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법 수업을 한다. 3학년은 문장의 짜임이고 2학년은 음운의 변동이다. 다음 주가 시험인데 3학년들이 잘 못알아듣는 것 같아서 도서실에서 보충 수업을 해 준다고 애들을 모았다.
도서실로 가는데 다른 국어 선생님이 퇴근하면서 "선생님 인기 강사네요?" 하였다. 대충 흘려 듣고 도서실에 갔는데 대략 50여명이 모여서 도서실에 자리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책상도 없이 소파에도 앉고, 바닥에도 앉고 무슨 '상록수'의 한 장면을 보는 줄 알았다.
잠시 당황한 마음을 가다듬고 노량진의 일타 강사 빙의해서 마이크를 잡고 강의를 한참 하는데, 이런 일방적인 강의는 오랫만이라 참 새로웠다.
강의를 대충 마치고 질문을 받고 답해 주는 시간이었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서 대답을 한참 듣던 허은지가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 강의를 정말 잘 하시네요. 근데 전 하나도 이해가 안 돼요."
"네가 이해가 안 되는데 강의를 잘 하는지 어떻게 아니? 네가 이해가 안 됐다면 강의를 잘못 한 거지."
그렇게 말하고 다시 한 번 모르는 부분을 설명해 주는데, 대학교 '문법교육론' 수업이 생각났다. 누가 이렇게 말했었다.
"선생님 수업 들은 언니가 그러던데, 교수님은 정말 친절하고 열심히 가르쳐 주는데 자기가 부족해서 강의를 못 알아들어서 아쉬웠대요."
처음 들을 때는 그냥 내용이 어려웠구나, 공부하느라 힘들었구나, 이렇게 이해했는데, 이번에는 저 말이 다르게 들렸다. 결국 내가 그 한 명을 이해 못 시켰는데, '강의를 잘 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퇴근하면서 다른 선생님이 던진 '인기 강사'라는 말도 결국은 같은 의미 같았다. 보충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건, 인기 강사라서가 아니라 정규 수업 시간에 이해 못한 아이가 전교생의 4분의 1이라는 말 아닌가. 이해 못했으면서 보충도 안 하는 아이들이 4분의 1 더 남아 있는 것도 물론이다.
'배움의 공동체'에서는 '가르침'이 있는 교실 대신 '배움'이 있는 교실을 말한다. "나는 잘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이해를 못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있었는데, "선생님은 잘 가르쳤는데, 나는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하는 학생까지 있는 걸 보니 '가르침'의 신화가 얼마나 공고한 것인 줄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가르침'과 '배움'의 간극이 더욱 아찔하게 느껴진다. 도서실에서 마이크 잡고 대형 강의를 하면서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도 그제서야 이해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르치고는 있는데 정말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불안감이었다. 교실에 'ㄷ'자로 앉아서 생각을 물어보면서 조용히 느리게 나아가는 수업이 그리워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