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봉 Mar 10. 2019

천생염분

-시시(詩詩)한 이야기


“라면 국물의 간이 비슷하게 맞는다는 것은 서로 핏속의 염분이 비슷하다는 뜻이야”라는 말이나 해야 했을 때

-박준 詩, ‘동지’ 부분


  말장난을 좋아하는 나는(가끔 힙합으로 나갔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한다) 늘 하던 말들이나 단어들이 갑자기 따로따로 쪼개져서 새롭게 들리는 때가 있다. 이번에는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꼭 ‘천생염분’이라는 말로 들렸다. 염분, 그러니까 소금기 같은 것 말이다.

  천생염분이란 말이 만들어지고 나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뻗어나간다. 혹시 이런 게 천생염분일까? 이렇게 하면 어떨까?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재밌다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즐거워한다. 나만 알고 있기 근질근질하기에 지난 주말에는 친구들을 붙잡고 “천생염분”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이거 대박인거 같아, 광고해야하는 거 아닐까 너무 재밌지 않니! 말하면서 상상속 얘기를 늘어놓았다.


#상상

   J는 대학교 2학년, 지하철 7호선 상봉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대성리쯤으로 19명의 동아리원들과 엠티를 간다. 한 학년 어린 후배들이 막 들어와서 분위기가 한껏 밝다. 그날 저녁에 고기를 굽고 온갖 술게임을 하면서 진탕 술, 아침에 먼저 일어난 J는 후배들에게 라면을 끓여준다.

  라면 1개를 끓일 때 뒤에 나온 조리법대로라면 보통 550ml의 물을 넣는 것이 정석. 그런데 J는 꼭 라면을 좀 슴슴하게 먹는 사람, 라면 하나를 끓일 때면 600ml의 물을 넣곤 하는 사람. J가 라면 10봉지를 뜯어 끓이고, 눈대중으로 물을 넣었는데도 버릇처럼 기가 막히게 라면에 물이 많다. 라면은 끓고, 다 익도록 라면 국물은 흥건하다. 하나둘 밥상으로 몰려든 1, 2학년들이 국물이 흥건한 라면을 나눠먹기 시작한다. 친구 A가 술에서 덜 깬 목소리로 “야, 좀 싱겁다 물을 뭐 이렇게 많이 넣었어. 누가 끓였냐?”라고 말하자 당돌한 새내기 K “저는 괜찮은데요? 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누가 끓인 거예요?”라며 고개를 들고 두리번 두리번. 그때 K는 저쪽에서 김치를 들고 오는 J와 눈이 마주치는데…

 

-세상에 라면 말고도 간을 맞출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그 음식을 평생토록 먹고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일테고, 소금 한 꼬집이 짜고 싱겁고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당신의 짠맛과 나의 짠맛이 비슷하게 통한다는 것만큼은 더할나위 없이 원초적이다. 천생염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