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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Dec 01. 2021

2021년을 살아 낸 기록, 그런데도 그저 하고 싶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관리 카드를 받으러 갔다가 서명을 하며 날짜를 적으려고 보니 오늘이 12월 1일이란다. 와, 벌써 12월 이라니. 아마 다들 비슷한 마음이겠지. 세상모르게 크고 있는 우리 집 두 꼬맹이들 빼고 1년 내내 회사 일에 가정에 마음 쓰며 수고한 신랑도, 코로나로 일 년의 절반 넘게 아이 둘 가정 보육하며 전쟁 같은 사랑으로 지지고 볶으며 지내온 나도 비슷한 마음일 거다. 와, 벌써 12월 이라니. 2021년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2021년은 코로나로 세계 역사와 내 개인사에도 길이 남을 만큼 걱정스럽고 고단한 1년을 보내고 맞이한 새해였다. 그래서 살면서 가장 새해 느낌이 안나는 새해이기도 했다. 그런 2021년을 시작하며 내가 썼던 글이 있었다. ‘사람이 계획하고 수고한 것이 쉬이 허물어지는 한 해를 보내고 나니 일 년을 계획하고 기대한다는 것이 어쩐지 막연하게 느껴진다.’ 고 적었던 글. 그래, 올해를 맞이하며 드는 마음은 정말 그런 막연함이었는데. 올해의 마지막이 왔음을 느끼며 문득 돌아보니, 올해는 계획 없이 했던 도전들로 생각보다 많은 경험을 한 1년이 됐다. 시작할 무렵엔 막연함으로 시작한 한 해가 마무리할 무렵엔 신기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 됐다니 묘했다.


그 시작은 브런치 작가가 된 일이었다. 18년부터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그림을 그렸었는데 19년에 둘째가 태어나고 신랑이 아이패드를 선물해 준 덕분에 그림을 더 자주 그리게 됐다. 그렇게 그린 그림일기를 인스타 계정에 열심히 업로드하다가 문득 ‘브런치 작가 도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감생심이지만 뭐 잘되면 감사하고 아니면 말지 스탠스로 그림일기와 글을 써 작가 지원을 했는데 웬걸, 단번에 합격이 된 거다. 출간 내역, 활동 내역을 쓰는 란에 한 줄도 이렇다 하게 쓸만한 것이 없어서 스스로 ‘야 이게 되겠냐.’ 싶었는데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 수년만에 육성으로 “왘!?!!!!!!” 하는 소리를 내뱉는 경험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기쁜 경험이었다.


21년 1월, 브런치 작가 도전과 합격으로 시작된 꾸준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올 한 해 내 마음과 일상을 엮어 준 고운 실타래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전업주부로 아이 둘과 지지고 볶으며 전쟁 같은 사랑을 하고 있지만 그렇게만 보이는 시간들 틈에서 쓰고 그리는 일이 나를 얼마나 단단하게 메워주고 정성스럽게 여며주었는지 모른다. 가끔씩 몸도 마음도 다 흩어져버릴 것 같은 날에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면서 쏟아진 마음속에 버틸 자리를 만들 수 있었고 무겁게 쌓인 생각들 사이를 비집으며 숨을 쉴 수 있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내 글이 다음과 브런치 메인에 여러 번 올라 한 해 동안 11만 명에게 읽히는, 소위 ‘브런치 뽕’을 맞는 기분 좋은 경험도 해봤다. 그 경험으로 마음 담은 글을 정직하고 따뜻하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에 더 깊어지게 됐다. 좋은 글을 찾아 많이 읽고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글을 대해야지 하는 다짐. 학생 때도 몇 번 불태워진 적 없던 배움과 성장의 열망 같은 것들이 생겨난 거다. 그렇게 시작된 쓰기와 그리기의 열망으로 나는 올해 나도 모르게 대학 졸업 이후 가장 많은 책을 읽은 한 해를 보냈다. 하루를 보내다 여유가 생기면 핸드폰에, 아이패드에 글을 쓰고 또 쓰고 퇴고하며 쓰는 사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림일기도 계속 그려오다 9월쯤에는 갑자기 ‘카카오톡 이모티콘에도 도전해봤다. 준비되지 않고 잘할  같지 않으면 아예 시작도  하던 나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변화가 아닌가 싶다. 현재 상태는 3 제안 2 미승인 1 심사 중이다. 그저 취미로만 그림을 끄적이던 내가 이모티콘에도   도전해보자는 마음으로 그림 툴을 다루는 영상과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 공부를 하고 연습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올해가 그림을 가장 많이 연습하며 발전한  해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모티콘 고시 불릴 만큼 장벽이 높은 카카오톡 이모티콘에 승인되려면 앞으로  많이 연습해서 많이 제안해봐야겠지만  덕분에 연습을 많이 하며 기초를 조금 다지게   같다. 더불어 그림으로   있는 다양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것도 내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11월 30일, 바로 어제는 올 초 브런치에 발행했던 우리 집에 대한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송고했다. 그리고 글을 보내고 몇 시간 후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기자님, 오마이뉴스입니다. 기자님의 기사가 방금 채택되었습니다. 이 기사를 지인과 함께 나누세요~ ^^’ 나는 또 몇 달 만에 “왘!?!!!!!!”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 읽은 몇몇 작가님의 글에서 ‘오마이뉴스’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대체로 ‘작가의 수고의 결과물인 글에 대한 비용을 지불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내게 설렘과 궁금증을 일으켰다. 내 글도 원고가 되어 원고료를 받을 수 있을까? 내 글로 돈을 번다니. 와, 이건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뻤다. 내가 마음과 시간을 들여 쓴 글이 실제 경제 가치로 환산되어 내게 온다면 그건 정말 놀라운 경험일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보내게 됐는데 기사로 채택이 된 것이다. 지금 오마이뉴스 원고료 페이지에 가면 내 글이 기사가 되어 받은 원고료가 ‘15,000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내 글이 돈이 될 수 있다니. 내 글이 기사가 될 수 있다니. 내게는 이 일이 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어떤 위로 같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그림일기를 그리다 이모티콘에 도전하게 되고 내 글이 인터넷 뉴스에 기사가 되어 원고료를 받는 경험까지. 이 모든 일이 다 올해 경험한 일이다. 코로나로 두 아이 가정 보육한다고 지지고 볶으면서 내 체력과 인격의 한계를 수 없이 마주하며 나는 대체 뭘 제대로 하고 있나,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네, 하며 좌절하고 괴로워했던 많은 날들 속에서 살아낸 기록이 된 거다. 처음부터 계획한 일도 아니었고 어떤 포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디 보일만한 실력이 못 되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러니 딱히 자신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저 하고 싶어서. 누군가 보기엔 한참 모자란 재주여도 나는 이 일이 참 좋아서. 쓰고 그리는 동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그래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시작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올해 나를 가장 자라게 하고 지탱해 준 고마운 일이 되었다. 덕분에 올해를 보내면서 내게는 꿈이 하나 생겼다. 오래도록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이다. 그리고 제 몫의 멋진 일을 주세요!라는 기도제목도 생겼다. 30대 중반을 지나는 나이에 꿈이 있다 말하는 삶을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오래도록 이뤄가고 싶은 꿈을 가지게 됐으니 이만하면 올해는 꽤 괜찮은 한 해였다. 아니 충분히 감사한 한 해다. 살면서 가장 새해 느낌이 안나는 새해다, 무언가를 계획하고 기대를 말하려니 막연한 느낌이다 라고 기록하며 시작했던 2021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계획하지 않았고 기대하지 못했던 일들을 많이 경험하는 한 해가 되었다. 인생이 참 내가 사는 것 같은데 살다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다시 어린다.


관리사무소 서류에 사인하며 시작된 올해의 일들과 감사를 갈무리하며 21년 1월에 초에 썼던 글의 마지막 문단을 회고해본다. ‘돌아보면 처음부터 가야 할 인생의 방향을 알거나 정하고 걷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갈바를 알지 못했으나 진심으로 살아냈던 하루하루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지금까지 내 인생을 이끌어왔다. (중략) 이룬 것이 무엇인가 싶게 결과 없이 과정만 반복되는 듯한 일상을 살고 있으나 선한 마음으로 살아 내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면 그런 어제와 오늘, 내일이 쌓여 어느 순간 내 인생을 붙들고 가는 다정한 손길을 또 경험하게 될 테니. 그런 소망이 있어 참 감사한 삶이다.’ 막연함으로 시작했던 한해였는데 돌아보니 꼭 내가 썼던 글의 마지막처럼 이런 다정한 손길로 마무리되고 있다니. 올해도 감사한 삶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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