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72일 차, 오늘의 일기
날씨가 다 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완벽한 봄날이었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거리에 내려앉았고, 벚나무에는 어느새 팝콘 같은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만개해 있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런 날.
오늘은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에서 계란 포장 봉사가 있었다. 늘 청년부가 도맡아 오던 일이라 당연히 이번에도 우리가 나섰지만, 30명 남짓한 인원 중 나를 포함해 겨우 5명만이 자리를 채웠다. 평소보다 포장해야 할 계란의 개수도 훨씬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화가 나지 않았다. 나조차도 이런 씁쓸한 상황에 이골이 난 건지, 아니면 창밖의 날씨가 내 마음의 뾰족한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준 건지 모를 일이다.
서둘러 포장을 마무리하고, 오후에 예정되어 있던 AI 모임 장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전철을 타고 가던 중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 동생의 가방과 내 가방이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타던 전철에서 내려 다시 교회로 되돌아가야만 했다. 가방 안에 AI모임 때 반드시 있어야 할 노트북 때문에 내일 바꾸자는 말도 못한다. 보통의 날이었다면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에 짜증이 솟구쳤겠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자연이 선물하는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는 내게 주어진 이 시간적 여유가 더없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가방이 바뀐 사고 '덕분에' 나는 한 번 더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다시 모임 장소로 향하는 길, 늘 환승하느라 내리던 천왕역을 지나쳐 일부러 온수역에서 내렸다. 남들이 보기엔 시간 낭비였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봄날의 여유를 만끽하기 위해 기꺼이 지불한 '나를 위한 우회로'였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AI 모임 장소. 세 명이 머리를 맞대고 수익화 아이디어를 짜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며 간단한 게임도 기획해 보았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까?' 허공에 물음표를 던지며 고민하는 그 시간마저 가슴이 뛰고 설렜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설레게 만드는 걸까. 아마도 틀을 깨는 새로운 도전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피어난 새로운 봄 때문일 것이다. 내가 계획하고 꿈꾸는 대로 삶의 방향을 틀기 위해서는, 멈추지 않고 생각하며 도전하고 그 모든 순간을 기록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밖을 쏘다니며 에너지를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책상 앞에 앉아 브런치에 글을 남기고 블로그를 썼다. 결코 쉽지 않은 나와의 싸움이지만, 기어코 해냈다는 그 '작은 성공'이 피로마저 기분 좋게 녹여주는 밤이다.
https://blog.naver.com/inpersonal/224241044545
내일은 교회 친구들과 함께 목감천을 따라 7km 러닝을 하기로 했다. 오며 가며 눈여겨봤는데, 그곳의 벚꽃이 정말 기가 막히게 피어 있었다. 흩날리는 벚꽃 비를 맞으며 달리는 기분은 과연 얼마나 짜릿할까. 내일의 달리기가 벌써부터 가슴 벅차게 기다려진다.
지금 내 안에 가득 찬 이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봄의 감정이, 활자를 타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찬란한 봄을, 부디 한 점의 아쉬움 없이 만끽하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