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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Jan 20. 2024

성대 결절, 그 마지막 이야기

성대 폴립 수술과 음성 치료 5개월 경과 리포트

나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소문난 투머치토커이다. 그래도 그럭저럭 목소리를 잘 관리해 가며 살아왔는데 코로나를 만나면서 내 성대는 이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코로나와 성대결절이 언뜻 인과관계가 이어지지 않겠지만 실제로 마스크를 의무착용하면서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목에다 힘을 주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해 여름부터 쇳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금세 저음으로는 정상적인 말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방치가 된 나의 성대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2년쯤 지나서야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성대 사진을 찍어보니, 성대 표면이 매우 거칠었고 일부 염증이 확인되었다. 그렇게 약 1년여간 약처방만으로 근근이 버텨보았으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로 치료할 것을 제안하였다. 처음엔 성대 결절 따위에 수술이 웬 말인가 싶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목소리는 더 갈라지고, 염증은 커져만 가니 하는 수 없이 큰 병원으로 찾아갔다.


을지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아가니 보자마자 수술 날짜를 잡자고 하는 것이다. 이 정도 상태는 자연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휘뚜루마뚜루 1주일 후로 수술 날짜를 잡고 곧바로 수술대에 눕게 되었다. 성대에 생긴 염증 하나 때문에 무려 전신마취까지 해야만 했다. 잠시이지만 숨이 멎게 된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다행히 1시간 뒤 무사히 깨어나게 되었고 수술은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수술 후 1개월간 모든 대화가 금지되었다. 심지어 '아' 소리는 물론, 성대가 움직일 수 있는 '허밍' 조차도 안된다고 했다. 실수로라도 말을 하지 않도록 한 달간 입에 의료용 테이프를 붙이고 생활해야만 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가고 '예', '아니오' 정도의 간단한 말을 시작으로 조금씩 말을 늘려갔다. 본투비 투머치토커답게 정상적인 대화량을 회복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름 묵언에 익숙해져서 말을 줄이고도 살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본능이 의지를 꺾어버렸다. 


수술을 마치고 묵언 수행이 끝날 즈음 병원에서 음성 치료를 병행하자고 했었다. 솔직히 이게 효과가 있을까 싶어서 두 번쯤 받고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치료를 중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술 후 3개월 경과 진료를 받으러 가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수술로 제거했던 염증이 다시 되살아 난 것이었다. 전신마취까지 해가며 힘들게 받았던 수술이 도로아미타불이 된 순간이었다. 의사는 이 상태가 계속되면 부득이하게 재수술을 해야 하니 음성치료를 다시 한번 해보자고 하여, 다시 음성치료를 시작했다.


1. 입술 털기 10회 / 입술 털면서 음을 올렸다 내렸다 10회

2. 스스 스스스, 쉬쉬 쉬쉬쉬, 즈즈 즈즈즈 호흡하기 각 10회

3. 후---음---마 / 후---음---메 / 후---음---미 / 후---음---모 ....

4. (얼굴 진동 느끼며) 음--매미매미 / 음--아침마당 / 음---퐁당퐁당...


이런 것들을 단계적으로 무려 2달에 걸쳐서 반복 훈련을 했다. 선생님과의 치료 후, 집에서도 차에서도 늘 반복 반복 반복했다. 정말 이런 게 효과가 있을까 끊임없는 의심을 하며 회당 7만원을 내고 꾸준히 받았다. 3회차인가부터 쇳소리가 조금씩 사라지며, 말하는 게 매우 편안하게 느껴졌다.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고, 확신은 믿음으로 진보했다. 오! 음성치료사 신이시여!


6회차가 되었을 때쯤, 도통 올라가지 않던 노래의 고음이 나오기 시작했고 말하는 목소리도 고음부터 저음까지 거의 완벽하게 구현이 되었다. 유치원 선생님처럼 나를 칭찬해 주던 선생님의 격려가 그냥 입바른 소리가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쇳소리는 거의 사라지고, 말하는 데 필요한 호흡법과 발성법이 익숙해지게 되었다. 음성치료사 선생님은 소리를 들어봤을 때, 염증이 적어지거나 사라졌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5개월 만에 2번째 검사를 받는데, 거짓말처럼 염증이 거의 안 보이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또 성대의 표면이 굉장히 매끄러워져 바람이 새는 것을 막아주니 깨끗한 목소리가 나오게 된 것이다.


3년이 넘게 나를 괴롭히던 성대결절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음성 치료사님도 엄청 칭찬해 주셨고 연습했던 발성법 잊지 말고 계속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3개월 후에 최종적으로 다시 확인해 보기로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예전처럼 노래를 엄청 잘부를 수준이 되려면 또 별도의 트레이닝을 받아야겠지만 일상생활에서 더 이상의 쇳소리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우선 대만족이다. 건강할 땐 몰랐지만 이렇게 한 번 잃어봐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경험하며, 나의 성대결절 스토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동안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성대 폴립! 안녕!


#성대결절 #성대폴립 #성대수술 #음성치료 #나도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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