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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Oct 02. 2024

ep.12 [나미비아] 밤하늘에 수놓은 별이 건넨 위로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ep12.

밤하늘에 수놓은 별이
건넨 위로


나미비아 여정은 20일간의 아프리카 여행에서 유일하게 시작하기도 전, 모든 일정과 동행 계획이 철저히 이루어진 여행이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한 달간의 유럽 여행에서 던져버리고 온 계획표를 다시금 손에 쥐었다. 하지만 현재, 계획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던 이전과 많 것이 라졌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프리랜서로 지내며 목표만 정해놓고 모든 것을 유연하게 대응, 삶의 자리에서 자유로운 여행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지금의 나에게 '철저한 계획'은 삶의 여정에서도, 여행의 유랑에서도 유연함을 막는 장애물로 화하였. 예측하에 이루어져야 할 有계획만을 행하였던 과거의 내가, 어느덧 예상할 수 없는 無계획 익숙해져버린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버렸다니.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자의 여행을 마치고 약속한 날짜에 모여, 함께 짠 계획에 발맞춰 오지로 뛰어들 여행이 다가오고 있다. 그간 잘 짜여진 계획에서 해방되었던 내가 다시금 딱 맞춘 퍼즐의 한 조각이 될 수 있을까?

.

.


곧 마주하게 될 붉은 빛의 땅으로-




#1

벗어날 수 없는
뒤틀림의 시작


큰일이다. 결국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분명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오를 오후 1시에 이곳을 도착해야 했었는데.. 사람 한 점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새로운 나라의 도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

.



늦은 밤이라 불리우는 10시의 시각.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채 호스텔 초인종을 연달아 빠르게 누르며 바로 이곳, 나미비아 빈트후크에 도착하였다.


너 무슨 일 있어???

여러 번 울리는 초인종에 화들짝 놀란 직원이 문을 열어주며 내게 한 마디를 건넸다.


아냐... 별 거 아니야..! 걱정해 줘서 고마워

인생에서의 첫 육로이동 경험은 시작부터 매웠다. 마주할 변수를 앎에도 올라탄 여정이었지만, 여정에서 일어나는 창의성은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작고 귀여운 것인지를 매번 확인시켜 준다.


이전 여행에서도 여러 번 멀미와의 싸움에서 처참하게 패배하였던 나는 이번 버스 여정 역시 멀미를 이겨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준비를 다하였다. 최약체 멀미인에게 최고로 잘 드는 키미테 여러 장. 혹시 모를 알약 여러 개. 비행기를 올라타기 전, 기나긴 버스 이동을 향하기 전, 당연히 키미테를 장착할 생각으로 가방에 늘 구비하고 있었다. 근데 그 누구가 알았는가. 내가 버스에 올라타기도 전에 멀미를 할 줄이라고는-


남아공에서 커피를 먹고 워터프런트와 나미비아 대사관을 택시로 오가다 멀미를 거하게 한 채로 장차 22시간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합류하였다.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는 홈리스존이 크게 형성되어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음에도 멀미로 허덕이고 있는 나에겐 무섭고 말고 안중에도 보이지 않았다. 덕택에 수많은 응시의 시선을 느낄 새도 없이 키미테를 붙인 채 들어오는 잡상인에게 산 바나나 한송이를 손에 쥐고 스르륵 잠에 들었다.


'This is Africa'라는 명칭답게 붉은 모래알로 둘러싸인 나미비아로 향하는 길은 변수의 연속이었다. 쿠바에서 이미 호되게 당해 익숙했던 버스 펑크가 이곳에서도 일어나며 도로변에 무한정 대기를 하였었고, 나미비아 국경선에서 늘어지는 입국심사와 수하물 검사를 한없이 기다려야 하였다. 펑크로 인해 새로 바뀐 버스에는 유일무이한 동양인을 위한 깜짝 친구도 함께 껴주었다.


응 바선생 4마리가 내 친구야~

기나긴 대기에 버스 탑승시간만 30시간을 넘겨버려도, 버스에 바퀴벌레 4마리가 위아래로 사삭삭- 지나가도, 펑크가 나 버스가 바뀌어도, 솔직히 상관없었다. 여행에서는 남는 게 시간인 방랑자이며 동행들을 만나기 전까지 일정 여유가 있는 상태이니 말이다. 크흠 어디 보자 옹뎅이는 잘 살아있나? 음 옹뎅이의 절규도 반복되는 매점 로 인해 심심치 않게 잘 살아있다.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창밖너머로 또다시 짓누르는 어둠이었다. 관광 인프라가 좋지 않은 나라를 다는 것은 그저 여행 취향일 뿐, 이래 봬도 나..? 완전 겁쨍이 쫄보다.


무서웡략겅ㅇㅇㅜㅜㅜ

밤 10시를 향해 달리는 시간에 유심도, 이 나라의 돈도, 뭣도 없는 상태로 나미비아 땅에 떨어졌다. 가는 내내 20분 거리의 호스텔을 걸어가는 것이 좋을지, 택시를 타는 게 더 안전할지 온갖 걱정을 하다 에라이 모르겠다 미래의 나 자신에게 맡기자 속으로 외치며 눈을 질끔 감았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의 도시가 자취를 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건물조차 몇 없는 휑해 보이는 도시에는 3-4대의 택시들이 유일하게 우릴 환영해 주고 있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안이 안전하다고 한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나 같은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는 택시에 몸 실는 게 나은 판단이다 싶다. 버스 꽁무니에 실어진 짐을 힘겹게 꺼내고 앞서 미리 찜해두었던 택시로 향하자마자 생각지도 못하였던 상황이 펼쳐졌다.


넌 대체 누구야...?

조수석에 웬 모르는 남자가 탑승하고 있어 겁에 질린 채 물어보았다.


나도 너랑 버스 같이 타고 왔는 걸

휴.. 너무 경계를 하였나 보다. 대화를 해보니 길바닥에서 n시간 동안 대기하고 있을 때 봤던 얼굴이었던 것 같다. 왜 갑자기 쉐어를 하냐 지속 묻는 나의 질문에 택시기사가 핸들을 잡으며 '택시가 몇 대 없으니 셰어를 할 수밖에 없네 이해해 줘'라는 말을 덧붙였다.


택시는 먼저 쉐어한 탑승객의 도착지로 향하였다. 분명 정류장에 간다 했는데 웬 주유소에 다다랐다. 조용했던 밤거리와 대조되게 이곳은 쨍한 형광등 빛이 뚫고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을 쫓으러 온,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택시가 서서히 멈추면서 불량배처럼 보이는 친구들 무리가 다가와 뒷좌석에 타고 있는 나를 빤히 응시하며 택시의 속도와 함께 발맞춰 걸었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을 직감하며 식은땀을 흘린 채 속으로 '제발 꺼져!!!!'라는 기도만을 할뿐이었다. 서둘러 빨리 가자말만 반복하는 나의 외침에 눈치 빠른 기사는 바로 핸들을 다시 잡고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리 안전한 나라 한 듯 이곳이 아프리카 땅이긴 하구나.


이 땅을 야밤에 밟을 줄, 치안 경보 단계에도 안 뜨는 이 나라에서 음산함을 느껴볼 줄 누가 알겠나. 그러함에도 어찌저찌 나미비아 땅에 왔다. 오랜만의 마주하는 오지의 땅, 동행들과의 여정, 예정에도 없었던 나라 그리고 원치 않게 이룰 수밖에 없는 행해여질 계획표. 태양과 달만 의지해야 하는 주황색의 사막을 가진 미지의 땅, 이곳에서 나는 과연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피해 갈 수 있을까?





#2

뒤틀림이 만들어준

인연의 인연


여정에서의 뒤틀림은 나미비아의 첫인상과 같이 무서움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전혀 반대되는, 최고의 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초긍정의 변수 또한 있다.


스산했던 나미비아의 환영과 다르게 둘째 날의 하루는 쨍쨍한 햇볕과 파란 하늘이 내 머리 위로 반겨주었다. 이것이 얼마만의 여유로움과 평화로움인가. 예정된 오늘이라면 각기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3명의 여행자들을 만나 내일 아침 바로 렌트한 차를 끌고 야생동물들이 있는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5년 전의 나와 달리 이제는 '상황의 맡김'이 더 편해진 여행자가 됐었다. 나미비아에서 두 발로 온전히 하루를 다 보낼 수 있는 날도, 이동 시간에 쫓기지 않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만큼은 모든 것을 이곳에 주어진 상황에 맡겨보는 것이 목표이자 계획이다.


배낭을 메며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더답게 오전에 일을 간단히 마치고 세상 문명과 맞닿을 준비를 하러 밖으로 향하였다. 드디어 마주하는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는 나름 잘 사는 아프리카 도시라는 명예와 다르게 작고 소박한 도시의 모습이었다. 한눈에 다 담기는 공간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근방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Wernhil 쇼핑몰 MTC(나미비아 통신사)에 도착하였다.


뭐야 줄이 왜 이렇게 길어..???

점심시간이라 인파가 몰린 건지 원래 사람이 많은 것인지, 유심 하나 사기 위해 기다랗게 놓인 줄에 서야 하였다. 핸드폰을 드니 쇼핑몰의 무료 와이파이마저도 인원초과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핸드폰도 안돼, 줄은 안 줄어들어, 할 것은 멍 때리기 뿐이었다.


피지컬 좋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구경하며 멍~ 때리고 있을 때면 호기심 많은 현지인들이 내게 한 마디씩 말을 붙였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무엇을 하러 왔어', '유심을 사려면 서류를 써야 해', '서류 써야 하는데 볼펜은 있어? 없음 내가 빌려줄게', '이것은 여권번호를 쓰면 되는 거야'….


기분 좋은 오지랖은 이런 건가 싶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건 많지만 막상 필요한 건 다 도와주고,  친절한 느 아니지만(^___^) 세상 프렌들리 하게 대해준다. 덕택에 심심치 않게 1시간을 흘러 보낸 것 같다.


으윽 이 정도 대기줄이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겠는 걸...

바깥 줄이 끝인 줄 알았더니만 매장 안으로 들어오니 똑같은 긴 줄의 연속이었다. 무료한 눈으로 앞에서 일을 보고 있는 직원들과 손님을 바라보다 익숙한 티셔츠 한 장을 보았다. 응..? 저건 너무 대놓고 한국인인데...?


가슴팍에 있는 roka의 글자와 태극기가 떡 박혀있는 것을 보며 이곳에 한국인이 있다는 것에 심히 놀랬다. 아프리카에서의 첫 한국인 여행자라니…! 심지어 내 또래 같아 보이는데…? 너무 반갑잖아?????


쥰나게 반갑습니ㄷ

비주류 국가들에 오면 한국인이 다 반갑다. 사실 일본인, 중국인까지도 그냥 다 반갑다. 반가움 마음 반, 당최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지 궁금한 거 반의 마음에 2명의 남자 여행객이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말을 걸었다.


저희도 유심 사는데 1시간 넘게 걸렸어요ㅜㅠ

이런 제기랄. 앞으로 예상했던 대로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한단다. 처음 보았지만 반가움의 인사와 함께 정보를 받아내고 제 자리에 앉는 순간 재미난 일들이 펼쳐졌다.


너 혹시 저 친구들이랑 친구야?

여자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같은 언어, 비슷한 동양인 생김새에 친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말이 길어질세라 '응 친구야~'라고 말을 둘러대니 대뜸 이리로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웨이팅 프리패스권'을 선사해 주었다.


이게 머선 개이득인각!!!!!!!!!!

친구들이 널 기다릴 수 있으니 미리 해주겠다는 것이다. 아무런 부탁도 요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굴러온 특혜라.. 감사히 받아먹을 수밖에 없찌 호호홓


열댓 명의 사람을 제치고 바로 유심을 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나는 아주 씐나게 직원 앞에 섰다. 직원과 말 몇 마디 나눠 보니 이거 이거... 시간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알 것 같다.

직원: 어떤 게 필요해서 왔어?
필자: 유심 사러 왔어
직원: (유심 가격표를 찾다 갑자기 옆에 직원에게 말을 건다.) 오늘 점심 뭐 먹을 거야?
.....(5분 뒤)....
직원: 너 뭐 사러 왔다고?
필자: (...?...) 유심 사러 왔어 이걸로 줘
직원: 알겠어 (열심히 컴퓨터 업무를 보다 갑자기 노래를 흥얼거리며 또 옆에 직원에게 말을 건다.) 너 오늘 ^#&$^&한 일 있었다며?


진짜 세상팔자 좋게 업무 1분 하다가 직원들과 얘기를 5분 하며 해삐-한 상태로 일하는 거 같아 참 부럽다..^^... 느긋하게 일처리를 하고 계신 직원을 바라보고 유심만을 건네주길 바라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대기를 하고 있던 어떤 아저씨가 앞으로 나오더니 버럭버럭 큰소리로 화를 내는 것이다. 근데 왜인지 귀가 좀 많이 간지럽네...??


당최 무슨 일이신건데욕
저 아시안걸인지 차이나걸인지 왜 나보다 먼저 일을 보는 건덱!!!!!!!!

설마 나...? 여기엔 동양얼굴을 지닌 사람은 당연이지 나밖에 없었다. 특혜를 받은 나를 보며 열불이 나서 난리가 나신 거였다. 매장의 여직원이 아저씨를 말렸음에도 지속 목소리가 커지자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돌돌 말허공에 팍팍 치며 아저씨 목소리보다 더 큰소리로 대기하고 있는 현지인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 저 사람은 여행객이에요!!!
잠깐 오가는 여행객에게 우리가 이 정도 선의도 못해주나요?????
모두들 맘 넓게 이해해 주세요!!!!!!


가만히 있다가 감덩 좌라락

가만히 있다 여행자를 배려해 주는 직원이 나타났고, 이를 감사히 받고 뒤를 따르자 날 비방하고 있는 현지인이 나타났고, 그렇게 또 가만히 있다 나에게 큰소리치는 이와 반대편에 서서 날 대신 감싸주고 화내주었다.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옆에서 도와주던 아주머니들에게도 너무나 미안해서 차마 뒤돌아 볼 수 없었는데, 보호받을 곳이라곤 없는 외딴 땅에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인종과 언어가 전혀 다른 여행자를 환대해 주었다. 예상치 못하게 한국인들을 만났고, 그것이 직원에게 밟혀 관대를 베풀어주었고, 관용이 어려운 현지인을 대신하여 큰소리 쳐주며 포용해 주었다. 엄숙해진 분위기 속 어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감사인사조차 못하고 부리나케 일을 마친 후 일어나려 하였지만, 어제의 택시기사부터 오늘 마주한 양옆의 아주머니들과 직원들까지. 이들의 환대덕택에 내가 여정의 길을 나아갈 수 있음을 다시금 느끼며 눈동자로 나마 감사인사를 진하게 남기고 그 자리를 조심스레 떠났다.



다음 일정 또한,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이곳에서의 시작처럼 예정에도 없었던 일정으로 채워져 나갔다. 아까 매장에서 만난 또래 한국인 친구들을 다시 보기로 한 것이다. 안 그래도 가고 싶었던 식당이 있었는데 여러 개 시켜 먹을 수 있다니 완전 이득 아닌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한국인을 만나게 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마침 점심시간도 되어서 먼저 건넨 제안에 덥석 받아들였다.


작년과 올해 여행 뉴스레터를 운영하며 인터뷰한 여행자님을 통해 추천받은 식당으로 함께 갔다. 오늘 처음 봤지만, 여행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대화의 흐름이 늘 자연스럽다. 공통분모에 들어가면 똑같은 레파토리의 스몰토크가 없어도 대화가 가능하듯 말이다. 이전의 여행과 앞으로 일정에 대해 서로 주고받다 보니 이 친구들은 케냐로 들어와 쭉 육로이동을 해 짐바브웨에서 오늘 이곳으로 넘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짐바브웨에서는 원래 동행 2명 더 있었는데 지금 비자 문제로 못 넘어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얘기를 자꾸 듣는데 어랏..? 왜인지 익숙한 인물이 자꾸 겹쳐 보인다.


아니 잠깐만... 오늘 만나기로 한 동행 언니도 지금 짐바브웨에 있다고 했는데..?
그리고 비자 때문에 못 오고 있다고 했는데...?


마침 방금 전, 한국서부터 함께 여행을 하기로 한 동행 언니로부터 해당 카톡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아프리카가 여행의 비주류 국가인건 알았다만 이렇게 여행판이 좁을 줄 상상치도 못하였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함께한 또 한 명의 동행 이야기를 듣는데 이 분도 왜인지 너무나 귀에 익는다.


혹시 그분 이 오빠야...???

핸드폰 속 비친 인스타그램을 들어올려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화들짝 놀라며 어떻게 아냐고 연신 물었다. 이 오빠는 나와 함께하기로 한 동행은 아니지만, 함께 할 뻔한 여행자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오기 전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게 되었고, 직종은 다르지만 나와 같이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참 신기한 하루이다. 길바닥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함께 밥을 먹다 겹 지인 동행자를 알게 되고, 따로 찾아놓은 숙소가 없다길래 내가 묵는 숙소로 데려오게 되었고, 아직 계획이 없다 하여 이왕 아는 사람도 서로 있으니 우리 일정을 같이 따라오라 하였다. 예정한 날짜에 오지 못하고 있는 나의 원래 동행의 언니는 아직 짐바브웨에서 열심히 달려오고 있고, 나의 원래 동행 중 2명의 오빠들은 저녁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새로 만나게 된 친구들을 소개해 주게 되며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이 지속 펼쳐졌다.


이 하루를, 그리고 이 만남을, 그리고 현지인들의 환대를 과거의 내가 예측할 수 있었겠나. 내가 계획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미비아에서 가장 자유로운 오늘 하루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리에게 잘 짜인 일정이 있고, 그것을 온전히 소화해야 하지만 난 괜찮다. 그 어떠한 뒤틀림과 엉켜짐이 있어도, 오늘과 같이 그리고 지난날의 여정과 같이 무언의 자유함이 있을 줄을 믿는다.


우연의 우연을 더해 4명이 7명이 되어버린 나미비아 여행



#3

결국 모든 것이 엉켜졌음에,

별들이 내게 건네줄 수 있었던 위로


울퉁불퉁한 땅을 지나친지 어느덧 3일째, 머리를 창밖에 기대고 이마에는 손을 갖다 대며 지친 행색으로 돌들의 모양을 느끼고 있다. 이전 뒤틀림으로 시작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지속 벌어졌었 이곳에서의 일들은 앞으로 남은 나미비아의 일정의 또 다름 엉켜짐을 미리 예측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지금 모든 것이 엉켜지고 말았다. 우리의 일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나미비아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흩어져 각자의 여정길로 나아갈 것이기에 하루의 목적지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렸고 무사히 하루하루를 수행해 나갔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문제는 자갈길을 뚫고 지나갈수록 내 안에서 점점 커져 나에게만 짓눌리기 시작하였다.


나미비아로 왔던 육로이동에서도 겪었듯, 워낙 선천적으로 멀미에 매우 취약한 자라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다 하였다. 오지 여행 또한 처음이 아니었기에 이번 여행만큼은 멀미에서 자유롭게 해방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바로 옆에 있는 6명의 동행들도 이렇게 함께 할지 전혀 몰랐는데, 어떻게 완벽한 준비가 가능할 수 있을까. 멀미 이슈의 발단은 이번에도 새롭게 창조되었다. 극악의 멀미몬에게 가장 효과가 좋은 키미테를 비행기 이동에 이어 3일 뒤 육로이동을 하며 연달아 이어 붙이니 부작용이 생겨버린 것이다. 나미비아 땅에 도착하자마자 가까운 시야가 보이지 않자 지레 놀키미테는 잠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워낙 멀미가 심한 사람이라, 복용하는 멀미약은 몽골에서도 이미 무용지물임을 깨달 눈물을 머금으며 맨몸으로 오프로드를 들이박았어야 했었다.


몸이 성치 않은들 동행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 주어진 역할 1인분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였는데, 돌아가며 운전대를 잡는 동행들과 달리 그저 앉아만 있는 신분이었다. 운전면허가 신분증으로 사용되고 있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그저 최선은 운전자가 졸지 않게 말벗이 되어주는 것이기에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참으며 하루를 버티다시피 흘러 보냈다.


그래도 인생을 잘 살아온 것인지 늘 사람 복은 좋아서 동행들은 날 안쓰러워하며 맘 편히 쉬고 자라며 재촉하였지만, 나 또한 이러한 우연이 만들어진 기회의 장을 즐기고 싶었기에 그리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저질 체력의 명칭이 따라가는 이에게 직업 군인 출신의 언니 1명과 체력 좋은 남자 5명의 에너지를 따라가기란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만큼은 같이 따라갈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설렘의 화력도 잠시, 날이 지날수록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시들시들해는 몸둥아리에 결국 지배되고 말았다. 오지 여행으로 인해 [이른 아침 기상 > 아침 식사 > 차 이동 > 장소 도착 > 차 이동 > 캠핑장 도착 > 캠핑 준비 > 저녁 식사 > 정리 >기절]이라는 빡센 일정을 반복하였다. 차를 타면 멀미를 하고, 드디어 캠핑장에 도착해도 쉬는 틈 없이 또다시 텐트를 피고 저녁을 해야 하는 체력한계를 맛보며 이전 여행에서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던 컨디션 저조현상으로 완전히 무너지고만 것이다.


그러함에도 정신력으로 여정을 나아가보자!!!!!

솔직히 이만해도 동행들에게 충분히 피해를 끼친 것 같다. 정말 마음이 편치 않다. 홀로 여행을 했다면 이렇게 마음이 성치 않지도 않을 인데. 지금만도 충분히 여정 길을 향한 발걸음이 멈칫하는데, 이 여정은 완전히 포기하고만 싶었던 결정적인 문제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나미비아 일정은 한국의 연휴인 설날과 맞물렸었다. 이는 여행 이전부터 의도한 일정이기도 하였다. 오지 여행인 것을 감안하여 데이터가 안 터지고 일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일찌감치 알고 왔기에 이곳에서만큼은 일에서 해방되어 드넓은 오지의 땅을 자유로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프리랜서에게 이 생각은 완전한 오만이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 매일 여행과 같은 삶을 살면서 어찌 매일 이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인가.


남아공에서도 이른 아침, 해가 진 저녁에 틈틈이 업무를 하였었지만, 변수의 변수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원만한 나미비아 여정을 위해 오지에 나서기 전날, 여행을 쉬고 일에만 집중해야지 마음먹었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여행자들을 만나 저녁까지 함께 시간을 보며 이 계획 또한 철저히 무너져버렸다. 매일을 예상할 수 없던 하루였다. 이러한 일이 일상에선 일어나지 않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이 흔치 않는 오늘을 그저 흘러 보내고 싶지 않았다. ‘순간’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여행의 자리에서만 주어지는 이 즐거의 선물을 누르고 싶었다. 내 나름대로 순간을 즐긴 값으로 호스텔로 돌아와선 잠대신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일을 이어하며 어느덧 해방과 가까워지는 듯 보였다가도, 업체 측에서 요구사항이 셀 수 없이 추가가 되어 결국 설날까지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말았다. 그 후로 날 설레게 하였던 오지가, 어깨에 진 짐이 많아 발걸음조차 떼기 힘든 광야가 되어버렸다.


틈이 날 때면 캠핑장에서, 차 안에서 일하기를 반복하기...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임에도 차 안에서, 사막을 끼고 밖에서 노트북을 들어야 하는 내가 너무나 싫고 이 상황이 짜증만 다. 나도 하루 끝에 여행자들의 이야기에 함께 하고 싶은데, 초원을 뛰노는 동물을 즐기며 보고 싶은데, 멀미로 인해 속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데이터만 잠깐 터지면 일 메일이 울려댔다. 심지어 믿었던 정신력과 컨디션까지 뒤틀리다니, 정말이지 모든 어려움이 한 번에 날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 스스로 지침도 몰려들어왔다. 그저 걸음을 멈춰 세우고 쉬고만 싶다는 생각에 여행 도나도 모르게 쉬고 싶어라는 말과 함께 새어 나온 탄식에 또 한 번 움치리게 되었다.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만난 사자떼와 코뿔소


비교적 부드러운 포장 도로로 이루어진 에토샤 국립공원을 지나 개인의 고난의 끝을 향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여정에서가장 험난한 오프로드에 올라탔다. 내가 나미브 사막만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인데, 이것이 지금의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고 있구나.


그러함에도 나미브사막... 예쁘긴 드릅게 예쁘다

마지막으로 거하게 멀미를 하며 눈물을 머금고 캠핑장에 도착하였다. 동행들이 모래에 박힌 차와 씨름하는 동안 나는 저녁 준비를 위해 고기를 굽다 속을 울리는 음식 냄새에 화장실로 뛰쳐가 모든 엉켜 붙은 지침과 어리석음을 토하다를 반복하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요리를 안해도 되었는데 동행들의 넓은 이해함과 미안함을 향한 나의 최선의 마음이었다. 그래도 그토록 보고 싶었던 붉은빛 모래알을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데이터가 끊긴 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끼며 쉬어감을 느낀다. 


하루 끝, 설거지를 하기 위해 우거진 나무 밑을 벗어나 밤하늘 아래 섰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누군가가 나의 머리를 강렬하게 비추는 것일까. 나를 환하게 비춰주고 있는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은하수와 함께 쏟아지는 별들이 내 눈에 한가득 비추었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별똥별과 은하수를 타고 이동하는 별들. 거대한 검은 뒷배경에 꽉 채워진 사막에서의 별을 한없이 바라보았을 때 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을 애써 삼켜내었다. 터져나올 눈물만큼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러함에도 오길 정말 잘했구나. 내 욕심인줄만 알았던 이 여정의 끝이 빼곡히 쌓인 별이라니. 지금 밤하늘에 수 놓인 별들을 다 셀 수 없을 테지만, 이 감정 하나하나 모두 별에 기록할 수 있게 잠시 시간이 멈으면 좋겠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밤하늘

긴시간 별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을 하나씩 붙여내며 한참을 바라보다 내 시야를 꽉 채우고 있는 은하수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눈치채었다. 다른 나라의 밤하늘로 가기 위한 은하수와 그의 몸에 붙은 수많은 별들이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

여행 시작 전부터 니 책임을 다하고자 모든 수고를 다 감당하고 이 자리에 힘겹게 왔지만, 그리고 지금도 이곳에서마저도 네가 가장 힘들어하고 있는 멀미와 체력 그리고 업무가 널 괴롭히고 있지만, 그러함에도 이 자리에 나를 보러 결코 왔구나-!


나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것들과 동반하며 이곳에서의 여행 끝자락에 서 있는 지금, 본국에 돌아가서 어떤 것도 감내할 자신이 있을 것만 같다. 이제 어떠한 상황이 나를 또다시 짓누르고, 엉키게 할지어도 이날의 별이 건넨 위로는 잊지 못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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