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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작가 진절 May 14. 2024

10억이면 은퇴  가능?

인생의 반환점에 강제 은퇴(?) 당한 자의 고백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독자분께 먼저 질문!


"당신의 나이가 50세 전후이고, 모은 자금이 부동산 포함 순자산 10억이라면 은퇴하시겠습니까?"


사람마다 다양한 부수적인 조건들이 붙겠지만 사실 부채까지 반영한 순자산 10억원인 가구는 상위 10%에 해당한다고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90%의 사람들은 순자산이 10억 미만이라는 것이다. 요즘 로또 1등에 당첨되면 13~15억인데 세금 제외하고 나면 실수령이 딱 10억 쯤 되지 않을까?


10억이라는 돈은 이런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이면 누구라도 10억에 대한 꿈은 한 번씩 꾸게 된다. '빨리 10억 모아서 은퇴해야지..' 금융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막연한 꿈을 꾸게 되지만 이내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27세에 첫 직장에서 10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1500만원 연봉을 14로 나눠 12는 매월 1씩 지급되었고, 나머지 2를 0.5씩 나눠 여름휴가, 겨울휴가, 설날, 추석에 각각 보너스 개념으로 받았다. (끙... 그것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기로 하자) 그렇게 매월 세전 107만원 세후 딱 100만원 정도 실수령했다. 당시 나는 현재의 아내와 사귀는 중이었는데 첫 월급을 받자마자 아내는 무조건 70%를 적금으로 넣으라고 명령했다. 


아내는 내가 첫 월급을 받던 시기에 이미 8년 차 직장인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중견기업 이상급의 회사를 다녔고 꽤 많은 돈을 모았었다. (물론 당시에는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집안 내력일까 돈을 모으는 데는 아주 귀신같은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내와 직장 생활 1년 만에 결혼을 했고 직장을 옮겼다.


아무튼, 다음 직장에서는 120만원가량의 급여를 받았고 여전히 70% 이상을 저축해야 했다. 그렇게 총 2년 반의 직장생활 후에 나는 홍대 근처에 라면가게를 차리려다 자금의 압박에 포기하고 홍은동에서 만화방을 인수해서 1년 반 정도 운영했지만 거의 빈손으로 나오다 시피 했다. 그리고 들어간 곳이 굴지의 이벤트 기획사를 들어갔고 연봉이 약 3천만원 실수령액 약 220만원을 받았고, 급여가 올라가자 저축률은 더 잔인하게 올랐다. 220만원 중 20만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내에게 헌납했다. 한 달 용돈 20만원으로 생활을 해야만 했던 암울한 시기였다. -자산 합계 0-


우리는 만화방을 정리하고 큰 기획사로 들어가던 무렵에 대출을 5천만원이나 받아서 1.2억짜리 21평 주공아파트를 매입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귀여운 대출이다) 그때까지 모았던 모든 예적금과 아내 비자금을 다 털어서 저질러 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이때 전월세가 아니라 5천만원 대출 끼고 집을 샀던 게 내 모든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산 합계 7천만원-



약 8년간의 대형 기획사 생활을 청산하고 20명 한 개 본부가 자회사 개념으로 독립하면서 회사의 넘버 2가 되었고 연봉은 약 6천만원+알파까지 상승했다. 물론 연봉은 올라도 내 용돈은 늘 20만원~30만원이었다. 직원들이 밥이라도 사달라고 할까 두려워서 직원들과의 점심을 기피 현상까지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게 알뜰살뜰 돈을 모았고, 두 아들들이 커옴에 따라 10년 만에 근처 34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5천만원 대출해서 산 1.2억에 산 아파트가 2.5억에 매도되었고, 그동안 5천만원의 대출은 모두 상환한 상태였다. 그렇게 순수 2.5억에 추가로 2억을 대출받아 4.3억짜리 브랜드 아파트로 옮겼다. 세금에 중개료에 이사비에 기타 등등 가진 것 모두 탈탈 털어서 산 집이었기에 거의 여유 자금이 제로에 가까웠다. -자산 합계 2.5억-


새 집으로 이사를 온 날 아내는 대출 다 갚을 때까지 지금 회사에 뼈를 묻을 것을 지시했고 나는 무조건 그러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2월에 이사를 했고, 5월에 친구의 3억 투자 조건으로 회사를 창업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세팅을 했는데 친구는 투자를 철회하였다. 낙동강 오리알이 된 나는 부득이하게 집을 담보로 추가로 1억을 대출받아 불안한 출발을 했다. 


처음 2년 동안 회사는 적자 상태를 면치 못했고, 거의 순손실 2억까지 찍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열심히 70%, 80% 적금 들며 개미 같이 모았던 소중한 돈들이 한 줌 재로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럴 거면 그냥 열심히 모을 게 아니라 펑펑 쓰면서 살 걸.. 하는 쓸데없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자산 합계 다시 0-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John나게 버티다 보니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고 물귀신 같이 그 기회를 꽉 붙들었다. 그렇게 회사는 성장을 거듭하다 매출 130억(2019, 2022)을 두 번이나 찍는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잡았고, 2019년에는 꿈에 그리던 홍대 사옥까지 마련하며 탄탄대로를 걷을 것만 같았다. 초기 어려운 시절에 상징적으로 100만원을 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덧 억대 연봉에 준하는 수준까지 올랐다. 그러는 사이 아파트 가격도 최고 10억을 넘었다가 지금은 8억 중반 수준을 형성하고 있고, 걸려 있던 대출은 모두 상환 완료했다. -자산 합계 10억 이상(부동산 포함)-


그러나 2023년부터 갑작스럽게 불길한 기운이 감돌더니 2023년 연말부터 2024년 1월까지 모든 직원들이 각자의 사연으로 인해 순식간에 모두 회사를 떠나고 혼자 남게 되었다. 그 자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만 생각하면서 살 수는 없었기에 또 열심히 노력해서 사옥 전체를 통임대로 계약을 맺고 지금은 반백수의 상태로 뜻하지 않은 강제 은퇴를 한 상황이다. 사옥을 매입했을 당시 부동산 상승기 바로 직전이었기에 현재 사옥의 시세는 대충 30% 이상 상승하였고 매각을 한다면 꽤 많은 차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인생이란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매각을 완료하여 내 손에 쥐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현재 더 이상의 큰 돈벌이는 없을 상황에서 10억+알파의 순자산을 보유한 채로 부득이하게 강제 은퇴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알파는 사옥 매각 상황에 따라 엄청난 편차가 있을 것이기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우리가 처음 돈을 모으던 그때처럼 알뜰살뜰 잘 아끼고 산다면 크게 걱정거리가 없는 상황이다.




약 20여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깨달은 건 우선 큰돈을 모아 일명 F.I.R.E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노력과 저축을 통해 시드를 만드는 것이 1번이고, 어느 정도 형성된 시드를 과감한 투자를 통해 점프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2번이다. 단지 1번 만으로는 큰돈을 만지기는 어렵고, 2번 만을 하기엔 시드 없이는 과감한 투자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모든 것에는 엄청난 행운과 조력자, 타이밍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도 냉혹한 현실이다. 그 행운과 조력자를 만드는 것도 본인의 몫이기에 결국 자신의 모든 흥망성쇠는 자신의 손에 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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