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로 지낸 시간들
언젠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글을 읽고 크게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영어로 말할 때 더 자유롭다고 느낀다. 한국어로 말하는 나보다 영어로 말하는 '마리'로서의 내가 더 마음에 든다. 영어를 사용할 때는 왠지 모를 용기가 생기고, 감정도 더 생생하게 표현하게 된다. 낯선 사람과 스몰톡을 나누는 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영어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언어보다는 환경과 문화의 영향이 더 크다고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 언어가 품고 있는 문화, 그 언어가 가진 스테레오 타입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 하면 자연스레 글로벌과 자유가 떠오르는 것처럼.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는 걸 좋아한다. (물론 수습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서툰 영어로 손짓발짓을 더해가며 하나하나 직접 부딪히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재미를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엔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돌아보면, 여행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였다. 짧게 스쳐 지나간 인연도 있고, 오래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의 길이에 상관없이 언제나 느꼈던 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즐겁다.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이 현재의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다.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시야와 감정의 폭을 넓히는 것.
나는 정형화된 틀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 마땅한 진로를 찾지 못해 공무원이 되었다. 자연스레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과만 교류하게 되었고 내 세상이 점점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상상했던 내 모습이 이랬을까? 전혀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을 돌아봤을 때, 즐기지 못한 청춘과 통장 속 돈 중 무엇이 더 아쉬울지 자문해 봤다. 답은 명확했다. 돈은 언제든 벌 수 있었지만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당찼던 포부에 비해 많은 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꽤 다양한 국적과 분야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만큼 시야가 넓어졌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명확해졌다. 삶은 정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니 시간에 쫓겨 조급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머리에서 나온 말과 마음에서 나온 말의 농도는 무척 달랐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특별히 대단한 인물을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기록해보고 싶다. 여행하며 생겼던 에피소드들도 함께. 영상이 아닌 글로 전달하는 이야기라 생생함은 덜할 수 있겠지만 대신 상상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