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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숲 Jun 02. 2024

숲으로

다시 봄이 왔다. 정신 못차리게 밝은 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들이쳤다. 작은 촛불들이 수만 개 켜진 듯, 마른 가지 끝마다 연두빛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숲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물들었다.


숲은 장마가 그치고 다음 해가 되었지만 뽀구리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사람들이 뽀구리를 만나러 자꾸 산엘 왔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도 숲은 훼손되지 않았다.


아주 귀한 초대를 받은 듯, 오는 사람마다 신중하고 조심했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서로를 환대하며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주차장은 필요없었다. 사람들은 건강한 땀을 흘리며 느리고 꾸준히 걸음을 옮겨 숲에 다달았다.


날이 좋은 아침이면 뽀구리는 단장을 시작했다. 물로 몸을 촉촉하게 적시고 연두빛깔 새싹을 하나 골라 등 위에 올려두거나 흙으로 눈썹을 짙게 그렸다. 그러고는 방문객들이 자신을 잘 찾을 수 있는 바위 위에 앉았다. 뽀구리는 사진을 의식하며 눈길로는 연못 올챙이 동생들을 바라봤다. 버드나무 연못에는 올챙이 동생들이 잔뜩 태어났다. 연못이 새카매 보일 정도였다. 자신이 들어가면 자리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방긋 웃음이 나왔다.


“저기, 뽀고리다!”


사람들은 뽀구리 사진을 찍었다. 뽀구리는 사진에 자신의 모습이 잘 담기도록 정지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다리가 저리면 찰칵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재빠르게 자세를 바꿨다.


뽀구리 사진들은 날마다 인터넷 상에 올라왔는데 모두 저마다 색달랐다. #뽀고리최근사진 해시태그가 같이 달리더니 어느날부터는 날짜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뽀고리240531 이런 식이었다. 새로운 사진들은 ‘좋아요’ 수가 꾸준히 많았고 조회수 역시 줄어들지 않았다.


숲 친구들의 막걸리 모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어느날 두털이는 <숲으로> 막걸리를 또 가지고 왔다.

알코올 함량은 12%라고 했다. 가볍지 않은 꽤 높은 도수다. 잔에 숲으로를 따르니 뽀얗고 진한 막걸리가 채워졌다.


한모금 마시더니 모두가 입을 모아 외쳤다!


“맛있어!”

새콤달콤 과실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두털아, 정말로 과일을 넣은 게 아니라고?”

“포도 껍질을 쪽쪽 빨 때의 그 달큰하고 새큼한 맛이야.”

“그 맛 나도 알아! 손톱 밑이 까매질 정도로 쪽쪽 빠는 그 맛”

“파인애플? 사과? 레몬? 매실? 키위?”

“산뜻한데 또 걸죽해.”

“진한 막걸리야.”


두털이가 말했다.

“이 막걸리의 이름은 <숲으로>야. 아름다운 숲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 숲은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집이 되어줄 줄 알았는데, 이게 간절히 바라고 지키고 이루어야 하는 일인지 이제 알았어.”

지난 여름을 떠올리자 몸서리가 쳐졌다.


“이 막걸리는 너희들 모두가 만든 거야. 얘들아, 이 막걸리의 광고 모델이 되어줄래?”


두털이는 최고의 사진 작가를 의뢰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빛이 많은 날 친구들은 모두 모델로 나섰다. 각자 <숲으로>를 들고 깊은 숲속으로 걸어가는 컨셉이다. 두털이는 뽀구리를 정 중앙으로 오게했다. 제일 유명한 뽀구리의 덕을 좀 보고 싶었다.


촬영은 금방 끝났다.


숲으로의 첫 출시일, 두근두근 떨림과 기대가 함께 찾아왔다.


맛있는 막걸리 숲으로12! 뽀구리 덕분에 숲으로는 출시하자마자 큰 관심을 끌었다. 숲으로는 생산되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그 다음은 그 맛 때문에 인기가 이어졌다. 맛을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상쾌하고 신선한 숲내음을 가득 담은 막걸리, 숲으로의 맛에 매료된 것이다. 막걸리를 마시며 사람들은 다시한번 지난 여름의 끔찍했던 장마를 기억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아름다운 숲속에서 숲으로를 마시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숲에간숲으로 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하루에도 수천 개가 올라왔다.


그러자 이번엔 #숲으로숲으로 해시태그가 유행했다. #숲으로숲으로 는 도시의 마른 땅에 초록을 심거나 작은 화분에 피어난 싹 사진들에 달렸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괴롭게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나뭇잎으로 조심스레 감싸 숲으로 돌려주는 사진에도 그 해시태그가 붙었다.


#숲으로숲으로 가 유행하면서, 내가 있는 이곳을, 마을을, 거리를, 도시를 숲으로 만드는 운동이 벌어졌다. 명품숲을 기획했던 시장이 깊은 반성의 기자회견을 열더니, 우리 도시를 숲으로 만드는 정책을 내놓았다. 시장의 지지도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숲 친구들의 숲은 도시 구석구석까지 손가락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람지는 더 멀리까지 달려나갈 수 있었다. 숲 친구들은 어디든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세계인들이 이 도시를 <명품숲>이라고 일컫기 시작한 것이다.


---


에필로그.


다다는 자주 두털이네로 찾아갔다. 두털이가 힘들어하면 옆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재잘재잘 말을 걸었다. 두털이는 일에 지쳤다가도 다다가 곁에 있어주면 언젠가지나 힘들이지 않고 일할 수 있었다. 다다랑 있으면 일도 놀이 같았다.


두털이는 계속 술을 빚어 마침내 숲으로12의 뒤를 이어 숲으로7을 개발했다. 숲으로7은 숲으로12에 비하면 훨씬 가볍고 산뜻한 상쾌한 막걸리였다.


람지는 그동안의 숲속 막걸리 모임 이야기를 모아 책을 냈다. 특히 막걸리와 함께하는 음식 이야기가 알찬 정보가 되어 책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잘 팔렸다.


온 세상에 숲이 많아진 어느날, 숲속 친구들은 나들이를 떠났다. 두털이는 그날만큼은 막걸리 빚기를 잊고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다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미가와 미다도 함께였다.


뽀구리는 숲으로 뿐 아니라 다른 광고 모델도 많이 하게 되었다. 미나가 뽀구리를 코칭해줬다.


“뽀구라! 다리를 베베 꼬고 얼굴 옆에 브이를 올려봐!”

“이렇게? 이렇게?”


뽀구리는 카메라 앞에서 포즈 잡는 게 정말 즐거웠다. 나중에 나온 사진들도 마음에 쏙 들었다.


마침 숲에 찾아온 동물학자 고박사가 이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참으로 평화로운 오후의 한때구나… 뽀고리가 지켜져서 정말 다행이야.”


동물학자는 연구실로 돌아가 컴퓨터 모니터로 사진을 띄웠다.

어라? 그런데 뽀고리 사진이 이상했다. 뽀고리 눈 위에 검은 반점이 없어진 것이다.


눈 위에 검은 반점이 없는 개구리는 뽀구리 종으로 개체가 매우 많은 흔한 종이었다.


“아니, 내가 잘못 봤단 말인가?”

뽀고리의 사진을 마구 검색해보던 고박사는 검은반점이 없는 뽀고리 사진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 개구리가… 뽀고리가 아니었다고…? 그 흔한 뽀구리였다고?”


고박사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이 사실을 밝혀야 하나…

고박사는 침묵하기로 했다. 뽀구리의 인기와 그로 인해 달라진 세상을 지키고 싶었다. 고박사는 그날 숲에서 찍은 사진을 인쇄해 남몰래 두털이에게 보냈다.


"두털씨, 숲으로12의 라이트 버전 숲으로7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궁금하군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혹시 이 사진이 필요할까 해서 보내드립니다. 그저 편하게 이용해주세요. 허락받지 않고 찍은 사진은 용서해주시길. 평화가 깃든 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보고 지나갈 수 없었답니다."


사진을 받은 두털이는 이 사진이야말로 숲으로7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들 바람이 부는 듯한 가벼운 맛, 싱그러운 숲 내음이 느껴지는 듯 상쾌한 과실향, 친구들의 평화로운 우정... 두털이는 이 사진을 이용해 숲으로7 라벨을 디자인했다.


다다는 숲으로7을 마시며 괴테의 시 <용기>를 떠올렸다.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

맑은 물

그리고 친구들의 사랑

이것만 있다면

낙심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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