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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발버터 May 15. 2023

충분히 의미 있겠죠.

(1) 긴 터널의 시작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번엔 포기하지 말자.

그렇게 마지막이라 다짐하며 세 번째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공부 기간은 벌써 이년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재작년에 퇴사할 때만 해도 이런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대표님. 저 다음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겠습니다.”

“왜? 일이 너무 많아?

아니면 월급이 부족해서 그래?”

“아뇨. 딱히 보람을 못 느끼겠어요.

다른 일 좀 해보려고요.”


물론 일하면서 보람을 아예 못 느낀 건 아니다. 나름대로 일을 하면서 결과물이 나올 땐 뿌듯하기도 했고, 사회적 기업인 만큼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러나 불규칙한 업무 시간과 체계적이지 않은 사내 시스템은 의문이었다. 몇십 년 뒤 미래를 생각할 때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퇴사하겠단 표현을 너무 모질게 말한 것 같아 대표님께 미안함마저 느꼈지만, 그래야만 붙잡히지 않을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포상으로 받은 거라곤 식도염이 유일한 이곳에서 한시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일 년간의 노력 끝에 들어간 첫 직장을 허무하게도 노력한 만큼의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나왔다.

일 년간 무엇을 위해 그토록 많은 돈과 시간을 바쳐가며 준비한 걸까.

끈질기게 일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MZ세대의 뉴스를 보며 요즘 애들은 간절함이 없다며 혀를 끌끌 찬 게 며칠 전 같은데 그 주인공이 바로 여기 있었다.


‘끼-룩 끼-룩’

퇴직 후 머리도 식힐 겸 바다를 보러 갔다.

배를 타고 갑판 위에서 노을이 지는 바다를 본다. 갈매기들은 새우깡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을까 눈을 부라리며 날아온다. 탐욕스러운 눈초리 사이로 강렬한 빛을 내뿜는 석양을 보니 거창한 시작을 앞둔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원래 퇴사할 때는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센티하게 의지를 다지는 게 국룰이다.


“좋아. 새롭게 시작해 보자.”

그런데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회사를 나올 땐 다음 플랜을 생각하고 나와야 한다던데 그냥 충동적으로 질렀다. 하고 싶은 일이라서 들어간 직장도 금방 나와버린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직업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적당히 일이나 하면서 돈을 벌다가, 적당한 사람과 결혼해 애는 둘을 낳고, 은퇴 전까지 집 한 채만 마련해서 손주나 보고 살고 싶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힘든 노력의 결과물인지 새삼 느낀 시기였다.

퇴직을 결심한 그 해에 동생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안정적인 시스템 안에서 정시에 출근과 퇴근을 하는 동생이 부러웠다. 나도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원이란 명함을 달면, 남은 인생 풍족하게는 아니더라도 정말 평범한 인생은 무난히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생의 목표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니. 한번 사는 인생치곤 정말 소박한 꿈이다.

그렇게 한창 코로나로 일자리가 불안정해진 시기에 누구나 취업하면서 한 번쯤은 도전한다는 공시생의 길로 뛰어들었다.


‘인서울 나왔는데 금방 붙겠지.’

‘군 생활도 했고 사기업도 경험했으니까 공무원 하면 잘하겠지.’

약간의 오만함과 기대감으로 공시생이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그 터널이 얼마나 긴 터널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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