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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Feb 05. 2021

비타민으로 말하는 사랑

_ 결혼 7년 차, 30대 부부의 풍경


결혼 7년 차.

사이좋게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우리 부부의 풍경에는 서로에게 비타민이며 유산균이며 영양제를 챙겨주는 모습이 있다. 이제는 뭘 해도 피곤함을 느끼는 쇠한 기력에 생명 유지에 대한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함께 있는 시간엔 나만 먹지 않고 상대도 꼭 챙긴다. 너도 함께 살자는 전우애처럼. 나란히 영양제를 하나씩 챙겨 먹고 물을 나눠 마신 후 제 할 일을 한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무언가를 함께 하기도 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연애 시절이나 신혼 때를 생각하면 사뭇 달라진 풍경이긴 하다. 전과 다른 풍경이 되었어도 우리는 함께 있다. 서로가 그 자리에 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이 있어서 좋네.’라고 생각하면서.


사랑의 언어에서 ‘함께하는 시간’의 비율이 지대했던 나는 ‘함께함’에 시간과 마음을 쏟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서로의 모든 시간을 빠짐없이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오래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오롯이 달기만 한 마음. 이유 없어도 함께 있으면 그냥 좋았다. 이따금씩 신랑은 예전 내 모습을 떠올리며 “전엔 고목나무 매미처럼 나한테 찰싹 붙어 있더니 결혼하고는 안 그러네.” 하는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많은 이들이 서로에게 평생을 약속하고 얻게 된 ‘함께’라는 시간 안에서 달기만 했던 마음이 쌉싸름하게 변하는걸 경험하기도 한다. 이유 없어도 충분하던 날들이 이제는 서로에게서 어떤 이유를 찾는 듯한 눈길에 서운함이 서리는 날이 되기도 하는 거다. 그건 퍽 괴로운 일이다. 슬프게도 소수를 제외한 세상의 거의 모든 부부가 빈틈없던 세계가 결핍을 끌어안는 자리로 변하기도 한다는걸 알게된다. 우리도 그 변화를 마주하면서 때로는 서로에게 이유를 따져 묻기도 하고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지척에 앉아 있는데도 도무지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과 숨도 못 쉬게 들어차는 공허를 경험하기도 했다. 역시, 그건 괴로운 일이 맞았다.     


가깝기도 했다가 멀어지기도 하는 관계의 거리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시간은 쌓여갔다. 우리가 서로를 느끼는 거리와는 별개로 삶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다. 일상의 여러 사건들을 지나면서 우린 그때마다 경험과 감정들을 공유했고 한 번씩 서로에 대해, 우리에 대해, 부부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딱히 무엇을 해보겠다고 애를 쓴 건 아니었다. 그저 가까웠다 멀어지는 거리를 반복하면서도 서로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눈 대화가 하나씩, 마음이 하나씩 벌어진 거리 사이를 채워갔다.


차곡차곡, 벌어진 거리가 서서히 채워지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를 이해해갔다. 어떤 건 정말 이해가 되기도 하고 어떤 건 이해하기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서로가 늘 그 자리에 있어 주어서 그런 마음도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관계의 거리가 불안정한데 같은 자리에 머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우리의 경우는 신앙에 바탕을 둔 믿음과 동의가 있었다. 멀고 가까운 거리를 반복하며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깊어져도 우리가 그분 앞에 함께 드린 고백 위에 우리 관계의 뿌리가 있고 그 땅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분이 우리를 만나게 하셨고 하나 되게 하셨다는 데에 의심 없는 동의가 있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겠지만 서로를 향한 어떤 믿음과 동의 안에서 또 많은 부부들이 전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우리가 되어 관계의 회복을 경험하게 된다. 분명, 그건 감사한 일이다.  


새로운 우리로 회복을 경험한 후에 나에게 ‘함께함’의 의미와 정의는 조금 달라졌다. 전보다 유연해졌고 넓어졌다. 같은 공간에서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비타민을 챙겨주고 그걸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먹으면서 나이와 건강을 걱정하는 농담 속에 우리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안다. 상대가 이해되는 것에 감사하고 이해하기로 먹은 마음을 쉬이 포기하지 않는다.


어지러이 요동치던 내 감정에도 그 자리를 지켜 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고백의 뿌리가 되시고 의심 없는 동의가 되어 주신 미쁘신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 감사와 고마움 위에 지금껏 공유한 많은 시간과 마음을 거름 삼아 지금의 우리가 있다. 서로가 전처럼 그 자리에 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이 있어서 좋네’라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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