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은 <무시무시한 숙제>이다.
< 무시무시한 숙제>
회계학 수업을 함께 수강하던 모든 학생들은 그 일만큼은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지아 주립대학교 교수인 노먼 드레설 박사가 긴 학기말 숙제를 내주면서 필수사항들을 딱 부러지는 말투로 요약했을 땐, 정말 무시무시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며 교수가 한 말은 바로 이 말이었다.
"물론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적절'해야 하고, 참고문헌 목록과 각주도 반드시 '정확'해야 합니다."
교실은 온통 공포 분위기로 짓눌리는 듯했다. 종이 울리고 우리반 학생들이 시큰둥해서 투덜거리며 줄지어 교실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문득 예전의 어느 수업이 떠올랐다.
포사이스 카운티 고등학교 시절, 끔찍했던 미세스 쿠츠 선생님의 수업이었다. 만약 극도로 세밀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명예의 전당이 존재한다면 아마도 쿠츠 선생님이야말로 그곳에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될 사람이었다. 쿠츠 선생님이 내 영어 숙제장 여백에 밝은 파란색 잉크로 문법상의 실수들을 또박또박 적어 놓았던 필체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언젠가는 여기서 배운 것들이 유용하게 쓰이리라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쿠츠 선생님은 종종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의 말을 믿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영어선생님은 영작문의 기본을 꼼꼼하게 가르치는 일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적절한 참고문헌을 쓰고 주석을 달아 작성하는 숙제의 복잡한 과정을 완전히 파악하도록 하겠다는 선생님의 결심엔 전혀 동요가 없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항의를 하면, 쿠츠 선생님의 검은 눈이 번뜩였다.
"현실이 내가 지금 내주는 숙제보다 더 많은 걸 여러분에게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날이 올 거예요. 하지만 이것이 그 날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그 때를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사실 이제까지 쿠츠 선생님의 숙제보다 더 어려운 건 없었다. 드레설 교수가 요구하는 것도 쿠츠 선생님의 숙제보다는 쉬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겁이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드레설 교수는 학점을 잘 안 주고, 특히 A학점을 받을 만한 학생에게 C학점을 주기를 유난히 즐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나는 지금까지 그 어떤 과제보다 더 열심히 학기말 숙제를 준비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드레설 교수가 우리에게 숙제를 되돌려 주는 날, 실망한 학생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 때문에 강의실은 마치 병원 환자실 같았다. 교수는 아무 말 없이 내 숙제를 책상에 툭 놓았다. 충격 받을 일을 단단히 각오하며 눈을 꼭 감았다가 뜨고는 숙제를 살짝 들춰 봤는데, "A"라고 쓴 점수가 종이 위에서 쑥 튀어 나오는 게 아닌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아 허리를 굽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점수 밑에 드레설 교수가 짤막하게 메모를 해둔 것이 보였다.
"수업 후 내게 올 것."
다른 학생들이 불평을 하며 교실을 나가자, 나는 바짝 긴장해서 교수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학생, 학생의 학기말 숙제는 이제까지 내가 본 3학년 회계학과 학생이 작성한 숙제중에서 가장 잘 된 것들에 속해요. 이 숙제가 내게 뭘 말해 줬는지 아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학생이 과거 어느 땐가 아주 유능한 선생님께 영어를 배웠구나 하는 사실을 알려 줬죠. 만약 그 분이 아직까지 살아 계신다면, 찾아 뵙고 감사의 표시를 하세요. 그럼, 잘 가요!"
교수는 교과서를 탁 덮어 쥐고는 벌떡 일어나 교실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입이 딱 벌어졌다.마음속으로 드레설 교수의 말이 맞다고 느꼈다. "A"는 상당 부분이 쿠츠 선생님 덕이었다. 쿠츠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한다는 걸 알었지만, 예외라고는 전혀 없고 딱딱했던 그분의 수업 분위기가 떠올라 나는 여전히 두려웠다.
그 날 저녁, 마침내 용기를 내어 나는 쿠츠 선생님의 수수한 집 현관문 앞에 섰다. 너무 떨렸다. 하지만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으로 나온 여인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교실에서의 쿠츠 선생님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목욕용 실내복 차림의 선생님은 창백한 얼굴에 이마를 약간 찌푸리고 있었다.
"들어가도 될까요?"
내가 묻자 쿠츠 선생님은 기침을 하면서 마지못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가을 내내 아팠어. 폐렴으로 고생하다 겨우 낫는 중이지."
선생님은 갈대피리같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의자에 털석 기대 앉은 쿠츠 선생님은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선생님 가까이에 있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학기말 숙제를 선생님 손에 내밀었다. 쿠츠 선생님이 그걸 흘긋 보고는 의아한 눈으로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저희 회계학 교수님께서 제 숙제가, 저... 선생님 같은 분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 왔습니다. 저를 훌륭하게 가르쳐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했다.돌연 쿠츠 선생님이 울기 시작했다.
"내게 감사하다고 말한 사람은 학생이 처음이야."
선생님은 흐느끼며 말을 이었다.
"금년은 너무나 힘든 한해였는데, 학생이 찾아와 준 게 여태까지 복용한 모든 약 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구만. 하나님께서 학생과 늘 함께 하시기를 바라네!"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의자에서 부드럽게 일으켜 세우고, 두 팔로 꼭 껴안아 주었다. 우리 두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찾아와 줘서 정말 기뻐." 선생님이 재차 말했다.
"저도요!" 내가 대답했다.
쿠츠 선생님은 정말 명예의 전당으로 모셔야 마땅한 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높은 차원의 명예의 전당으로 말이다. 그렇게 모시는 것이 언제나 넉넉하게 학생들에게 베풀었고,그래서 모든 학생들이 성공하도록 만들어 준 선생님을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쿠츠 선생님의 사랑이 가득한 포옹을 받으면서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선생님이 그렇게도 지치지 않고 물 위에 빵 조각들을 던졌던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제야 그 보상을 받았다는 걸 말이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구에게나 감사를 표현하는 일을 결코 꺼리지 않게 되었다.
교직 생활의 절반을 나는 쿠츠 선생님과 같이 수업했다. 아이들이 지금은 싫어하더라도 언젠가는 내 수업의 중요성을 알아주리라 확신했다. 그 결과 아이들은 고등학교 가서 이런 쪽지를 보냈다.
인용한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 "선생님이 그렇게도 지치지 않고 물 위에 빵 조각들을 던졌던 것"은 한 미치광이의 이야기이다. 바닷가에 사는 미치광이가 매일 빵조각을 바다에 던지는 게 일이었는데 사람들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 어느날 폭풍우에 왕자님이 탄 배가 난파했는데, 난데없이 빵조각이 떠내려와 왕자와 일행은 그걸 먹고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왕자는 빵의 주인을 찾아내어 그 미치광이에게 보답을 했다. 쿠츠 선생님의 일이 미친 짓에 가깝다는 뜻이다.
내가 한 일도 어린 아이들의 눈에는 병신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가끔 이렇게도 말했다.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알아요?"
"몰라?"
"정수기래요."
"왜?"
"깐깐해서요."
웅진코웨이 광고를 알아야 이해가 되는 별명이다.
하지만 교직생활의 중반을 넘기면서 "교사리더십상담대화"를 익힌 뒤로는 내가 하고 싶은 수업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요즘엔 교원평가에 적히는 서술형 응답도 달라졌다.("교사리더십상담대화"에 대해선 링크 참조)
학생반응1. 1학년 땐 몰랐는데 2학년 이후로 점점 친근해지시더니 재밌고 독특하게 수업을 하신다
학생반응2. 중학교1학년때만 해도 선생님과 이렇게 친해질줄 몰랐어요. 너무 감사해요. 훈민정음!!! 집에가서 복습하고 또 복습할게요.
--> 수업 안 들어가는 1학년 때에는 무섭고 마주치기도 싫었는데, 아이들이 수업을 하면서 점점 친근해진다. 수업은 좋지만 인간적으로 다가가기는 어려운 교사라든가, 사람으로는 좋아하는데 수업하면 싫은 교사가 되지 않는다. 수업을 하면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말법을 배운 덕분이다.
학생반응3. 미래까지 보장해 주는 수업을 듣는 것 같다 매우 도움된다
학생반응4. 너무 재밌으시고 진짜 삶에서 도움이 되는것들을 가르쳐주시고 국어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엄청 잘해주시고 귀찮을텐데도 학생들이 이런저런 대회를 많이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 주십니다. 진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을 알려주시고 학생 한명한명을 소증히 대해주시고..인생 최고의 선생님입니다. 평생 국어수업은 중수쌤한테 듣고싶어요.
--> 내 예전 방식의 교육이 '배울 당시에는 모르지만 나중에 가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되던' 것에 비해, 이제는 내가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려는 의도 그대로가 전달된다. 이것 역시 '본심'을 표현하는 말법을 배운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