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직원을 권고사직하게 되기까지...
어느 날 밤 10시. 슬랙에서 B님으로부터의 다급한 메시지가 날아온 것을 확인했다.
"A님이 저에게 죽음을 암시하는 DM을 보냈어요. 어떻게 하면 좋죠? 뭐라고 대응해야 할까요?"
메시지를 받는 순간 드디어 터질 것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이슈와 관련된 사람들을 소집해서 슬랙에 비밀 채널을 만들었다. 조금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역시나 채널에 소집된 사람들의 반응도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발생했구나 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번 상황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처음 시작은 약 2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HRBP 역할을 하고 있는 조직의 리더가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 왔다.
"주말 동안 구성원 한 명이 자살시도를 했었습니다. 벌써 사흘째 죽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나고 있다는데 회사 차원에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자살시도라니!!
충격적인 단어를 접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순간도 잠시. 바로 이 건에 대해서 나의 직속 상사와 이야기를 하고 긴급(?)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해당 조직장에게 연락해서 현재의 자세한 상황을 확인하고 연결 가능한 병원 및 상담소를 찾아서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자살시도를 했던 직원 A는 10여 년 전부터 가족 내부의 불행한 상황으로 인해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평소 A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동료 C는 어느 날 A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게 많이 우울하고 좋지 않아 보이는 것을 느끼고 금요일 저녁 퇴근 후에 A에게 전화를 했다. 그 통화에서 A는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끈으로 매듭을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전해왔다. C는 당장에 혼자 살고 있는 A의 집으로 향했고 A를 설득하여 또 다른 동료 B와 A의 팀장에게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A의 주변 동료 몇몇은 그렇게 불안한 상황에서 A의 죽음을 막기 위해 함께 응급실을 방문하고, 대학병원을 방문하여 정신과를 예약했으며 별도의 숙소를 잡아서 주말 내내 함께 밤을 보내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A의 우울감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이 소식이 HR 부서에까지 전해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HRBP인 나를 포함한 HR 부서, 그리고 A의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주변 가까운 동료 및 소속 조직장은 두 달 가까이 마음을 졸이며 그를 지켜보았다. 그 사이에 여러 가지 회사와 동료들의 노력이 있었다.
- 회사에서 평소에 제공하던 직원상담(EAP) 횟수를 늘려서 A에게 제공하기
- EAP 외에 긴급대응을 중심으로 하는 별도의 상담소 연결하기
- 병원 및 상담소에 A가 지속적으로 갈 수 있도록 동료가 동행하기
- 주말에 A가 우울감이 심해지지 않도록 케어링팀을 조직하여 꾸준히 연락하며 안부를 묻기
- 조직장 및 HRBP와 주기적인 면담을 통한 상황 체크
- 병가 및 휴직 제안 (병가 및 휴직 기간 동안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비용 지원 포함, 하지만 A가 휴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살 시도 및 자살 위험성이 있는 직원에게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지 회사와 연계된 상담센터의 가이드를 받으며 다각도의 개입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A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달 동안 이런 상황에 지속적으로 신경을 쓰고 불안감에 노출된 주변 동료들이 조금씩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A와 가장 가까운 동료인 C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다가, 어느 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우측 하반신 통증으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돼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신체적인 이상은 검사를 통해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C가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병원에서 설명하자 전환장애(심리적인 원인에 의해 주로 운동이나 감각기관에 이상증세 및 결함이 나타나는 질환)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듣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신적인 피로감으로 동료들이 하나둘씩 심리상담소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A는 이런 주변 동료들의 힘든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난스럽게 느껴지는 말투로 SNS 등에 죽음을 언급하기도 하고 동료와 이야기를 하다가 농담처럼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등 슬슬 주변 동료들을 지치게 만드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단순한 농담이었을지 도움을 바라는 마음이 숨겨져 있는 말이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주변 동료들이 느끼기에는 A가 도움을 요청한다기보다는 너무 가볍게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A는 휴가가 있던 어느 평일 밤 10시가 가까운 야심한 시각에 평소 개인적인 연락은 하지 않던 다른 동료에게 갑작스럽게 DM으로 너무 불행하고 외로워서 죽고 싶다는 내용을 보냈고 개인 SNS에도 죽고 싶다는 문장을 등록했다.
회사에서는 도저히 이런 상황을 두고 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주변 동료들에게 미치는 여파와 더 이상 정상적인 근무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직장과 협의하여 A에게 치료를 위한 위로금과 함께 퇴사를 권했다. A는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조직장이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동료로서 함께 할 수 없으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나눈 끝에 퇴사 권고를 받아들였다.
A가 퇴사 한 이후에 같은 팀의 동료들은 심리상담을 받거나 휴직을 하는 등 동료들 본인의 치료를 위한 시간과 노력을 다시 투자해야만 했다. 이미 A를 케어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함께 느끼게 된 우울감이 팀 전체에 심각하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2개월 간의 이 일을 경험하면서 조직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구성원들이 편하게 자신의 상황이나 상태를 드러내고 주변 동료들에게 위로받을 수 있는 그런 조직을 바랐었는데 이번 일로 인해서 개인의 우울감이 조직의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항상 '심리적 안전감'을 강조하고 개인의 취약점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던 조직장은 과연 '심리적 안전감'이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조직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심리적 안전감'은 개인의 정서적인 불안정을 그대로 드러내자는 의미가 아니라, 업무상 어떤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공격받거나 비난받지 않을 거라는 전제가 있는 환경, 자신의 소신을 밝혀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따뜻하고 동료를 서로 챙겨주는 환경도 좋지만 너무 감정이나 배려에 집중하기보다는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나 역시 처음에 이 조직의 HRBP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인간적으로 정이 많고 구성원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려 애쓰는 조직장의 모습과 서로를 챙겨주는 동료애가 참 좋아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정서적인 불안정성과 취약점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이런 모습을 주변에서 모두 받아주고 돌봐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오히려 이런 분위기의 부작용이라고 느껴졌다. 개개인을 배려하고 케어하는 따뜻하고 정이 많은 조직, 그러면서도 구성원의 전체적인 이익을 위한 결정과 행동이 공존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렇듯 많은 정서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감정적인 동요 없이 이 사건을 바라보고 개입하여 일을 진행시켰던 나는 이제 직원들을 함께 하는 동료가 아니라 단순한 조직을 이루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감정의 동요나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꾹꾹 눌러서 나조차도 느끼고 있지 못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