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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Dec 13. 2021

사소하고 다정한 순간

사소하고 다정한 순간


하원길에 보니 아파트 단지 앞에 치킨 트럭이 와있었다. 종종 단지 앞에 푸드트럭이 오긴 했지만 사람들이 삼삼오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건 처음이라 궁금해 가까이 가 살펴보니 원래 가격보다 많이 할인된 가격에 치킨을 팔고 있었다. 자주 시켜먹던 브랜드였고 꽤 저렴한 가격이라 아이들과 치킨 대열에 합류해 기다렸다가 치킨을 샀다. 마치 득템 한 기분으로 치킨을 들고 집에 와서 간단히 씻고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았다.


갓 튀겨져 나온 달콤한 양념치킨이 아이들 입맛에도 맞았는지 첫째 둘째 모두 “엄마 맛있어.”를 연발하며 치킨을 먹었다. 우리 집 꼬마들은 둘 다 입이 많이 짧아서 밥 먹을 때마다 한 수저만 더 먹어라로 늘 옥신각신 하는 게 일상인데 맛있다며 먹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있으니 그렇게 기특하고 예쁠 수가 없었다. 연신 입을 오물거리며 치킨을 먹는 아이들 얼굴에 부지런히 치킨 살을 발라 아이들 접시에 번갈아 올려주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던 식의 옛날 말들이 정말 맞네를 다시 한번 느끼며 나는 연신 치킨 살을 발랐다.


신나게 바른 치킨 살을 부지런히 아이들 접시 위에 올려주다가 문득, 어쩌면 부모로 산다는 건 이렇게 사소하고 다정한 순간들로 채워지는 일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드높은 헌신과 수고, 성숙하고 위대한 사랑이 아니어도 그저 이런 사소하고 다정한 순간들을 하나씩 하나씩 마음에 쌓으며 조금씩 만들어져 가는 모습이겠다고. 치킨을 바르고 있는 내 모습이 어쩐지 자식들 수저 위에 생선살을 발라 올려주던 우리네 부모님 모습과 어렴풋이 닮아 보여서 픽 하고 웃음이 났다.  


지난 6년동아 아이를 낳고 키워오면서 나는 엄마가 되기엔 늘 어딘가 모성애가 조금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까지 그런 내 모습을 수 없이 마주해왔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에게도 넉넉하지 못한 마음이라니, 그런 모습을 수시로 마주 하는 건 퍽 괴로운 일이었다.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아무리 해봐도 좋은 엄마는 점점 더 모르겠고 그냥 나다운 엄마가 되는 일도 내게는 요원하게 여겨질 때가 많았다.


엄마로 사는 것에 대해, 나의 모남과 부족함에 대해 수 없이 고민하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저울질 해오던 내가, 아이들에게 치킨 살을 발라주다가 별안간 부모가 되는 일이 어쩌면 그리 위대하고 어려운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니. 나도 모를 갑작스러운 의식의 흐름에 허허 웃음이 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평생 이렇게 사소하고 다정하게 살아야겠다. 입 짧은 내 아이들이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에 신이나 부지런히 치킨을 발라주면서. 잠깐 나선 산책길에도 혹시 아이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다 챙겨 담은 도라에몽 주머니 같은 가방을 들쳐 메고 다니면서. 몸에 열이 많아 자꾸만 창가로 굴러가 자는 아이가 생각나 잠결에도 몸을 일으켜 아이를 안아 다시 잠자리를 살피는 비몽사몽 한 밤들을 보내면서. 앞뒤 없이 떼쓰며 사정없이 고집부리는 아이가 밉고 괘씸해서 혼을 냈다가도 “아까는 엄마가 화내서 미안해, 엄마가 너무 속상해서 그랬어. 앞으로는 엄마도 화 안 내고 네 마음을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할게.”라고 아이에게 부족함과 서툰 마음을 담은 사과하기를 미루지 않으면서. 모두가 자신의 일과 삶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아침, 느릿느릿 아이와 손 잡고 동네길을 걸으며 작은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이 순간이, 지금은 다 느끼지 못해도 언젠가 돌아보면 내 인생의 어느 날보다 따뜻하고 소중한 시간으로 남을 거라는 걸 기억하면서.


오래도록 이렇게, 사소하고 다정한 순간들을 인생을 빛내는 별처럼 마음에 띄우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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