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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numsa Aug 17. 2024

모니터 연결선

  대학원생의 논문을 지도할 때 노트북 화면을 같이 보면 좋을 거 같아서 연구실 중간 탁자에 모니터를 놓고 HDMI로 대학원생의 노트북 화면을 복제해서 보면서 여긴 어떻고 저긴 어떻고 지도를 했다.

  그런데 다음 대학원생은 HDMI 가 없는 신형 노트북을 들고 왔다. 할 수 없이 HDMI to USB-C 선을 하나 샀다.

  두 사람이 올 때마다 선을 뺐다 꽂았다 하기 귀찮아서 HDMI 분배기를 샀다. 모니터와 분배기를 연결하고 분배기의 한쪽에는 HDMI 선을, 다른 한쪽에는 HDMI to USB-C 선을 꽂아서 흡족해 하였다. 동시에 두 사람을 봐 줄 때 화면 전환에 조금 딜레이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쓸 만했다.

  그런데 지도할 때마다 “화면 좀 올려 보세요.”, “다음 쪽 보여주세요.”, “서론으로 가 보세요.”, “목차 잠깐 봅시다.” 이런 말 하기 귀찮아서 직접 컨트롤할 마우스와 키보드를 연결하고 싶어졌다. USB-C 기술이 발달해서 허브에는 USB-A 단자뿐만 아니라 모니터까지 출력되는 HDMI 단자까지 딸린 제품들이 많아서 기뻤다. 허브에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를 다 연결하고, 대학원생의 노트북에 허브 연결선만 꽂으면 논문 지도 준비 끝!

  대학원생들을 졸업시키고 다음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은 USB-C 단자가 없는 구형 노트북을 들고 왔는데 HDMI 도 micro HDMI 단자였다. 마침 집에 모토로라의 ATRIX 살 때 끼워준 HDMI to micro HDMI 선이 있어서 그걸 들고 왔다. 분배기로는 해결이 안 돼서 그냥 HDMI, HDMI to USB-C, HDMI to micro HDMI 셋을 철끈으로 묶어서 보관하다가 대학원생 노트북에 따라 꺼내쓰기로 했다.

  마침 무선 마우스가 생겨서 허브에는 무선 키보드 동글이와 무선 마우스 동글이를 꽂아 두니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고 매우 편리했다. 이제 어떤 노트북을 들고 와도 논문 지도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아서 또 흡족했다. 그 사이에 거추장스러운 모니터를 치우고 포터블 모니터를 하나 구했다. HDMI 선도 연결되고 USB-C 선도 연결되고 터치도 되고 USB 동글을 하나 연결하는 단자도 있었다. 이번에는 USB-C to USB-C 연결선을 하나 샀다. 그걸로 노트북에 연결하니까 전원선도 필요 없고 USB 허브도 필요 없고 너무 편리했다.

  micro HDMI 단자를 가진 노트북은 결국 뻗었고 그 주인은 새로운 노트북을 사 왔다. 다행히 이번에는 USB-C 가 달린 모델이었다. 이 대학원생도 무사히 졸업을 했다.

  다음 대학원생이 논문 지도를 받으러 왔다. 노트북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설마 했는데 HDMI 도 없고, USB-C 도 없고, micro HDMI 도 없고, 이게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mini HDMI 였다. 이럴 수가! 하지만 다행히 폴라로이드 액션캠 살 때 끼워준 HDMI to mini HDMI 선이 집에 있었다. 이 분은 전공을 옮겨서 다른 지도교수에게로 갔다. 모니터 연결선이 4종류나 되다니 이젠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여기까지가 지난 3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얼마 전에 새로운 대학원생이 논문 지도를 받으러 왔다. 지금까지는 모두 석사 과정이었는데 이 분은 박사 과정이다. 가방에서 맥북을 꺼냈다.

  ‘흠, 나쁘지 않군.’ 하면서

  “화면 좀 같이 볼게요.” 하고 단자를 찾았다.

  이럴 수가! 그 맥북에는 HDMI 는 당연히 없고 USB-C도 없고 micro HDMI 도 없고 무려 썬더볼트 단자만 있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쓴웃음을 삼키며 인터넷 상점에서 USB-C to 썬더볼트 연결선을 검색했다. 다행히 그런 선도 있긴 있었다. HDMI to 썬더볼트를 검색하지 않은 이유는 포터블 모니터에 HDMI보다 USB-C 로 연결하는 게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결국 썬더볼트 선도 하나 샀다.

  요즘 논문 지도 받으러 오는 대학원생들은 다들 USB-C 단자가 있어서(썬더볼트 달린 그 분만 빼고) 화면을 공유하기 편리하다. micro HDMI 나 mini HDMI 는 이제 다시는 쓸 일이 없을 것이다. 대학원생들의 노트북을 보면, 이제 HDMI to HDMI 도 거의 필요 없어질 것 같다. 아주 예전에 나는 외부 기관에 강의를 하러 나갈 때 HDMI to VGA 젠더를 들고 다녔다. 강의실 빔프로젝터 연결선이 구형인 경우가 많아 내 노트북과 연결이 안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노트북을 신형으로 바꾼 뒤에는 노트북에 RJ45 단자가 없어서 RJ45 단자가 포함된 USB-C 허브도 들고 다녔다. 연수원에 무선 인터넷이 잘 안 되고 노트북용은 유선 인터넷만 연결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연수 기관들이 모두 HDMI 로 대동단결하고 WIFI도 아낌없이 열어주기 때문에 연수 다니기도 편해졌다.

  연구실에 <모니터 연결선>이라는 견출지가 붙어 있는 상자를 보면, 나란히 앉아 밤늦게까지 석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던 사람들과 그 시간들이 떠올라 아련하고 흐뭇해진다. 대학원생들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중국에 돌아간 그분들에게도 한국에서의 날들이 아련하고 흐뭇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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