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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10분 동안

마루

2020.12.31.22:50~23:00

by 지숲

8살까지 살았던 집이 있다. 우리들은 그 집을 '서울집'이라고 부르는데, 서울집엔 거실이 없었다. 현관과 방, 주방과 화장실을 잇는 커다란 공간에는 마루가 깔려있었고 거길 우리는 '마루'라고 불렀다. 다음에 살게 된 집에는 마루가 없었다. 대신 '거실'이라는 게 생겼다. 거실. 이상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마루가 없는 집도 이상했다.

우리는 서울집 마루에서 온갖 걸 했다. 마루 한쪽 벽을 채운 벽장에 기어 올라갔다가 소파로 뛰어내리기도 하고, 마루 구석구석 남김없이 양초를 꼼꼼하게 칠하고 숨어 어른들이 미끄러질 때마다 낄낄대며 자지러지곤 했다. 화장실로 내려가는 난간에 고무줄을 묵고 월화수목금토일이며 동서남북을 했다.

그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다음다음에도 마루 있는 집에선 살지 못했다. 내 삶에 유일했던 마루처럼 서울집은 우리들에게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집이다. 지금 사는 '오란다'도, 전에 살던 '어기'도, 독립하고 처음으로 터잡았던 '로이'도 제각각 단 하나의 집이지만, 서울집은 집이라는 것의 원형의 기억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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