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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Sep 09. 2024

파도 위에 올라탄 찰흙의 여정

11일간의 인도네시아, 단기선교 그 후


단기선교를 다녀온 지 2달이 흘렀다.

기도의 제목대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풍족한 일거리를 주셨다. 쉴 새 없이 달리다 고이 감싸진 글감을 꺼내드는 지금에는 서늘해진 새벽 공기가 맡아진다. 벌써 한 해가 저물 준비를 하고 있구나.


시간이 많이 흐른 기록에는 쓸모치 없는 기억은 점차 흐려지고, 강렬한 감정은 농도가 짙어진다.

그때 느꼈던 감정과 감각을 고이 담아둔 후, 이것이 잘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보면 시간이 흘러서야만 느껴질 수 있는 본질을 발견하기도 한다.


60일의 지난 지금, 감정에 짙은 색깔이 비치니 이제는 써 내려가도 되겠구나.

하루하루 모든 기억이 어제 일 같이 생생하다. 이곳을 떠오를 때마다 감사와 감동이 밀려오니 결코 단 1분도 헛된 기억은 없었음에 감사함이 한 번 더 밀려온다.


농후해진 마음속 깊은 기억과 고찰을 끄집어낸 단기선교의 단 두 편의 글, 그 마지막을 써 내려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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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

예측할 수 없었기에,

되고자 하였던 것은


Unpredictable
: 예측할 수 없는, 예상이 불가한


[Unpredictable]이란 형용사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참으로 무시무시한 말과 같다.

꿈꿔왔던 목표를 위해 틈 없는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나아가기 위해 활활 타오를 것만 같은 치열함의 장에 우리 몸을 내던진다.


깨지는 것은 무섭다. 계획된 길을, 그리고 상상했던 과정을 깨트리는 것은 재앙과 같다.

견고하던 흙과 유리 뭉치가 깨지면 날카롭고 앙칼진 모습으로 제각각 흩어지는 것처럼 깨지는 것은 생각만으로 아프고도 무섭다.


하지만 우리는 깨지는 것만 생각한다.

어쩌면 바보같이 깨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만 같다.

어차피 앞길을 알 수 없다면, 깨질 수도 있고 안 깨질 수도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달라붙을 수 있는 물질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기에, 흙 도자기와 유리 파편이 되어 깨지길 겁내하기보다는 말랑말랑하여 원하는 목적에 따라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는 찰흙의 상태로 머무르고자 하였다. 그 후에 찰흙인 우리가 구워져 도자기가 될지, 벽돌이 될지, 흙의 상태로 머물지 아무도 모르지만 오로지 천지의 한 분, 그분이 부르신 뜻에 온전히 몸을 내던지는 것이 우리의 목표고 준비가 되고자 한다.




#2

예상이 불가하기에,

그래서 더 큰


단기선교를 떠나기 열흘 채 안 되는 시간, 드디어 최종 일정표를 손에 거머쥐었음에도 우리의 사역 장소가 어떠한 환경인지 몇 명을 대상으로 하는지 한치도 가늠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가능한 준비는 기도뿐이었기에 무슬림 인도네시아의 입국부터 조심의 조심을 더하며 첫 발을 내디뎠다.


모두가 한껏 움켜쥐었던 손에서 흐르는 땀이 무색하게 입국심사도 전혀 없이 공항 끝자락에 도착하였다.


입국 도장도 없이 고작 비자 영수증이 다인 거야?

여권에 찍힌 도장들을 넘겨보며 유일하게 손에 쥐어지고 있던 도착비자 영수증을 여권 사이에 끼어둔 채 입맛만 다시었다. 창문 너머로 무거운 공기가 짓눌르는 것만 같이 보였지만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으로 향해 나아가며 한 달 반동안 고대하였던 인도네시아 땅을 마주하였다.


이곳에 있는 11일 동안 무슬림 동네 속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교회에 지내며 주어진 일정표 속 예측불허의 상황은 한국에서와 크게 달라진 것 없었다. 사역지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상상에만 의지할 뿐이었다. 어떠한 환경에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된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물을 다 챙긴다. 트렁크를 꽉 메울 정도로 한 가득 실며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이 불러주신 아이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2개의 쓰레기 마을과 고아원, 해피센터에서 밥퍼사역과 3개의 학교, 주일에는 인근 현지 8개의 교회 통합 어린이예배 사역, 머물었던 교회 인근 무슬림 대상 어린이 사역, 양로원 사역까지. 매 사역지에서는 우리가 생각한 것의 범위를 넘어서게 하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빈곤한 환경을 만났고, 기대할 수 없었던 아이들의 반김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우리 또한 한국에선 기대할 수 없었던 행동을 취하였다.


쓰레기산으로 뒤덮여 극심한 악취가 나고 신발이 다 더럽혀질 정도로 진득한 땅에서 태권무를 하고 치어리딩을 하는데 우리는 웃고 있었다.

아이들이 있는 학교로 향하기 위해 몸을 90도로 숙여 어두운 지하 속 기다랗게 늘어진 거주공간을 지나쳐야만 하였던 가장 비밀스러운 터널 밑 학교에서도 우리는 웃고 있었다.

아이들만 보다 마지막 사역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았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얼어붙어 있던 우리가 그들의 발을 씻겨주고 그들의 장소를 깨끗이 청소하며 우리는 눈물을 머금다 다시 또 웃고 있었다.


나의 최애 사진 <3

추위보다 더위에 지긋히 힘들어하는 내가 매일같이 땀으로 적셔져 있다못해 온몸에 땀띠가 졌는데 이상하게 힘들지가 않고 행복하였다. 밖에 울어본 기억이 손에 꼽는 내가 하루를 그냥 흘러 보내지 않고 눈물을 훔치었다. 단체 생활을 할 때면 잠시라도 혼자 있어야 충전이 되었던 나인데 24시간 붙어있는 룸메로부터 오히려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잠을 못 자는 것을 힘겨워하는 나인데 사역으로 인해 2-3시간만을 잤을 때마다 교통 체증으로 인해 버스에서 깊은 잠을 자며 또렷한 정신으로 사역을 이어갔었다. 우리에게 잠시 쉬어감이 필요할 때마다 휴식을 주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한 곳에 다다를 때는 이동 내내 내렸던 비를 멈춰주셨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생각을 뛰어넘는 기쁨을 만끽하였다.



기쁨은 우리를 또 다르게 변화시켰다.

11일 간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현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현지 무슬림부터 교인까지. 한국인 선교사님부터 현지 선교사님까지. 그리고 한국에서 온 우리부터 이곳에 머물며 복음 씨앗에 동참하는 집사님들까지. 본국에서 그리고 여행길에서 마주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마주하며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고 싶었다.


함께 사역을 하셨던 집사님과

공항 밖에 나설 때부터 반겨준 선교사님 그리고 교회에 있는 목사님, 매 사역을 함께한 전도사님, 집사님들의 환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또한 환대와 열심이었다. 11일 동안 잠시니까, 잠깐인 만큼 많은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존경을 아낌없이 표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든 최선을 다 해드리고 싶었다. 난 원래부터 모두에게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었다.


내가 단기선교를 지원하였던 이유 중 하나였던 지금까지 받은 환대를 이렇게 줄 수 있음에, 그리고 또다시 더 큰 사랑과 환대를 받으며 환대의 순환을 경험할 수 있었음에 이로 말할 수 없이 감사함이 새어 나왔다. 단 한 순간도 예측할 수 없었던, 오로지 하나님의 인도해 주신 길을 믿고 나아가고자 찰흙이 되기로 결단하고 간 우리 13명 모두에게 최고로 크게 주신 '기쁨'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을 수 있었다.


너무나 이쁜 아이들..



#3

그를 향한 포기함, 
그 끝에는


올 한 해 '첫'경험이 참으로 많다. 여행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밟아본 것도 처음이었으며, 단기선교 또한 처음이었다. 그리고 6년간 영아부 봉사만 하고 예배를 떠나 살며 기도하는 방법마저 까먹었던 내가 교회에서의 직분을 맡기로 하였다. 이또한 처음이었다. 나의 시작은 늘 권유에 의해서든, 스스로 먼저 길을 나아갔든 '자의'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번에도 역시 모든 것이 그러하였다.


뭐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야?

무지하였기 때문에 별생각 없었고,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이 너무나도 분명하고 강렬하기 때문에 권유가 자의로 되게 해 주었다. 그리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적응하기도 전에 그리고 전혀 생각지 못하였던 일들을 감당하게 되면 이것이 마치 타인에 의한 선택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때마다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시간의 포기함'이었다.


같은 공동체가 아니라면 곧 죽어도 이해 못 하는 환경으로 인해 세상 속 관계에 있어 매번 서운함만 갔다 주었다.

일을 하나만도 너무나 바쁜 일정에도 책임감 하나로 시간을 반드시 내었야만 하였다.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고,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없었다.


매번 새로운 문제로 시간의 포기함에 대한 고통을 느끼니 6개월이 지난 지금, 받아들임을 기대하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단기선교를 떠나기 전 똑같은 근본적인 본질이 굳건하였던 나의 마음을 잠시 무너져 내리게 하였다.


나의 불안을 키운 것은 본업의 문제로 시작되었다. 안정과 거리가 먼 그리고 시간이 곧 돈이 되는 프리랜서에게 단기선교 기한동안 완벽한 시간의 비움을 이루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어느덧 프리랜서를 한 지 2년이 되어감에도 휴식을 갖는 시간, 여행을 떠난 순간마저도 깨끗한 빈 그릇과 같은 진공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이 시간 동안 업무 스케줄을 완벽히 비워낼 수 있을는지 그리고 반대로 비워지는 일들을 남은 시간에 잘 채울 수 있을는지 가기 직전까지 나의 큰 이슈 거리가 되어주었다.


11일 동안의 시간을 완전하게 비워내기 위해 내가 해야 했었던 선택은 그토록 고대하였던 프로젝트의 기회를 놓쳐야만 하였고, 가기 직전까지 새롭게 들어오는 일들을 거절하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반복되는 포기함이 쌓이면서 가기 직전, 함께하고 싶었던 기관의 일을 거절해야만 했을 때 지금까지 잘 추슬렀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 이 준비기한 동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채워주신 은혜가 있었기에 이 단선의 자리가 절대 후회의 자리가 아님을 믿고 나가고자 다시금 마음을 먹었다.


인도네시아 땅에 떨어지자마자 날마다 쏟아지는 기쁨과 은혜에 오기 직전 잠깐의 무너짐은 이미 생각에서 떠난 지 오래였다. 이 나라여서 감사하였고, 이 사역을 함께 하여서 감사하였고, 한국에서 미처  수 없었던 선교사님들의 헌신과 이곳의 상황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하였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해 볼 수 있음에, 잠시나마 이들을 위해 땀을 흘리며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였다. 기억 저편으로 넘어가 있었던 무너짐은 일요일 저녁 기도회 자리에서 찾아와 주었다.


감사함과 기쁨에 지원하게 된 계기서부터 읊다가 나에게도 오기 전 분명한 어려움이 있었음을 떠올리게 해 주셨다. 그리고 그 생각의 발현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되어주셨다. 하나님의 일로 향하는 길은 포기함을 필요로 하지만, 포기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지금 이곳에서 느끼는 바와 같이 이로 상상할 수 없는 풍족한 은혜임을 깨닫게 해 주었다.


돌아오고 나니, 하나님께서는 올해 떠난 아프리카 여정 속에서도 지속 똑같은 말씀을 주셨던 것 같다. 그것은 올해 내게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단기선교로 이 메시지를 더 깊이 깨닫게 해 주심에 이 마음을 꼭 붙잡고 갈 것이다. 남은 여정에서는 반복되는 포기함 앞에 서야 할 때보다 더 결단력이 있는 나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버스에 내리자마자 반겨주는 아이들
떠나가야할 때도 마중나와 주는 아이들



#4

여행은,

나에게 어쩌면


현지에 있으면 내뱉었던 감사가 참으로 많지만

그중 하나가 나의 삶의 정체성 중 하나인, '여행자여서 감사합니다.'였다.


단기선교를 향해 나아갈 때 마음속에서 어떠한 환경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다곤 할 수 없지만, 경험 대비 성능 좋게 오지부터 관광 인프라가 좋지 않은 국가를 지나쳐 왔다. 그리고 '어디서든 잘 먹어 잘 자'를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주변에서도 인정할만큼 축복받은 적응력을 가진 몸뚱아리가 있었기에 근심할 것이 하나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향한 마음가짐 또한 마찬가지였다. 배낭여행을 지속 나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계획을 하지 않게 되었다. 계획이 아닌, 현지의 상황이 어떠한지, 치안은 어떠한지 그 나라의 분위기를 탐색해 보며 ‘준비’를 하게 되었다. 20대 초반의 여행에서는 마음의 준비 대신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설렘과 두려움이 낳 꽉 막힌 계획은 나의 두 발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였다. 계획의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몸으로 준비만을 하고 온 여행이 시작됨과 동시에 새롭게 펼쳐질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예측하지 않는 상황이 기대되기 시작하였다. 고생을 할수록 경험할 수 있는 사람과 상황이 많아지니 오히려 흥미롭다 생각하였다. 그럼으로써 나는 여행자로서 거센 파도가 기대되는 서퍼가 되었다.


단기 선교를 통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 또한 이와 마찬가지임을 깨달았다. 삶에서 예정되고 바라는 계획보다, 벌어질 상황을 받아들일 줄 아는 준비가 더 필요함을 느꼈다. 그리고 준비의 과정은 바로 ‘기도’ 임을 현지에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기도하는 자세부터 부족한 내가 한 나라를 위해, 그리고 무언가를 위해 이렇게 집중적으로 기도해 본 경험이 살아생전 처음이었다. 이번 선교여정은 나의 프리랜서 삶과 같은, 내가 밟는 여행의 유랑과 같은 ‘한치도 알 수 없음’의 연속이었지만,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나와 팀원들을 바라보며 기도의 ‘준비’하였던 것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풍족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경험은 어떠한 파도가 다가와도 그 파도 위를 올라타 온전히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서퍼가 되었음을, 그렇기에 쏟아지는 은혜의 파도를 느낄 수 있었던 여정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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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과정 속 다양한 경험의 고찰은 이렇게 매번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해 주었다.

예배 자리에 돌아왔을 때도 그렇고, 단기선교를 다녀오고 나서도 또 그러하였다.


참 신기하다. 설득이 안되면, 내가 경험하지 않았으면, 곧 죽어도 이해하지 못해하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아셔서 다채로운 세계를 갈망하고 그곳에 발이 닿 소원 온전히 이해해주며 그 상황을 열어주매번 동행해 주신 것 같다.


올해 초에 여행을 떠나기 전, 나를 옥죄게 하던 그 생각이 떠오른다. 유난히 내가 손에 쥔 것이 많다고 느껴졌을 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것들 모두 버려야 할 것이 아닌, 내가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근데 여행은 '책임'이 아님을 분명히 아는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여행만큼을 포기 못하겠다고 고백하였다. 이젠 조금 내려놓아야 할까 했던 이번 아프리카 여행 내내 나의 시야를 트여주는 사람들을 지속 붙여주셨고,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 그리고 너무나 바라온 나미브 사막의 세계들어섰을 땐 그를 향한 경이로움을 보다 더 감탄하게 하였다.


단기선교를 다녀온 이후, 기도를 하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새로운 기도제목에 여행의 길은 나에게 취미 그 이상의 것임을 확신을 주었다. 여행을 통해 미리 경험하게 해 주어 그의 진리를 믿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주었음을,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 언제가 될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자유로운 직종을 가진 내가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이와 새롭게 마주할 광야의 부르심을 기대하게 해 주심을.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생각과 그 과정이 절대 단 한 개도 헛된 것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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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6년 간의 멀어짐.

어느덧 그의 존재를 까먹고 있을 때,

그의 존재를 잊지 말게 할 때면 짜증을 내며 그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을 때,

가장 검푸른 심해 가라앉고 있는 나에게 그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해 주셨고 나의 손을 잡아주셨다.


하나님을 잠시 떠난 삶이 불행했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잠시의 어려움에 지쳐할 때도 있었지만 여느때처럼 나의 삶을 만족해 하였고, 행복함을 느끼며 살았다.


규범에 벗어나 20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젊음'을 느낄 수 있었고,

시간에 벗어나 치열하게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며 '열심'을 다할 수 있었고,

제약에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조정해 가며 나의 세상 속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기쁨'을 느끼고 있다.

내가 꿈꿨던 세상과 그 가치가 그의 말씀에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껏 걸어온 모든 여정이 나의 힘이 아니었음, 그리고 이전의 생각이 나의 자만이 이었음을 깨우치고 이 또한 그의 진리를 깨닫게 해 준 과정이었음을 또 다시 깨닫게 한다.


무언의 부족해 보이는 삶은 변함이 없어도,

내 마음에는 이전과 다른 풍요로움이 흘러넘친다.


나도 신기하다.

잠시 길을 잃어버렸던 그때, 부정을 하였던 그때, 잠시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때 존재하였지만, 그렇기에 그의 부르심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내게 더  감사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 말이다.


나의 평생 기도제목은 이 마음과 감동이 변치 않는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파도에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해 보는 것이다.


바로 다음 이어질 여정어디로 향할지,

그리고 밟아온 발자취가 쌓여 그 끝에 다다를 여정은 어디일지

한 치 예측할 수 없기에 그 파도가 더욱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단 한순간도 잊지 못할 인도네시아 단기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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