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3
#1
그대에게 동행이란
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 같은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
나에게 동행(同行)의 의미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동일한 시선의 초점을 맞춰가는 과정인, 여행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점의 산물이라 생각하였다.
겉적인 친절함을 깨고 여정자 모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날 것의 향연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본인을 잃지 않도록 자유의지를 누리되, 나의 것을 양보하고 상대와 호흡을 맞추어 갈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의 시선이 이어져 같은 곳을 항해하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스스로 정의하는 여행에서 경험하는 수많은 단어들 중 가장 고결한 가치로 두었던 '동행'.
고고하였던 만큼, 단 하루만을 때론 모든 여정을 함께 한 이들 모두가 '나의 동행자'이었음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여정의 발걸음이 자국과 먼 타국으로 향할수록 친한 친구들이 툭 내뱉은 '같이 여행 가자'라는 말에도 쉽게 응하지 못했던 이유 또한 이러하였다.
여행의 본질이 달라지는 순간 동행은 짐이 된다. 이 짐은 각자의 두 발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나는 여행의 목적을 위해 홀로 걷는 자유를 택하며 긴 여행 중 만나는, 잠시 함께 움직이다가 방향이 달라지면 헤어지는 존재로 서로의 자유함과 다름을 인정해 주는 인연(因緣)으로 동행의 의미를 작게나마 채웠었다.
홀로 여행을 하며 외로움이 느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속세에 치여 탈출구와 같았던 세상과 견고하게 다쳐진 여행의 목적은 푸른 초원을 원 없이 뛰노는 양과 같이 만들었다. 내가 뛰놀던 들판과 전혀 다른 모양새에 흠뻑 빠져 달콤한 향기를 따라다니기도 하고, 나와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진 양들이 건네는 말에 반가움을 담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그렇게 뛰놀다 보니 아프리카 땅까지 밟게 되었다. 모두가 그랬듯, '재밌으니까'로 내뱉지만 그 속에 함축된 이유가 이곳으로 보내왔는데 와 보니 여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꽤나 특이성이 있는 존재가 되었다. 미국과 캐나다를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한 대륙에서 한 다리만 건너면 현존하는 한국 양들을 읊을 수 있을 정도라니 내가 특이성이 있는 곳에 오긴 하였구나.
나라가 바뀔 때마다 만나는 각각의 여행유튜버와 이미 여행경력이 50개국이 넘는 여행자들, 한국 초원에서는 볼 수 없는 삶의 형태를 낱낱이 보며 여정 속 사람으로부터 오는 배움은 이만하면 재미의 끝은 느낀 것만 같다.
그들을 향한 동경 속 재미의 불길이 거세 갈 때쯤, 마음에 거스리는 작은 환영을 보았다.
이들은 참 자유로웠다. 자신의 삶에 자유함의 자유함을 더해 굳은 심지로 길을 나아갔다. 길을 나아가기 위해 때론 포기하였다. 그리고 때론 나만의 여정을 위해 피해를 볼 것 같은 양보는 일말의 틈도 없이 잘라내었다. 참으로 멋있었다. 뿜어내지는 아우라에서 홀로 다른 색의 뿜어짐이 이어나왔다.
무언가 잘못 본 것 같은데 저게 대체 뭘까?
눈을 비비고 고개를 저으며 다시 큰 눈으로 뜨니 내가 본 것은 헛것이 아닌 바로 '동행 대신 자유를 택하는' 연기였다. 이들의 동행은 지금 이 아프리카 땅에서 동일하게 경험하고 있는 '인연적 동행'을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인연적 동행이 자신과 가는 길이 다르다면 단 하루의 기다림과 망설임 없이 바로 등지고 헤어졌다. 나에게도 분명 이전 여행들에서 당연한 여행 속 패턴이었었는데, 이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이질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느껴졌다. 이를 깨달았을 때 머리를 띵- 하고 세게 맞은 것만 같았다.
대자연, 다채로운 여행자들과 현지인의 삶, 각기다른 새로운 모형의 초원의 형태. 아직 완벽하다 할 수 없지만, 이만하면 부족함 없이 경험하였다는 내 마음의 풍요로움이 드디어 들어섰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드디어 제대로 된 마음이 생겨버린 여행에서의 가장 고점을 향해 항해하고 싶어진다.
#2
같은 길을 향해
저는 신혼여행으로 인도를 가고 싶은 걸요?
배낭 여행자들과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늘 하던 말이 있다. 신혼여행만큼은 어디로 가고 싶어?라고 물으면 나는 공백의 일말 없이 인도를 외쳤다.
꼭 인도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근데 대답은 꼭 인도여야 했다.
나에게 '인도'란, 동행과 함께할 수 있는 끝판왕의 여정이라 생각하였다. 상상만 해도 끈적거리는 땀이 흐를 것 같고, 생각만 해도 귀가 따갑다 못해 어지러울 것 같은, 짜증이 폭주할 것 같은 곳에서 동행자와 함께 한다면 상황을 넘어선 동행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을 통로라고 생각하였다. 반드시 인도가 아닐지라도, 나도 동행자도 주어진 환경을 통해 자연스레 본연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곳을 희망한 것이다.
더불어 인도는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23-24년 경 여행 뉴스레터를 운영하였을 때, 각각의 인터뷰이로부터 인도 여행기를 들을 때마다 인도를 혼자 간 사람은 있어도, 인도 여행을 '혼자 한' 사람은 없었다. 분명 혼자 시작한 여행이었음에도, 과정에서 늘 사람들과 함께 하였다. 함께하면 안 그래도 저렴한 것이 더 저렴해지니까. 함께하면 위험해 보일 수 있는 거리가 안전해지니까. 함께하면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변수의 연속을 웃으며 이겨낼 수 있으니까. 혼자 있기를 내버려 두지 않는 곳이기에 모든 의미를 포괄하여 단 한 단어, '인도'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농담과 진담을 섞으며 툭툭 내뱉은 인도를 예상한 신혼여행도 가기 전 훨씬 앞서 가게 되었다.
아프리카 여정을 마치며 온 신경이 인도로 쏠려있었고, 인도를 지금 당장 가야만이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이러한 배낭여행을 경험하지 않았던 애인에게 다짜고짜 '같이 인도 가자'는 참으로 당황스럽다 못해 치를 떨까 봐 그간의 습성처럼 혼자 떠나 인연적 동행들과 함께 하는 여정을 보내다 오면 되지 않을까 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너의 여정에 함께 하고 싶은걸.
'인도'에 대한 목적을 가진 자와
'동행함'에 목적을 가진 자.
인도에 대한 목적이 전혀 없음에도 '동행함' 단 하나를 원하여 이 어려운 길에 함께 올라타고 싶은 마음을 전하했을 때, 작년 아프리카 여정에서 본 연기의 그을림을 바로 다음 여행에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번 여정은 새로운 여행의 막이 되어줄 것이겠구나 확신하였다. 같은 길을 향해, 함께하는 항해의 길을 기쁘게 올라섰다.
나는 그 이보다 여행을 조금 더 많이 그리고 먼 곳을 다녔다. 조금 더 어려운 초원들을 거쳐웠다. 조금 더 다양한 여정자들을 마주하고 떠나보냈었다.
하지만, 그 이는 나에게 부족한 원함의 목적인 함께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맞추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것. 같은 목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
바로 이곳, 원하던 인도에서 스스로 정의한 동행(同行)의 의미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간의 여정 속 경험으로 함께 길을 잃었을 때 내가 그 이를 손잡아 이끌어주고, 그의 동행의 원함으로 내가 뒤쳐졌을 때 나의 등을 밀어주었다.
여행을 마치고 주변 이들의 세간의 이슈는 남자친구와 인도 여행을 가서 손잡고 입국했는지 외면하며 다른 출구로 찢어 들어왔는지였다. 이야기만 들어도 뒤집어져 버릴 듯, 놀라다 못해 새까만 검은 배경 속 붉은 목젖이 선명히 보이는 그곳에서 우리는 때론 기차를 놓친 후 말이 없어지며 다른 창문을 바라보기도 하고, 작은 행동으로 서운함을 지게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동행함'의 목적을 가진 자와 '동행'을 고점의 산물로 여기는 자는 본국에서의 터울을 벗고 땀에 적신 꼬질꼬질한 본연의 모습으로 손을 잡고 한 걸음씩 함께 호흡하기를 원해하였다. 그 발자국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였기에 모두가 원해하였던 큰 소리를 내며 싸우기를 져버리고, 귀여운 삐짐은 서로의 관대한 품음으로 안아 되려 한국의 초원에서 같이 뛰어놀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하는 동행의 여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3
함께하는 항해
나의 목적에 함께 하길 원하여 거친 파도에 스스로 올라 탄 그 이를 경험하며,
나 또한 그가 지나쳐야만 하는 거친 파도에 스스로 올라타기를 결심하였다.
처음에는 당돌하였다. 남들이 걷지 않는 탐험은 위협적이지만 매력적이다. 내가 남극을 향해 나아간다면,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결과가 어떻든 성공적인 도전이 될지도 모른다.
기나긴 거친 파도 속을 함께 항해하게 되며, 철저한 무장을 하고 나아갔음에도 잠깐이었던 인도 때의 경험과 비할 수 없는 파도의 세기와 끝나지 않는 폭풍우에 이 배가 뒤집어질까, 검푸른 심해로 잠식되는 것은 아닐까 겁이 나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반복되는 과정이 이어지자 결국 탈진이 나버리기까지 하였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돛을 펼치는 밧줄을 끌어당기다 그대로 지쳐 쓰러져 배 한가운데에 들어 누워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물과 양옆으로 튀기는 바닷물을 사정없이 들이먹었다.
어쩌면 지독한 이 항해의 길은 우리가 원하였던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이 과정에서 거대한 파도가 덮쳐 배가 쪼개질 수도 있다. 그리고 물결을 따라 서로 찢어져 각기 어느 이름 모를 섬에 다다를 수도 있다. 끊이지 않는 씨름 속에서 목적을 내가 원하는 단 하나의 섬에 다다르는 것으로만 두니 나아가는 길 내내 불안과 불만만 쌓여만 갔다. '이대론 그 섬엔 결국 도착하지 못할 거야', '지금 방해하고 있는 바다 태풍이 너무나 미워.', '이 항해를 위해 돛을 풀고 땡겨봤자 힘만 쏫고 결국 배는 제자리인 걸.'
여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행지를 위한 계획이 아닌 준비를 하는 것. 그리고 준비로 나아갈 때, 온 몸을 우연한 흐름에 맡기며 그곳이 가진 색채를 발견하고 느끼는 것이다. 그 길에서 전진하는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아니면 돌고 돌아 결국 꿈꾸는 곳의 귀착을 이뤘을 때 감격을 맞이할 수도 있다. 맞아, 항상 그래왔지. 내가 경험한 여행과 그리고 동행은 역시 이것이었구나. 내가 그렇기에 여행을 사랑하였지. 이젠 항해의 목적이 최초의 남극 탐험가 아문센과 같이 악착같이 남극 땅을 밟는 일이 아니다. 그곳을 목적으로 두되, 파도의 물결과 바람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배를 타고 방랑할 것이다. 떨어지는 지점이 어디든 좋다. 바람에 우리의 배를 맡겼을 때 그 인도함이 우리에게 그리고 각자에게 가장 적합한 도착지인 줄 믿는다.
쏟아지는 거센 물살에 벅이 차고 너무나 거칠어 아프기도 하지만 그 길이 힘듦에도 용기 있게 길을 그저 나아가는 것. 최선을 다해 밧줄을 당겨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때론 너무 아프면 배 한가운데 누워 숨을 들이마시며 나몰라라 쉬어도 보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넘어서 마지막 끝마저도 열어두는 것.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바람과 물결만을 바라보는 그것이 내 정체성이자 자부심임을.
애써 돌려 말하는 현재 나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신경 세포가 춤을 추며 스파크가 팡팡 터질 것이다. 입을 틀어막고 눈이 커지는 사람들이 수두룩일 테지만 지금은 세세한 이야기는 접어 두려고 한다. 그리고 유별난 선택을 매번 행하고만 한 내가 드디어 육지에 발을 디딛었을 때, 이 모든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세상에 즐겁게 전하고 다닐 것이다.
함께하는 항해를 위해 우리는 언제 올진 전혀 알 수 없지만 늦어도 반드시 오는 인도의 기차를 기다리듯,
파도가 잠잠해지고, 육지에서의 항해가 시작될 때 그 설레임을 기다리며,
나의 여행의 세 번째 장막을 펼쳐준 동행자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그 끝을 모르기에 앞으로의 여정이 어떻게 될까라는 기대감을 가지며,
오늘도 거친 파도 속을 향해 함께 항해하러 간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