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축가 이영재 Aug 07. 2018

일본건축기행 2-17

고치(Kochi, 高知)

[ 5 일차 ] _  사와다맨션(澤田マンション) 낯설지 않은 희망


이번 5박6일 일정의 마지막은 고치시(高知市)에 있는 사와다맨션(澤田マンション)이다. 다카마츠로 돌아오는 길목에 고치시를 둘러보는 여정이어서 사와다맨션 외 다른 장소를 둘러 볼 겨를이 없어 아쉽다.

한국에서 자료 조사를 할 때, 관심이 갔던 곳은 나오시마(直島)와 이 곳 이었다. 우리나에서도 사와다맨션에 대해서 짧게 소개된 적이 있다.


EBS다큐프라임(2016년 2월2일 방영) '행복한 건축 2부-소통을 넘어 치유로'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다. 건축을 이야기 하면서 왠 소통 그리고 치유를 거론하는지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그 방영분을 보게 된다면 단순히 건물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를 이해 할 수 있다.


EBS다큐프라임(2016년 2월2일 방영) '행복한 건축 2부-소통을 넘어 치유로'에서 캡쳐


원래 사와다카노(沢田嘉農,1927-2003) 할아버지는 이 집을 지상10층, 100가구를 구상하였다. 1971년 제 1 기 공사가 시작되어 1년만인 1972년 완공되었다. 그리고 1976년 2기 완료되고, 1985년 제 3 기가 마무리 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2003년 사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증축 없이 유지 보수되고 있다.

현재는 지상6층, 6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 공동주택은 엄밀히 따져 불법건축물(違法建築)이다.

사와다 할아버지는 건축가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시공의 경험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젋은 시절부터 제재소와 목수의 일을 해왔던 순수 아마추어였다. 또한 콘크리트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이 집은 시작되었으니, 꿈으로 가득한 모험가나 다름없다.


1971년 처음 1기가 착공될 무렵 관할 관청은 '강도에 이의를 제기 하지 않겠지만, 수수료가 준비되면 허가를 받으라'하였으나 여전히 불법건축물로 남은 걸로 봐선 사와다 할아버지도 그리고 관청도 크게 문제시 하지 않은 모양이다. 여전히 「아슬아슬한 불법건축」으로 불려지고 있다.


사와다맨션(澤田マンション)의 외부 전경


이후 여전히 행정지도, 공사중지명령 등 여러 가지 조치가 형식적으로 취해지고 있지만 자주적 방재 조직 결성과 피난 훈련 등을 실시하고 있어 큰 마찰없이 주민들은 살고 있다. 또한 불법 건축물이기는 하지만 사유 재산권 문제, 거주권 문제 등이 결부되어 관청 역시 어쩌지 못하는 입장이다.


그보다 더 이 공동주택은 입주 당시 모자가정, 사회적 빈곤 및 소외계층을 우선 입주토록 하여, 건물 하나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이 컸었다. 그리고 지금은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에 젊은 청년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었고, 개발 행정과는 원래 상반된 입장을 고수하는 건축가들이 관심을 보임으로 인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이런 움직임이 이 곳을 살리는 희망이 된다.


사와다맨션(澤田マンション)의 옥상 전경


2002년에는 '사와다 맨션의 형상과 생활공간-셀프빌드 집합 주택에 관한 고찰' 이라는 동경이과대학(東京理科大学) 카가야테츠로우(加賀谷哲朗)의 석사 논문으로 까지 쓰여진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카가야는 이 논문을 위해서 사와다 맨션에 1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사와다맨션(澤田マンション)의 소통의 공간 경사로
사와다맨션(澤田マンション)내의 입주한 가게와 사와다카노 할아버지의 작업 공간


이 곳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사와다맨션의 2층에 자리하고 있는 건축설계사무소 였다. 외부와는 다르게 내부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사무실 안에는 한 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본어가 능통하다면 대화라도 나눠 봤을 텐데. 언어적 장애로 용기가 없었다.


SAI 일급건축사사무소(SAI一級建築士事務所)라고 이름을 내 건 이 사무소는 젊은 건축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1975년에 설립되어 주택의 설계와 시공을 모두 하고 있는 회사였다.

사와다맨션에 입주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더해진다.


사와다맨션에 있는 건축사사무소


사와다맨션(澤田マンション)은 힘겹게 지켜 지고 있다. 한국이었으면 주인도 여러 차례 바뀌고 그 와중에 지키고자 발버둥을 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새벽 댓바람에 중장비가 동원되어 그 의미나 가치는 아랑곳없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멀쩡한 건물도 아무리 유명 건축가가 설계를 하고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고 한들, 부동산 개발 이익이 두 눈을 가려버리면 한국에서는 사라진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런 광경을 지켜봤다.

반만년 역사의 자부심, 문화 가치에 대한 인식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지웠다.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유작 '카사 델 아구아' 그리고 김중업 선생의 '제주대학 (구)본관'도 갖가지 이유로 철거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둘러 본 나오시마를 비롯한 세토내해에 있는 섬에서 그리고 구라시키미관지구의 여러 가옥, 마지막으로 둘러온 이 곳 사와다맨션은 모두 살아있다.

이유는 문화 가치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보았다. 보는 것마다 한국의 사정들과 오버랩하여 돌이켜 보자니 한편으로 부럽고,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일정 내내 내렸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어 발걸음이 차고 무겁다.


최삼영 소장님, 박찬규 소장님, 석정민 작가님 그리고 본좌~~~


이번 일본 건축 답사는 일본의 지방 소도시와 섬을 위주로 다녔다.

구라시키미관지구와 나오시마, 데시마는 이미 많이 알려진 곳이지만, 그 외 다카마츠, 유스하라, 고치는 그에 비해 아직은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일반적인 관광의 목적보다는 그곳의 건축물, 건축가, 예술가 그리고 미흡하지만 관련된 짧은 소사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고 이해 할 수 있는 시간 이었다.


건축가 최삼영 소장님, 박찬규 소장님 그리고 석정민 작가와 일정 내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조만간 다시 모여 다음 여정에 대한 준비도 하겠지만, 그동안 나눴던 대화도 정리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내일 아침 다시 오카야마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간다. <2편. 끝.>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건축기행 2-1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