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 검사를 하는데 어떤 학생이 줄과 줄 사이의 공간, '칸'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거기에 글씨를 쓰지 않고, 줄에 걸치게 글씨를 잔뜩 썼다.
"왜 이렇게 썼어?"
"음.. 그 안에 맞춰 쓰면 글자가 너무 갑갑할 것 같아서요."
"응?"
깜짝 놀랐지만 대응할 말을 찾기 위해 공책을 다시 한 번 꼼꼼히 살펴보니 딱히 줄에 걸치게 쓰려고 의도한 건 아닌 듯 군데 군데 '칸'에 쓴 부분도 있다. 그냥 줄공책이라는 생각 없이 연습장 쓰듯이 쓴 것같다.
"그럼, 여기 얘들은 왜 이렇게 칸 안에 썼어?"
학생은 몰랐다는 듯이 흠칫 놀라며
"헉!" 소리를 내고 눈이 동그래졌다.
나도 눈을 동그랗게 쓰고 학생을 바라보며 할 말을 조심스럽게 골랐다.
"다른 애들은 자유롭게 쓰고 얘들만 갇혀 있으면 불공평하잖아?"
학생은 다시 한 번 "헉!" 하며 놀랐다.
반응이 귀여워 더 말하지 않고 내용에 대해서만 칭찬해 주고 보냈다.
다음 시간에 공책 검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칸에 맞춰 반듯하게 글씨를 써 왔다.
"응? 이번에는 왜 이렇게 딱 맞게 써왔어? 갑갑하면 어떡하려고?"
"공평하게 하려구요."
"그, 그래."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왠지 씁쓸하기도 했다.
교사가 줄에서 튀어 나가지 마, 칸 안으로 들어와, 하는 말은 글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그 학생은 칸에 갇혀 갑갑해하는 글자에 대해서가 아니라 현실에 갇힌 갑갑한 자기 삶에 대해서 말한 걸 수도 있겠다.
나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영혼을 붙잡아 현실에 붙들어 매는 직업을 가지게 된 건 아닐까? 그리고 방금 또 하나의 자유로운 영혼을 틀 속에 가둬버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