵 구경도 신나게 하며 알 찬 시간을 보내왔다.


슬 약속 시간이 되었다.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버스들 사이에서 홀로 뾱- 작은 우리의 빨간 버스 앞으로 갔다. 가이드는 이미 진작에 다 모이신 할무니 할부지들을 확인하고, '웨얼이즈 아시안걸-' 입으로 읊조리며 고개를 젓다 나를 확인하고 큰 소리로 다음 일정을 외치었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희망봉 싸인(사진 명소)을 보러 가도 되고,
직접 걸어가셔도 되어요. 근데 직접 걸어가면 관경이 정말 예쁘답니다.


서양 할부지들을 아주 잘 다루실 줄 아는 가이드님은, '이렇다면 걸어서 가야제~'하는 말에 입 맞춰 바로 역할 분배를 시켰다. 가장 키도 크고 리더십이 있어 보이는 중년 아저씨에게 대장의 명분을 올려 세워주고, 모두들 이를 따라서 저 밑을 쭉- 따라 걸으라고 하셨다.


오래 걷기 어려우신 연장자 할무니와 가이드는 버스에 탄 뒤, 덩그러니 희망봉 끄트머리에 남겨진 우리는 모두 대장 아저씨를 뒤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대장 아저씨의 걸음에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중간중간 유일무이한 아시안 girl을 찾으며 잘 따라오라고 세심한 체크도 하였다. 바람이 너무 훼에엑 심해서 걷다 날아가는 건 아닐까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바람에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쓰윽 넘기면 가이드 말대로 예술적인 바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미친 풍경과
함께 미친 나의 머리카락

중간에 미친바람을 타고 날아가버리기 직전, 에메랄드 빛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절경에서 잠시 사진 타임을 가졌다. 홀로 예쁜 척 떨며 셀카를 찍고 있는 나를 보고 대장 아저씨는 자기가 찍어주시겠다고 먼저 손 내밀어 주셨다. '아... 외국인에게 사진은 좀...'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기도 전 이미 핸드폰은 내 손에서 작별인사 하였다.


아저씨..... 원더풀이라면서요...

결과물을 보니 처참 그 자체였다. 머리카락은 생명이 부여 넣어진 것인지 중구난방으로 펼쳐져 있었고 비율도 얼굴도 원더풀이 아닌 왓더퍽이었다. 그의 손이 뭔 잘못이요.. 내 얼굴이 문제겠지.. 그뢓지... 그래도 섬세한 챙김에 뜨끈한 인류애를 얻으며 다시 언덕길을 향하게 나아갔다.


뭐야 쉽네~~~

오만한 말만 내 맡는 자. 그녀는 벌을 받을 것이니,... 30분 정도는 쭈욱- 내리막길에 정돈된 길이었다. 의기양양하게 걷다 갑자기 급격한 돌밭과 산 위로 올라가며 바위틈에 기어 올라가야하는 등산코스가 펼쳐졌다. 돌바위를 올라타고 바람 공격에 안면이 구겨지고 나서야 드디어 돌산 정상 위로 올라왔다.


야호~~~~~~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바람 때문에 뭘 찍어도 너무 이상해서 포기하였다. 같이 올라탄 할무니 할부지들도 지친 기력에 혼이 나간 표정으로 가만히 바위 위에 앉아 쉬고 있었고, 그 위로 머리카락만 신나게 춤추고 있었다. 단체로 바람을 타고 바다로 빠질 것만 같아 곧바로 희망봉 사인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제일 연장자이신 할부지가 1빠라니... 체력인 20대 후반인 나보다 좋으시다.


엄마아빠!!!! 나 살아 돌아왔어ㅇ.....!!!!!!!

1시간의 대장정 끝에 드디어 도착하였다. 사진이고 나발이고 온몸이 흐물흐물 해진 나는 시원한 에어컨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굴러 떨어졌다. 지친 여력으로 핸드폰을 드니 데이터도 뭣도 아무것도 안 터진다.


이곳에 오기 전, 블로그에서 택시타고 케이프 포인트왔다가 숙소에 못 돌아갈 뻔했던 썰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분처럼 택시 타고 이곳에 왔으면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


모두들 사진스팟에서 사진타임을 마치고 이번에는 달려달려 대망의 펭귄이 살고 있는 볼더스비치로 향하였다. 남아공에 온 단 하나의 이유, 야생 펭귄을 보러 간다니 심장은 설레 날뛴 상태로 그대로 버스에서 숙면을 취하였다.


40여분을 달려 버스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볼더스 비치에 왔다. 가이드가 우리를 새장에서 풀어주자마자 나는 바로 입장권을 들고 해변으로 달려들었다. 바다에 진입하고 눈에 보이는 게 펭귄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이라니.. 어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길래, 아이스크림을 하나 입에 넣고 2n년간 고대했던 펭귄과 마주하러 갔다.


파이앤플 맛 아이스크림 쵸베롭
드디어 내가 왔다 펭귄들악!!!!!!!!1
귀욤뾰짝한 펭귄들

몇십년을 기다려 만남을 성사하게 된 펭귄들과의 내나름 깊은 교감 이후, 보다 더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기념품샵이었다. 아까의 케이프 포인트보다 훨씬 거대한 펭귄 인형들에 눈이 뒤집혀 이것저것 열심히 들쳐보았다. 펭귄가방도 하나 사고 싶었는데 이런들 저런들 여행 내내 짐만 될 것 같아 내려놓고 고작 펭귄 키링 2개만 손에 거머졌다. 솔직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대박 후회한다.(여행지에서는 살까말까 고민하는 거 무조건 사야 답인듯하다)


키링 한 개는 곧바로 가방에 끼웠다. 펭귄을 대롱대롱 매달고 다시 버스에 올라타 나의 펭귄을 본 최고 연장자 할무니께서 이 친구의 이름까지 붙여주셨다.


찰리를 소개합니다
얘 이름은 찰리야!!!

너무 해맑으신 표정으로 닉네임을 붙여주셨다. 오늘 아침 버스에 올라탈 때는 홀로였지만, 내릴 때는 찰리와 한 쌍이 된 몸으로 버스투어의 일정을 마치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면 워터프론트에서 내려 저녁을 먹고 가려고 했는데 해가 이미 반쯤 넘어가 애매하게 어둑해진 6~7시경에 되어야 숙소로 돌아올 수 있어 포기하였다. 오늘 하루 펭귄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기대한 바가 없었는데 새한테 음식 뜯긴 것부터 할무니 할부지와의 트레킹, 펭귄과의 시간까지 그 이상의 재미였다. 비록 희망봉에서 하이킹하는 줄도 몰라 선크림을 안 바르고 나와 하루 만에 갓 캔 흙감자가 되었지만, 재미난 오늘 하루의 흔적의 추억으로 받들이겠다.


깨끗하게 씻한껏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만찬과 함께 오늘 마지막 하루를 끝내고자 한다. 남아공의 밤은 걸어 다니기에 적합하지 않으니 호스텔에서 운영하는 1층 식당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가이드께서 남아공 왔으면 피쉬앤칩스를 꼭 먹어보라고 하였지만 내멋대로 치킨윙과 내 사랑 감자튀킴을 시켰다. 생맥주 한 잔을 탁- 들이키며 펭귄좌인 찰스를 들고 여행의 첫 하루부터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로 채운 하루에 만족하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찰리와 함께 참된 저녁식사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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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3일 동안 아주 짧게 남아공을 머물면서, 그리고 이 글을 써 내려가며 비번하게 쓰였던 문장이 있었다.


치안이 안 좋은 게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다...

이 문장은 남아공에서 처음 내뱉었던 것은 아니였다. 작년 멕시코 여행에서도 질리도록 반복했던 말이었다. 치안이 안 좋다는 이유로 그 나라가 가진 자연과 문화가 먹구름사이에 가려져 버리기엔 한탄스러울 정도로 볼거리와 즐길거리 그리고 그것은 넘어서는 이들의 문화가 너무나 특색 있고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날 하루, 버스를 타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면서 이 나라가 치안이 좋았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나 또한 이곳의 거리가 무서워 5분 이상의 거리는 우버를 택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였다. 뻥 트인 테이블 마운틴이 보이는 거리를 원 없이 두다리로 활보하고 싶은데 말이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은 우리가 빈번하게 사건사고를 듣는 요하네스버그만큼 어마무시한 곳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처럼 안전한 곳은 확실하게 아니었다.


남아공에 도착하자마자, 전일 케이프타운에서 한국 남자 유튜버의 2번의 택시 강도 및 구타 사건으로 인해 한국대사관에 유의 문자가 연속해서 날아왔었고,

남아공 이후 나미비아 여행에서 함께 동행하였던 오빠는 이후 홀로 이곳의 길을 걷다 칼 든 강도를 만났었고, (다행히 큰일은 없었다고 한다)

내가 머물었던 시기에 같은 호스텔에 묵었던 유일한 한국인이자 여행 유튜버분은 남아공 영상을 올리고 위험한 곳에 여성 홀로 여행 왔다며 이곳에 와보지도 않는 구독자들로부터 선넘은 비난을 듣기도 하였다.


평균적인 배낭 여행자들 중에는 괜한 모험심 때문에, 객기를 부리고자 이와 같은 장소를 일부로 찾지 아니한다. 치안에 가려진, 이보다 더 큰 무언가를 보기 위해 우리 또한 용기를 내어 이 자리로 찾아왔다.


그러함에도, 그저 여행자로서 조심하며 잠시 발만 디딛고 가는 우리이기에 여행자인 내가 이것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잠에 들기전 머리 속을 맴돌았다. 이곳에서 살아가고 계신 한인분들. 아프리카에서 도시 중 도시인, 남아공드림을 꿈꾸며 이곳으로 들어오는 각국의 수많은 아프리카 난민들. 치안으로 삶의 터전의 안정성을 잃어버린 현지인들. 그들이 준 환대만큼 나도 더 웃어주고, 그들을 위해 그리고 이 나라를 위해 잠시나마 눈을 감고 기도를 읊조리는 것이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었던 최선이겠구나.


미디어와 이슈에 감싸져 무섭게 봤던 시선에 미안함을,

너무나 짧았던 경험이었지만 모든 한 사람 한 상황이 추억이 되게 해준 남아공에 고마움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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