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심 작가 진절 Mar 02. 2024

중요한 건 넘어진 이후이다

무릎을 내어주고 깨달은 현실

즐거운 삼일절 연휴의 둘째 날, 아내의 요청에 따라 폐기물을 1층에 내려놓기 위해 다소 무거웠지만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계단을 내려간 후 보도블록 연석에서 슬리퍼 앞코가 걸리며 그대로 무릎을 바닥에 찧었다. 바닥에 무릎이 닿는 순간 '아, 이거 심각하겠는데'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어나서 상처 부위를 보고 몇 걸음 걸어봤는데 예상보다 괜찮아서 살짝 당황&다행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비밀로 하려고 했으나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아내는 배꼽을 잡고 웃으면서도 상처 난 부위에 바를 약과 밴드를 챙겨주었다. 자칫 대형 사건으로 번질 수 있는 일이었지만 커피 한 잔 마시며 놀림거리 정도로 끝나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누구나 언제든 넘어질 수는 있다. 넘어지는 일 자체는 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요한 건 넘어진 이후이다. 넘어진 것 자체로 좌절에 빠지는 사람도 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나 툭툭 털고 가던 길 가는 사람도 있다. 큰 부상이 아닌 이상 길바닥에 앉아서 세상을 원망하고 있기보다는 얼른 일어나 무엇을 해야 할지 체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4년 우리의 시작은 매우 불안정했다. 물론 사업을 하면서 어느 해도 불안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으나, 이번엔 정말 현실적인 불안이 눈앞에 닥쳐있었다. 2023년도 상반기 내내 매출 부진에 시달리다 롤드컵을 계기로 간신히 매출 회복하나 싶었지만, 롤드컵 종료 후 1주일 후에 1개 팀 4명이 동시에 퇴사를 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지만 결국 내가 대표로서 역할을 못한 것이 가장 컸다. 지난 6년간 항상 조바심을 내며 타이트하게 관리하다 최근 조금 느슨해진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렇게 1차 파동이 있은 후, 남은 직원들과 향후 미래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이냐에 대해 논의를 하며 많은 트러블이 있었다. 조직이라는 곳은 언제나 구성원들 간의 생각의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내 방식대로 밀고 나갈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직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마음이었으나 그 협의의 과정 속에서 오히려 서로 많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생각의 차이가 예상보다 컸고 그것을 좁혀나가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 기간 동안 매출도 없이 협의만 할 수 없었기에 조기에 대충 봉합하고 일단 새로운 2024년을 맞이했다.


역시 예상대로 2024년의 시작과 동시에 2차 파동이 벌어졌다. 남아있던 팀원들 중 핵심 인력들이 타회사로 스카우트 제의가 와서 이직을 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우리의 주요 거래처였던 방송사로 이직을 하게 된 터라 나는 몇 십배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남은 직원들로는 더 이상의 회사를 운영할 수 없는 지경이라 부득이하게 모두 권고사직으로 내보내고 결국 7년 반 만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빛이 나는 솔로
(Bitch, 나는 Solo)


7년 반 동안 약간의 부침은 있었으나 3년 차 이후로는 대부분 평탄한 삶을 누려오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길바닥에 푹 쓰러지고 말았다. 넘어진 순간 머리가 하얘졌고, 다시 일어나서 또 달려야 하는지, 넘어진 김에 좀 더 쉬었다가 가야 할지, 자포자기해버려야 하는지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각이 깊어지면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가능성이 많았기에 일단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서 아픈 곳은 없는지 걸을 만 한지 타다닥 체크한 후에 일단 계속 걸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인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일단 1차 목적지까지는 가서 다음 스텝을 고민해야지 그 자리에 멈추면 도태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떠나간 직원들을 원망하며 지나간 세월을 후회한들 결국 나한테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다. 후회는 사람을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후회 따위와 내 소중한 미래를 바꿀 수는 없었다. 일단은 현재의 상황을 면밀히 체크하여 나의 미래에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꼼꼼히 따져서 세팅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렇기에 넘어졌다고 한가하게 앉아서 울거나 좌절할 틈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더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와 내 가족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세상은 때로는 한없이 자상한 부처의 모습이었다가도, 순식간에 성난 빌런의 모습으로 바뀔 수도 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강할 때는 한없이 부드러웠다가도, 약해졌다고 판단하는 순간 어김없이 강한 린치를 걸어온다. 어쩔 수 없지만 그게 냉혹한 현실이고,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 그렇게 이 세상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항상 단련하고 쓰러져 넘어지자 않도록 다독여야만 한다. 그러다 혹여 부득이하게 넘어진다 해도 빠르게 일어나 다음 목적지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야만 이 험한 세상 살아남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대 결절, 그 마지막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