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살이 1주년을 맞아 쓰는 글
차갑고 외로운 바람이었다. 어떤 살아있는 것도 스치지 않은 듯 결코 흔적 없는 그런 바람이었다. 한겨울에는 바람도 멈추고 모든 것이 얼어버리는 마을이지만, 겨울을 앞둔 지금은 온 마을을 돌며 한바퀴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오늘 아침 나의 두 볼을 때리는 것이었다.
한국의 바람은 이곳 바람과는 달랐다. 옆집의 된장찌개 냄새가 실려왔고, 쾨쾨한 오토바이 매연이 환기를 위해 열어 둔 창문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바람 속에는 누군가의 눈물이, 웃음이 실려 있었다. 그 공기를 또 내가 다시 들이 마시고 내쉬며 ‘따로, 또 같이’ 살아가는것이었다.
만일 내가 있는 이 공간에 어린 생명마저 없었다면 이곳은 누군가의 숨통을 관통한 적 없는 메마르고 차가운 공기만 가득 찼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할당된 운동에너지를 모조리 소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숨통 붙은 어린 생명이 이 조용한 공간에서 나를매일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게 만들었다.
어쩌다 아이와 아빠가 단둘이 산책을나가고 오롯이 나만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그 적막은 현실이 된다. 얇은 매트리스 위에 두 팔, 두 다리를 쭉 뻗고 두 눈을 감으면 어쩌면 30여년간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진공을 경험한다. 영화 인터스텔라 주인공이 우주선과의 연결이 끊어진 채로 광활한 우주속에서 몸이 붕붕 뜬 채 지구를 바라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어떤 소리도, 어떤 자극도 없는 곳. 그녀의 두 눈 앞에 찬란하게 아름다운 지구가보인다. 그 안에는 책가방을 매고 학교를 가는 어린아이도 있고, 기록경신을 위해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는 경주 선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구 반대편의 전화를 받기위해 새벽부터 집에서 뛰어 나와 회의실 컨퍼런스콜 앞에 앉아 오늘 준비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뒤적거릴지도 모른다.
신은 우리에게 시간을 선물했고, 인간은 시계를 만들었다. 그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시간을 시분초로 나눠 자신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 안 박물관에 갔을 때, 인간이 만든 시계 앞에서 끝없이 좌우로 운동하는 시계추의 소리를 가만히 눈을 감고 들어본 적이 있다. 똑딱똑딱 똑딱똑딱…. 영원이라는 시간을 가르는 금속의 날카로운 소리.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금속의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원 앞에 느끼는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잠시 잊고 살게 만드는 것이 어쩌면 시계가 아닌가.
그렇게 신의 선물과 인간의 계산법으로 증명된 일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내 옆에는 헐떡거리며 열심히 장난감 기차를 들고 달려오는 어린생명이 있다. 아이의 몸무게와 키가 늘어난 것 밖엔 어떤 것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나의 숨을 들이고 내쉬는 일을 이 시간 안에 어떻게 가치 있게 넣을 것인가 고민은 끊임없이 발전되고 있었다.
깊어진다. 누군가의 숨이 빈번하게 섞이지 않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깊어진다. 오늘도그렇게 어린 생명과 공기를 나눠 먹고, 마시고, 배출한다. 그것이 오늘 나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