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설계하는 공간

지친 시대가 공간에게 물음을 던지다

by 노준철

쉬어가는 시간이 내게 알려준 것

작년 가을, 캐나다 밴쿠버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핼러윈 시즌의 호박밭 행사장(pumpkin patch)을

찾았습니다. 주황빛 호박들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에서

딸은 쉴 새없이 뛰어다니며 웃고 있었고,

아내와 저는 한참을 나란히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았죠.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왜 그토록 오래 기억에 남는지,

단순히 풍경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기점마다 저는 친척들이 살고 있는

캐나다의 자연을 찾아 숨을 골랐습니다.

육아 피로가 정점에 이르렀던 시기도,

2023년 직장에서 마음이 가장 무거웠던 순간에도,

깊은 자연의 울림이 제게 회복의 언어를 건네주더군요.

그 어떤 공간도 해주지 못했던 위로였습니다.


밴쿠버 인근에서 찾은 핼러윈 펌킨 패치 행사장


회복이 일상의 언어가 되다

흥미로운 것은, 이제 '회복'이라는 단어가

개인의 사적 경험을 넘어 사회 전반의 언어로

자리잡았다는 점입니다. 최근 헤이팝의 한 기사는

이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요즘 F&B 공간들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곳을 넘어 러닝, 요가, 명상,

리딩 클럽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죠. 그 기사에서는 'HQ(Health Quotient,

건강지능)'라는 용어를 소개합니다. IQ, EQ에 이어 이제는

건강이 삶의 필수 역량이 된 시대라는 것이죠.

회복탄력성은 한때 전문 심리학자들의 언어였습니다.

강의 현장에서 '공간이 회복을 담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다소 생경해하는 반응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이제 공간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넘어,

어떻게 소진된 에너지와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습니다.


파리 중심부에 문을 연 프랑스 최대 사우나 공간, 생 로크


멀리 떠나야만 회복되는가

최근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도심이 아닌

교외의 리조트와 아울렛으로 향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도시의 밀도와 속도에서 벗어나 잠시 다른 리듬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읽히더군요.

교외의 공간이 가진 힘은 분명합니다.

주변 환경, 일상의 소란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 그 거리감 자체가 회복의 가장 큰 자산이 되죠.

밴쿠버에서 느꼈던 감각도 결국 이 '분리'의 힘이었습니다.

일과 양육의 무게로부터, 메시지 알림과 마감에

흔들리던 리듬으로부터, 잠시 멀어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교외의 리조트와 호텔, 공원들은 더 이상 단순한

'여가 공간'이 아닙니다. 도시인들이 일상을 버텨내기

위한 회복 인프라로 기능해야 하는 시대가 됐죠.

풍경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안에서 어떤 속도로 걷고, 어떤 호흡으로 쉬어갈

수 있는지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할 듯합니다.


도심에서 숨을 고르는 법

하지만 모두가 매번 멀리 떠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도심 한복판에서도 회복이 가능한가,

그 답을 공간이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라는 것이죠.

최근 포니정재단 제20회 혁신상을 수상한

조경가 정영선 선생이 평생 천착해 온 주제가

결국 이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유도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서울아산병원 녹지공간에 이르기까지,

그의 정원들은 콘크리트 도시 한가운데에서

시간과 계절을 되살려 놓는 장치였습니다.

선생은 정원이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이 말이 한 조경가의 바람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바램이 된 셈입니다. 올해 3월 문을 연

'생 로크(Sant Roch)'도 같은 맥락에서 흥미로웠습니다.

400㎡ 규모의 이 공간은 프랑스 최대 사우나로 설계됐죠.

도심 한복판에서도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가며

몸과 마음이 리셋되는 경험을 선사한 것입니다.

결국 좋은 공간이란 풍경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친 사람이 스스로 숨을 고를 수 있는 하나의

여백을 설계해주는 일이 아닐까요?



1. 러닝, 요가, 와인, 디제잉으로 연결되는 라이프스타일 공간 4


2. 포디정재단, 제20회 혁신상 수상자에 '정영선 조경가' 선정


3. 파리 중심부에 문을 연 프랑스 최대 규모의 사우나, 생 로크


4. 서울 밖 리조트, 아울렛으로 향하는 외국인들


5. 패밀리마트가 설계한 생활 인프라의 새로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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