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이 좋다. 꽤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다. 하굣길에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발견하면 손에 쥐고, 주머니에 넣어 집에 가져왔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에 살뜰하게 모셔두었다. 나이가 들고 몸집이 커지면서 돌사랑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도 이어졌다. 바윗덩어리, 정말 좋다.
체감할 수 있는 커다란 바윗덩어리의 정점은, 현재 내가 실존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물론 지구다. 그렇지만 지구는 무언가 거대한 에너지 흐름과 같은 이미지지, 실제로 '돌을 체감'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되게 현세적이자 감각으로 사고를 보완해야 하는 인간이니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체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결론은 '돌산'.
돌산이 멋지다는 건 영상과 사진을 통해 그리고 정말 운이 좋게도 인연이 닿아 멀리서나마 내 눈으로 직접 본 히말라야의 산봉우리들 덕분에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돌산을 정말 좋아한다는 건 얼마 전 한여름 오후 더위를 뚫고 감행한 인왕산 등산 덕분에 알게 되었다. 분명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후기들에서는 1시간 이내 정상에 닿을 수 있는 '등산 초보자용 코스'랬는데, 올라가다 서고, 앉고, 눕고 온갖 몸놀림을 보여가며 겨우겨우 인왕산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녀오고 나서 자꾸 생각이 나는 거다. 팔꿈치께를 긁혀 여전히 거무스름하게 남은 흉터까지 남긴 그 도돌도돌한 바위의 감촉을 못 잊겠더라. 그래서 정했다. 등산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자.
사실 집에 (구) 산악인이 계신다. 오랜 기간 산악회 활동을 한 (구) 전국구 산악인, 엄마. 지금도 주에 몇 번씩 뒷동산에 가자고 날 꼬드기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엄마 혼자 헬스장으로 보내 버리는 나다. 하지만, 유난히 돌산이 사무치던 어느 날, '뒷산 말고 돌산'이라고 내뱉어 버렸고, 그 길로 정신 차려보니 북한산성 입구에 가 있었다. (구) 산악인의 제안 목적지는 두 개. 원효봉, 계단이 많고 코스가 짧고 경치가 끝내준다. 대남문, 비교적 길고 원만한 코스다, 왕복 약 10킬로미터. 자, 어느 쪽을 택하겠느냐. 나는 원효봉 코스를 택했다. 이미 북한산성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때가 지날 즈음이었던 데다가,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들에 원효봉 정도는 등린이 코스라는 언급들이 이어졌던 것이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후기를 읽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인왕산 등산길에 몸뚱이를 이끌고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꿈틀꿈틀 가면서 '등산인들이나 운동인들의 초보 따위는 믿지 말자'고 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 그걸 잊고 또다시 등린이 코스라는 말에 자기를 (등산인들. 운동인들의) 등린이에 끼워 넣었다. 그 결과, <북한산성입구-서암문(시구문)-원효암-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올라가기 와중에, 서고, 앉고, 인왕산 등산 못지않은 온갖 몸놀림이 나왔다. 경사가 가파르고 폭이 돌계단길이 이어져서 눕지는 못했다. 누가 등린이 코스래. 내가 오르는 길로 하산하시던 어떤 분께서는, 한눈에도 등산 고수셨는데, "아이고, 난코스로 올라오시네."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산 위에 올라서면 등산의 고됨이 날아간다는 것을. 원효암을 지나 원효봉에 도착하기 전, 난간을 붙들고 바위 급경사를 오르면 마치 원효봉인가 아닌가 싶은 봉우리(정확히는 큰 바위)에 닿게 되는데 그때부터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게 느껴졌다. 까끌한 바위 위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정경을 보니 예전에 '산 같은 건 아래에서 봐도 되는데' 따위의 말을 놀린 내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바위(원효대라고 부르는 듯)를 넘어 다시 난간을 붙들고 급경사를 올라 원효봉에 도착. '이 맛에 등산하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겨우 등산 2회 차인 데다가 결정적으로 저 밑 어느 풀숲 구석에 게워놓은 아점 찌끄러기가 성대를 울리지 못하게 했다.
하산길은 <원효봉-북문-보리사-(계곡길)-서암사-북한산성입구> 코스. 올라가는 건 자신 없다. 내려가는 건 자신 있다. 바위를 좋아하는 나는 계곡길의 큰 바위들을 눈에 꼼꼼하게 담으며 내려오는 여유도 가질 수 있다. 사실은 '뒷산 말고 돌산'이라고 했을 때, 나는 그냥 소소하게 이 계곡길이나 한 바퀴 돌고 갈 생각이었는데...
역시나 돌은 멋지다. 난간의 로프를 잡고 바위의 가파른 표면에 무게를 실을 때, 몸은 바위 위에 걸쳐 있지만 무언가 기운이 맞교환되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리고 거의 확실하게 이건 바위와 교감하고 싶다는 바람일 뿐일 거다. 꺼실꺼실하고 딱딱해서 품어주지는 않으면서 자기 위에 뭐든 턱턱 올려놔 주는 그 까칠하고 견고한 미덕이 닮고 싶은가 보다. 올라오는 것들에 한해서만 올려놔 주는 그 자신만만함까지 포함해서.
결론은 또 산에 가야 하겠다는 거다. 전국구가 될 깜냥은 없으니 멀지 않은 곳들을 위주로, 돌산을 찾아다닐 참이다. 그래서 밑창 쿠션이 많이 꺼진 트레킹화를 대체할 새 신발도 사고, 일단 시험 삼아 다이소에서 무릎보호대도 하나 사 두었다. 등린이 축에도 못 끼는 등산 신생아(등생아라고 해야 하나) 주제에 여전히 '등린이'를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고 있다. 이제 날씨도 제법 선선해지고 있으니 이 모든 준비가 참으로 든든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뒷산에 가자는 엄마를 혼자 헬스장으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