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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o Apr 10. 2022

디지털 도플갱어 하나쯤 거느리는 시대

내가 보는 메모

좀 과장하자면, 메타버스(metaverse)가 난리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감각 체계 안으로 깊이 파고들어 오지 못하는 한, 다시 말해 현실과 보다 끈적하게 밀착하지 않는 한 '혁신적인 메타버스'는 아직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일반적인 메타버스는 아직 단순한 가상현실에 가까운 것이라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분명 변화는 싹트고 있다고 본다. 그중 하나가 아바타(avatar)이다. 메타버스가 아바타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그 활동을 현실의 선택에 반영하게끔 유도함으로써, 인간이 메타버스에서 하는 활동이 늘어날수록 아바타는 점점 더 내 정보를 흡수해 나를 닮아갈 것이다.


디지털 도플갱어 시대가 열릴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디지털 트윈이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인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디지털 트윈보다는 디지털 도플갱어라는 표현에 더 끌린다. 후자가 전자보다 덜 착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지털 트윈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디지털 도플갱어는 내 뇌와는 다른 별개의 정보처리체계에 따라 나 같으면서도 따로 움직이는, 좀 무서운 무언가처럼 느껴진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신상은 물론 일상적인 활동 기록이 상당한 정도로 디지털화될 때 디지털 도플갱어는 자신의 보조 인격으로 인정받게 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


디지털 도플갱어가 일반화된다면 '내'가 부재중인 상황에서 그는/그것은 나를 대리해 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듯이다. 디지털 도플갱어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즉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 가장 평균적인 값을 도출해 내는 일이 디지털 도플갱어의 활동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내가 내릴 법한 선택이 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이것이 현실성이 있는지 없는지와 무관하게, 그저 '디지털 도플갱어'라는 개념을 통해 몇 가지 의문점이 투과되고 있다.


<의문1. 디지털 도플갱어가 내리는 결정은 나의 미래에 대한 선택으로서 유효한가>

이론적으로 디지털 도플갱어는 (비교적) 일관적인 나의 선택을 대리할 수 있다면 '지금' 미래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 일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미리 작성하지 않아도 그와 같은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디지털 도플갱어의 선택을 우선시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당시의 디지털 도플갱어가 내리는 즉각적인 선택이 미래에 대한 '내' 소망을 충실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문2. 디지털 도플갱어는 사회 통념 및 도덕에 순응적이어야 하는가>

디지털 도플갱어는 일종의 소유물이라고 봐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의 일탈은 소유자인 현실 속 인간이 책임질 일이다. 그런데 디지털 도플갱어는 통제가 가능하다. 디지털 도플갱어는 하나의 애초에 그/그것의 반응이 절대로 할 수 없는 방식을 탄생 이전에 설정해 둘 수 있다. 그렇다면, 내재적으로 선택의 한계를 가진 디지털 도플갱어는 '자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그것의 선택이 현실 속의 인간이 내리는 결정보다 일관되게 올바를 때, 그 선택은 살아있는 인간의 결정보다 우선시 될 수 있는가.


<의문3. 디지털 도플갱어는 디지털 영생의 자격을 갖는가>

디지털 도플갱어는 일종의 데이터 복합체(데이터 다발)이다. 이런 개념 위에서 그것은 데이터가 유지되는  영생할  있다고 해야  것이다. 그렇지만 소유자의 유기체가 소멸할 경우, 디지털 도플갱어가 존속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별개이다. 만일 그것의 소유  활용에 대한 권한이 소유자 개인에게만 속한 것이라면 소유자의 사망 이후 디지털 도플갱어는 가치 생산에 기여하는 정도가 상당히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할  있다. 이때 그것은 정보를 유지하기 위한 전력을 사용하는  자원을 소비하기만 하는  그칠  있다. 디지털 도플갱어가 소유자의 소멸로 인해  구속력이 사라졌을 (해방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메타버스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그것은 메타버스의 배경 자원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소유자의 소멸과 동시에 디지털 도플갱어는 그것의 생성과 구성  유지 시스템을 제공한 회사의 지적 소유물로 자격이 변경된다고 해야  듯하다. 하지만 그것에 소유자 개인의 인격이 투영되었다면, 단순한 자원으로 활용되는 것은 하나의 인권유린이라고  여지가 생긴다고 본다.


물론, 디지털 도플갱어의 출현 자체가 잘못될 가정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뭔가 자기 같은 것을 남기고자 하는 자연적 충동이 기술과 만나면 뭘 만들어낼지 어떻게 알겠나..


어차피 기술 무지렁이이니 내게 이런 건 다 상상의 영역이다. 기운차게 '나라면'이라는 데서 결론을 찾아보자. 나는 일탈과 탈주를 '상상할 수 없는' - 귀찮고 체력 달리고 여러 가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실제로는 하지 않는지만- 세계에 존재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데이터 다발들의 세계가 어떻게 돌아갈지 엿보고 싶기도 하다. 아마도 나는 최초의 디지털 인간이 될 수도 없고 최후의 아날로그 인간이 될 수도 없을 것 같다.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세계가 도래하지 않는 것이 제일 속 편할 듯하다. 그다음은, 뭐, 알아서들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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