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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Nov 05. 2024

소리 없는 포효의 공간

기나긴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


#1

새침한 표정을 뽐내며 타자를 치고 있는 아이는 어릴 때부터 꽤나 예민하였다.

타인을 향해 무관심해 보이는 뿌루퉁한 모습 그대로 남이 퍼다 주는 선의를 썩 내켜하지 않은 채 원치 않게 들려오는 상대의 마음 소리와 막혀있는 코를 뚫고 맡아지는 냄새에 눈을 질끈 감았다.


환절기만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콧물과 씨름을 하고 있는 자에게 이게 웬 것이야?

피곤함으로 둘러싸여 있는 성향이란 친구는 예민함과 치열하게 싸웠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성향이란 친구는 아무 곳에서나 퍼질러 자고 싶고, 꼬랑내가 나도 '냄새가 나네'하며 그러려니 한 무던함을 향해 질주하였다. 그의 전력에 예민이는 처절하게 떨어져 나가며 '예민한데 안 예민한, 무던한데 관찰력이 있는' 근사한 팔자로 만들어주었다.


평생을 이 팔자에 감사를 전하였지만, 가끔 숨어있는 예민이가 유독 강하게 본성을 드러내며 뾱- 튀어나올 때가 있다. 이 아이는 단 한 번의 흐트럼이 없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내 앞에 가져다 놓으며 칭찬해 달라 애쓰였다. 그래, 너 참 장하다. (때론 도가 지나질 때가 많아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하였다만.)


쉴 틈 없이 일해주는 예민이는 세상 속의 프레임과 달리, 나에게 가져다준 것이 참으로 많다. 덕분에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다. 유난히 가만히 있지 못하였던 삶의 과정과 함께 곁들여지며 내 안에 있는 무수한 정보와 생각은 책상 위를 헤집어 놓을 만큼 높게 쌓이기 시작하였다. 천장까지 닿을 것만 같은 종이들을 정리하기 위해 단어를 조합하였다. 후하- 한결 깨끗해졌잖아? 그리고 종이를 묶으니 책 한 권이 되었는 걸? 역시 청소는 주기적으로 해주어야 해!



#2

어릴 적부터, '제목. 슬픈 노래가 싫은 이유-' 하며 썰 풀기의 장인으로 훔쳐보기에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했던 일기장을 써 내려갔는데, 십여 년이 지나도 '파도 위에 올라탄 찰흙의 여정-'하며 나의 이야기를 흘러내고 있다.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면, 예민이의 도움으로 그리고 수많은 관찰이 쌓여 내 삶에서 들어온 낮고 높은 감정 모두 그냥 흘러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살피보고 뜯어보는 과정을 통해 시야의 트임 또한 함께 확장되어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나서부터 생기는 공간의 넓이가 생기니 참으로 좋은 것이 많다. 많은 것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니. 많은 것들이 눈 안에 담겨지고 나서부터 참으로 슬픈 것도 함께 하였다. 이만큼을 알아보니 그만큼을 채워주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니.


글은 입으로 내뱉는 말과 다르게 읽는 이의 선택이 들어간다. 상대가 듣지 않아도 말을 지속 읊을 수 있기에 지금 내보내는 모든 소리를 전심을 다해 들었는지 흘리어 들었는지 외적인 행동으로 유추만 할 뿐, 이를 아는 사람은 오로지 듣는 자, 본인뿐이다.


글은 직접 찾아가지 않는다. 이 글을 필요한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 글을 읽는다. 그 글에 관한 정보이든, 필자이든 ‘관심’이 없다면 읽을 선택권조차 없어진다. 나의 글을 읽으러 온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어 찾아와 주는 귀한 손님이구나-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실에서 채워주지 못하였던 백색의 공간들이 꽉 채워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니!




#3

에이~~OO이는 딱 봐도 E 아니야?
OO이는 딱 봐도 애플 감성이지! 그리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할 것 같잖아~
(... 전혀 아닌데...)

나는 MBTI가 싫다. 상황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달라지는 나의 여러 자아들과 공존하며 선을 이루려 하는데 이를 부정하고 하나의 나로 옭아매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의 가벼운 추측이 싫다. 반 평생 넘도록 타인들은 늘 나의 외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며 내적인 자아를 존중받지 못한채 그들만의 나를 만들어 내었다.


외관과 내면의 이질감이 돋보이는 내게 글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공간이며, 가장 진실된 나를 꾸밈없이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무언가에 대한 향한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지,

반대로 내가 그것에 대한 시선을 전혀 두지도 않을 정도로 얼마나 무심한지

글에서 모든 것을 쏟아내며, 드디어 존중을 받는 것만 같은 기분 좋은 만족감에 휩싸인다.


나에게 글은 포효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나는 자유함을 느낀다.


여정 길에서 부딪히는 깊은 감정들과 현실에서 불현듯 겹쳐 보이는 상황 속에 얻는 깨달음. 그렇기에 수많은 단어로 채워진 <브런치>라는 이 공간에서도 유난히 길다고 칭해지는 나의 글들. 부족한 글솜씨에도 꼬리가 기다란 단어들의 나열과 나의 발걸음에 초점 되어있는 글 위주이기에 필자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없다면 읽혀내기 쉽지 않음을 안다. 그래서 나의 포효를,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읽어주는 사람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매번 글을 써내려 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봐주기 원하기보다는 몇 안될지어도 나의 글을 끝까지 감상해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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