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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Jan 09. 2022

서울랜드에서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다가

“우리 오늘 서울랜드 갈까? 그때 받은 할인권 31일까지잖아.”


오랜만에 신랑이 연차를 쓰고 쉬게 된 12월 23일 목요일,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이었다. 신랑이 내게 연차를 쓸 거라고 미리 말을 했다는데 나는 도통 기억이 안 나서(허허) 완벽히 무계획인 상태였다. 뭐, 무계획이었지만 신랑과 함께 하는 평일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충분히 흡족했는데 신랑은 오랜만의 연차를 알차게 쓸 나름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나 보다.


평일의 놀이공원이라니 생각도 못한 전개였으나 오히려 좋아. 그렇게 우리는 평일의 서울랜드로 향했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코앞이었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서울랜드는 주차장부터 한가로웠다. 코로나 때문에 실내나 사람 많은 곳으로의 외출은 항상 피해왔는데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의 소풍 같은 나들이인지, 주차장에서부터 코에 바람이 흥하고 들어차는 것이 묘하게 설렜다.


입장하고 보니 역시나 놀이공원 안도 꽤나 한가로웠다. 처음 아이들과 서울랜드를 왔을 때는 주말이라 사람이 정말 복작복작했었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여유롭기가 동네 놀이터 수준이었다. 우리는 놀이공원을 전세 낸 듯 기다림 없이 바로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다. 이런 걸 꿀이라고 하나. 이 놀이기구에서 다음 놀이기구로, 우리는 도장깨기 하듯 놀이공원을 훑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건 두 번 세 번씩 타는 여유까지 챙겨가며. 차례차례 놀이기구를 섭렵해가는 첫째는 무척이나 신나 보였다. 둘째는 아직 키가 작아서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한정적이었지만 놀이공원 특유의 분위기와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 보였다.


키가 100센티가 넘은 첫째는 이제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혼자 탈 수 있었다. 아이들만 타는 놀이기구 앞에는 하나같이 아이의 단독 탑승을 응원하며 울타리 밖에서 열심히 손을 흔들고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주는 부모들이 있었다. 나도 울타리에 바짝 붙어 서서 혼자 놀이기구에 탑승한 첫째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이야 우리 ** 멋지다, 재미있겠다, 엄마 여기 있을게, 잘 타고 와!” 하며 손을 흔들었다. 혼자 놀이기구를 타는 설렘과 약간의 무서움이 뒤섞인 표정의 첫째는 출발 직전까지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운행이 시작되고 나서는 더 이상 나를 보지 않고 즐거워하며 놀이기구를 탔다.  


또래보다 덩치가 한참이나 작아서 마냥 어린애 같기만 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놀이기구를 타며 즐기는 첫째를 보다가. 쪼르륵 놀이기구 앞 울타리에 줄지어 아이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는 엄마 아빠들을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아이와 한 몸이었다가 아이와 한 몸처럼 살다가 어디든 손잡고 함께 걷다가 언젠가는 그 손을 놓고 서로를 향한 믿음으로 격려하며 각자의 삶으로 걸어가는구나. 그동안 수 없이 아이와 가까웠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맞는 적당한 거리와 온도를 찾아가겠지. 서로 너무 갑갑하지도 또 너무 외롭지도 않을 그 어디쯤을.


아마 아이가 자랄수록, 나는 지금 이 모습이어야 할 거다. 아이가 어릴 땐 같이 놀이기구를 타다가 아이가 크고 나면 이제는 울타리 밖으로 나와 혼자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아이가 혼자서 제 인생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아이를 향한 믿음으로 촘촘하고 곱게 감은 손을 흔들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일에 성실하게 마음을 쓰는 거다. 내 아이의 일이라 자꾸만 마음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걱정들을 닦아내고 먼지처럼 쌓이는 조급함을 털어내면서. “잘하고 있어, 고생이 많지, 너를 믿어. 엄마 아빠가 네 옆에 있을게.”라는 진심을 담아서


작은 제 키보다 마음과 생각이 부쩍 더 커버린 첫째를 보고 있으면 이제 나도 조금씩 아이와 몇 발자국 떨어진 마음의 거리를 찾기 시작할 때가 가까웠음을 느낀다. 서툴고 겁이 많은 엄마는 아이가 일곱 살이 되어서야 겨우 손 잡고 함께 걷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꾸만 앞서는 걱정과 불안보다, 아이를 향한 믿음으로 내 마음을 더 촘촘히 엮어둬야 할 텐데. 곧 혼자 걷기를 시작할 아이보다 더 용기가 필요한 쪽은 확실히 내 쪽이 아닌가 싶다.




혼자서도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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