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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5 [인도] 인생의 가장 뜨거울 여름을 향해

기다리고 고대했던, 인도에서

by greenee



ep15.

인생의 가장 뜨거울여름을 향해


#1

나와 더위, 그 상관관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유리에 반사된 햇빛이 내리쬔다. 창문에 가려졌던 빛에 급습된 나는 눈을 질끗 가린 채 고개를 돌리며 핸드폰에 비친 시간을 확인한다.


제기랄. 뛰어야 해!!

오랜만에 떠나는 발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듯, 완벽했던 시간 오차 앞에 오늘도 주저함 없이 뛰고야 말았다. 체크인 문이 닫히기 5분 전, 가쁜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낸다.


후... 더운 건 딱 질색이야

누가 마른 체질은 더위를 안 탄다고 한 것인가. 나에게도 중학교 시절까지는 여름이 싱그러운 계절이었다. 푸릇한 초록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과 그 사이로 울리는 매미 소리. 몸을 아무리 열정적으로 움직여도 머리카락 사이로 찔끔 흐르는 땀은 손으로 쓰윽 닦고 나면 여름의 더위는 큰 대수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원체 어릴 때부터 '밥 싫어'를 입에 달고 산 아이가 그간 어찌 튼튼할 수 있었을까. 17년간 시원하게 배출되지 않았던 땀을 내보내기 위해 온몸을 따뜻하게 뎁혀 줄 한약을 몇 번이나 들이마셨고, 그때부터 입도 땀구멍도 다 트여버렸다.


더위를 처음 알게 된 찝찝한 땀과 냄새를 기억한다. 그리고 매 여름 그 기억을 덮을 만큼 새로운 더위와 맞서 싸워 나가고 있다. 한겨울의 찬바람 앞에서도 휘청이지 않는 이가, 지독한 여름의 습기와 더위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어 매번 패배하는 자에게 올 해의 여름은 미친 제안을 해 보기로 한다.


20대의 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맞이할 거야!!!

체크인을 마친 뒤 비행기를 타기 직전 게이트에 있던 TV에는 이번 여름과 관련된 뉴스로 가득 채웠다.


이번 여름 최고 더위가 예상 돼….
한국 불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폭염이 이어질 것….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이번 여름에 대한 더위 예측은 작년보다 나아진다는 일말의 기대조차 접어버리게 하였다. 선선한 여름 바람마저도 발걸음이 끊긴 한국의 6월 초입에 나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인 그곳을 향해 간다. 머리가 베껴질 정도로 뜨거운 서쪽의 더위와 해를 등지고 걷는 것조차 혼을 쏙 빼게 만드는 북쪽의 더위. 그리고 한 달 전, 파키스탄 간의 이슈까지. 이 두 가지의 합심으로 6월의 여정을 예정했던 여행객들의 반절이 사라진 이곳을 새롭게 생긴 동행과 함께 손을 잡고 뚫고 들어왔다.


숨 막힐 정도로 지독한 습기와 더위도,

사람들의 질척한 눈빛과 들끓는 호객행위의 열기도,

이곳의 강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회색빛의 연기로 하늘까지 올려다 주는 뜨거운 불의 온도가 공존하는,

내게는 질문 투성이인 '어메이징, 인도' 바로 그곳으로.



#2

Amazing, This is India


미친 곳이다. 예상과 같이 미친 곳이다. 미친 듯이 덥고, 미친 듯이 새롭고, 그래서 미친 듯이 힘들다. 근데 왜 미친 듯이 재밌는 것일까.


인도의 공항에 닿자마자 울려 퍼진 이곳의 첫인상은, 서양 외국인 입에서 내뱉은 말로 귀결이 되었다.

This is India

이 여행객과 길을 함께 걷던 우리는 헛걸음질 하다 마치 짠 듯 서로를 바라보았는데, 그 순간 체념하듯 어깨를 들썩이며 저 말을 내뱉었다. 그렇지, 인도 현지인들도 못 버텨하는 6월에 이곳을 온 게 정말 미친 짓이긴 하다.


수 없는 땀줄기로 온몸을 적셔버렸다. 그리고 나선 2L 물을 3시간 채도 안돼 비워버린다. 벌컥벌컥벌컥-. 물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핑- 돌아버릴 것만 같다. 해가 가장 높은 꼭대기에 있는 2시에는 숙소에서 발끝도 떼지 않으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델리를 시작으로 바라나시, 조드푸르, 자이살메르, 자이푸르를 배회하는 내내 땀이 마르지 않았던 적이 있었는가. 시원한 에어컨은 수도인 델리에서도 찾기 위한 삼만리는 일수였고, 바라나시로 넘어가는 순간부터 숙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식당과 매장에서마저 찾아보기가 힘든 수순이었다. 너무 더워 머리가 아플 지경에 현지인들도, 소문만 듣던 조드푸르의 미친개들도(특히 조드푸르 개들은 사람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짓어서 다들 미친개라 불린다.) 그늘 밑바닥에 널브러졌다. 더위에 힘이 다 빠진 개들은 골목 위에서 오줌 대신 노랗고 질퍽한 오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세계를 떠도는 각국의 배낭 여행자들도 이를 예견한 듯 현지인 여행자들 빼고 길거리는 물론, 유명하다는 숙소에서 마저 찾아보기 쉽지 않은 비수기 중에 비수기의 인도를 맛보고 있다.


투머치 땀배출로 덕지덕지 소금이 서린 나의 옷
IMG_4064.jpg 땀이 많은 편이긴 하다만요...^^;;;;
아 나도 저 갠지스강에 물에 적셔버려...?

아이들도 성인들도 여자, 남자 할 것이 뭐가 그리들 신나는지 저 멀리엔 소 시체가 둥둥- 어머님들은 빨래를 철석- 아이들은 물놀이를 첨벙- 한 물줄기로 시작부터 죽음까지, 즐거움에서 슬픔까지 선사하는 갠지스강에서 현지인 나름대로 이 무서운 더위를 떨쳐내고 있었다.


그래도 여행자에겐 단 하나의 빛 한줄기가 있었다. 숙소는 에어컨이 존재가 이리 귀할 수가 있는가. 하지만, 유일하게 살 곳인 생명줄마저도 전력 문제로 정전은 하루에 한 번은 꼭 거쳐가는 필수 코스였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인도를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너 대체 이곳을 왜 온 거야????!!!

이쯤 되면 이를 보고 있는 모두가 동일한 생각에 합심하며 소리칠 것이다.


왜 나는 굳이 이곳으로 왔는지에 대답 말이다. 한 달 전, 파키스탄과의 이슈가 있었던 상황에도 (6월에는 다행히 이슈가 완화되어 여행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인도 여행 카페에서 수없이 보았던 '6월의 인도는 현지인들도 힘들 정도로 덥습니다'를 알고 있음에도 온 이유 말이다.


아시아,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의 적지도 많지도 않은 20여 개국을 다니며 만난 배낭여행자들 모두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인도는 진짜 달라.

인도는 대체 뭐가 다른 것이었을까? 5년 전만에도 인도는 내 여행지 후보 안에 존재하지도 않았었다. 숨 막히는 더위, 콘텐츠에 비치는 치안 및 위생 이슈, 끈질긴 사기와 호객행위의 연속. 가지 않고 싶은 이유로 가득 차있는데 여행이 웬 말인가.


홀로 멕시코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여행지에서가 아니라면 만나 뵈었지 못할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며 이전과 다른 여행의 경험이 쌓이면서 인도는 생각의 불모지가 아닌 가보고 싶은 이유밖에 없는 꿈의 여행지로 변화하였다.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만은 전혀 아니었다. 인도를 바라보면 때면 나는 늘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인도와 관련된 여행 콘텐츠와 다큐와 같이 미디어를 볼 때마다 '대체 왜?' 그리고 '왜 아직도?'라는 물음과 14억의 인구 속 현시대의 이해가 안 가는 카스트제도부터 세계를 바꾸는 혁신적인 인재 배출 그리고 이곳의 날씨와 삶까지. 궁금증의 연속이었다.


수 없이 많이 들은 '직접' 인도를 경험해 본 여행자들의 이야기.

다큐서부터 여행 콘텐츠까지 쉴 새 없이 새롭게 쏟아지는 영상 속 이야기.


내게 인도는 물음표로 가득 채워진 미지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나의 추론적인 질문이든, 사람들의 경험적인 마침표든. 머릿속에 온통 '가야 알 수 있다'라는 공통적인 결론이 맺어졌다.


인도인들은 왜 이렇게 세계적인 기업에 CEO로 가장 많이 영입이 되는 것일까?

인도인들은 왜 아직도 현대 문명 속 카스트 제도를 버리지 못하고 살게 된 것일까? 인도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인도인들의 소문난 인디안 타임 왜 있는 것일까? 더위 때문인 것일까? 아님 이들의 문화적 성격일까?

인도인들은 왜 영상, 뉴스 무언의 이슈가 왜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인도는 일종의 스타성이 있다 생각한다. 악개와 빠가 너무 강렬하게 존재하는 나라이다. 물론 팬도 애증이지, 사랑만은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이 땀방울의 원함이 되었고, 그 땀방울을 온몸으로 느끼며 궁금증이라는 노폐물을 시원하게 다 내뱉어지고 싶었다. 이에 대한 모든 답변이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을 다 뺏겨봐야 알 수 있는 대답을 말이다.


내게로 오거라 인도야~~!!!



#3

결단의 땀방울


결단, 그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결단'은 나의 세계를 뒤바꿔줄 큰 비전의 결심에서 쓰이는 거대한 단어로 쓰이지만, 이렇게 3주밖에 안 되는 작은 여정을 떠나는 것마저도 결단을 필요로 한다.


1년에 한 번, 3주~4주간의 여정을 떠날 때마다 근본적인 여정의 시작은 항상 단순하였다. '재밌어 보이니까-' 혹은 '가고 싶으니까-'. 우리는 경험과 감정을 통해 내재되어 있는 수많은 이유를 생각하기에 머리가 아프니 재미라는 한 단어로 퉁치는 것이라는 걸 안다.


어려운 여정일수록 높은 위험(high risk)을 감수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에 동기는 더욱 견고할 수밖에 없다. 인도에서 흘리고자 했던 땀방울은 하룻날에 흘린 땀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 매해 여름만 되면 뜨겁게 차 오르는 햇빛 아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흘러내린 짠 물줄기가 모여진, 내겐 결단이었다.


위험요소에 대한 두려움과 반대로 리스크가 높은 결단은 단단해질수록 우리의 초점은 명확해진다. 이러한 상황 속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은 단 두 가지다. 리스크라는 존재를 느끼고 있지만 그에 지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 대담한 용기, 어떠한 형태든 그 경험이 값질 것이라는 강력한 믿음.


모두가 이에 따른 명확한 결과를 원하지만, 깊은 땀방울을 수천번도 넘게 흘러내며 때론 이 걸음이 나의 원함과 다를 수 있겠다는 여지까지 머금을 수밖에 없음 또한 발견하기에 결심은 벽에 박힌 못처럼 절대 흔들리지 않듯 더욱 굳건해진다. 이전의 여행의 동기 모두가 그러하였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인도는 두려움보단 확신이 더 크게 압도되었다.


인도의 글을 써내려 가고 있는 한국에서의 나도 삶의 여정 속 긴 발걸음의 결단을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함께 여정을 떠나는 동행자와 함께 온몸의 땀을 배출해 가며 흔들리지 않을 결심을 위한 기도를 지속하고 있다.


나도 사실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길 앞에선 매번 두렵다. 때론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확실하게 안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떠난 멕시코의 여정에서는 짠맛에 대한 깊은 갈증에 기나긴 고민을 끝맺으며 시원한 결단을 했음에도 두려움이 덮쳐왔지만, 그다음 해의 아프리카. 그다음의 해 인도.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확고한 비전에 두려움 대신 용기와 믿음의 경험의 돌탑이 세워졌음을 안다. '나'라는 인물이 매번 의도하지 않음에도 평상적인 편한 길을 한 번도 택하지 않고 새롭게 벗어나는 나의 주관에 스스로 혀를 내두를 때도 있지만, 이것이 나의 삶에서 만큼은 나에게 최고의 길이고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너무나 확신하기에 그 어떤 상황도, 상대의 말도 나의 결단에 일말의 영향을 내어줄 수 없다.


나의 인도 여행기의 끝이 예측이 가는 인도의 첫 시작에서 지금도 흘려지고 있는 땀방울이 내가 늘 걸어왔던 여행의 끝과 같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비칠 땀방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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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속의 뿜어져 나오는 인도 태양의 붉은 빛



epilogue.


무려 6개월 만에 여행기로 찾아왔다. 기다려 주신 분들이 있다면 대단히 감사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이번 여행기부터는 방향성을 다르게 가보려고 한다. 이전부터 나의 여행 시리즈인 <또다시 시작된 여정>를 지속해서 본 독자라면, 나의 여행기의 포인트는 <에필로그>에 있었음을 아실 것이다. 글을 써 내려가며 키포인트를 마지막에 두는 게 과연 좋은 선택일지 매번 고민을 하다, 아프리카 여행기로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보면서 인도 여행기서부터 글 구성을 새롭게 변형해 나아가고자 한다. 그간 비슷한 글 전개에 어쩌면 나도 여정기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 일 수도 있겠다.


인도는 단순 '여행기'에만 표하기에는 에피소드가 너무나 방대한 곳이었고, 이곳의 매력을 뽐내는 콘텐츠는 유튜브로 충분하다 느꼈다. 왜 이렇게 배낭여행자들이 인도를 싫어하면서도 사랑하는지, 여행을 하는 내내 이곳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넘어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발견'을 하였다. 이 발견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다. #인도의 이유 #오만과 편견 #동행 #사랑 이 네 가지의 키워드로 드디어 깊은 고찰 속 깨달음을 꺼내고자 한다.


뜨거운 더위 속 땀방울, 자처한 고생길, 비수기 속 현지인들과의 수많은 맞닿음을 통해 얻음 깨달음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나 또한 이 순간을 6개월 동안 기대하였다. 장대한 여행 에피소드가 빠진 발견의 여정을 기록하는, 새로운 도전에 기대해 주고 감상해 주면 감사하겠다.


p.s. 너무나 소중한 나의 브런치 공간! 인도 여행기에 에필로그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습니다. 저의 글을 기다려주고 깊게 감상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 담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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