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친구 희원이가 있다. 희원이는 어린이집을 같이 다녔고 같은 유치원에 입학해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이다. 어느날 연아가 집에 와서 울면서 말했다.
"희원이가 자기가 나보다 키 크다고 언니라고 하면서 자기 말 들으라고 했어요."
희원이와 연아가 갈등이 있었나 보다. 그런데 희원이가 키로 굴복시키려고 했겠지.
"그래서 많이 속상했겠구나."
"네. 제가 그래도 내 물통이 희원이 물통보다 더 키 크다고 말했는데도 희원이가 그건 상관 없다고 했어요. 엉엉."
연아는 설움이 폭발했는지 대성통곡을 했다.
며칠이 지나고 집에서 간식을 먹을 때 내가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요새는 누구랑 놀아?"
"희원이랑 신수빈."
"희원이가 이제 키 작다고 안 놀려? 연아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아니요. 미안하다고 안 했어요."
그냥 자기들끼리 풀고 잘 노나보다 했는데 연아가 웃으면서 혼잣말을 했다.
"어? 이상하다. 미안하다고 안 했는데 왜 마음이 풀렸지?"
'태어난 지 46개월 된 연아야, 사람의 감정이란 그렇게 흘러가는 거란다. 어차피 흘러갈 감정을 마음에 붙잡아 두고 자꾸 곱씹으면 안 된단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으로 자라라.'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기도했다.
가끔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이러한 감정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이들 지도하는 일로 감정 상하지 마시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선생님들은 자주 질의응답 시간에 "그럼 선생님은 애들한테 화를 한 번도 안 내세요? 애들 때문에 화나는 적 없으세요?"라고 묻는다.
화를 안 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화가 나도 참는 것,도 아니다. 도를 닦으면 절대 화가 안나는 사람이 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화가 날 때 화를 '어떻게' 내고 화라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화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이 그러하다. 기쁨이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분노나 슬픔도 내가 느끼는 여러 감정 중 하나일 뿐, 그 감정이 나를 흔들게 놔 둬선 안 된다.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라."라고 한다. 아이들은 상담할 때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요."라고 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할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배워야할 것은, 안 싸우는 방법이 아니라 '싸운 다음에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이다. 안 싸우기 위해 갈등을 피하고, 참고 넘기고, 속으로 삼키고, 억지미소를 띄우는 인생이 행복할 리 없다. 그렇게 참다가 터진 싸움은 관계를 회복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방법이 아니라, 상처를 받았을 때 '마음의 상처를 치료, 회복, 극복하는 방법'이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죽으면 된다. 죽고 나면 상처 받을 마음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것이 자살자의 심리이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안 싸워요?' 대신 '싸운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 회복하나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상처를 안 받나요?' 대신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료하나요?'라고.
교사들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M.Buber는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받는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