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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Oct 01. 2019

일을 왜 그렇게 해요

일곱 번째, 상사 이야기

앞선 ‘상사 이야기’에서 언급된 상사들의 경우 그들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의 문제도 있었기에 서로 맞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개인에 따라서 앞서 내가 지적한 상사의 문제점이 그다지 문제점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부터 언급될 상사 둘은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만났다면 헬 게이트가 열릴 상사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는 그 둘을 한 회사에서 모두 만나는 다이내믹한 경험을 했다.  

   



본가로 내려온 뒤 두 달 정도 휴식하다 다시 구직을 시작했다. 몇 군데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달력과 앨범 등을 만드는 어느 회사에 입사했다.     


과장 G는 그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 그는 일에 퍽 자신감 있어 보였는데, 그와 몇 달 일 하면서 그것이 ‘근자감’이라는 걸 깨달았다. 졸업앨범을 만드는 그 회사는 졸업식이 많은 2월이 다가오기 전 11월, 12월, 1월이 가장 바쁜 시기였는데, 나는 11월에 입사했다. 이 시기 직원들의 주 업무는 각 앨범 레이아웃에 아이들 별 사진을 넣는 작업이었고, 이 작업이 완료되면 공장에 전달한 뒤 완성되면 납품일에 맞추어 배송되었다.     




이 일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봐도 이 일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수백 개의 주문 건을 ‘납품일 순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일정이 꼬이지 않고 납품일에 맞추어 배송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갓 들어온 내가 봐도 알겠는데, 놀랍게도 과장 G는 납품일 정리 따윈 없이 그저 매일 발주서 하나씩 직원들에게 주고 그게 완료되면 또 하나 나누어 줄 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책상엔 늘 수백 개의 주문서가 쌓여 있었는데, 난 그걸 볼 때마다 속이 답답했다.     


그렇다 보니 입사 후 일주일 정도 있었는데도 납품 일정이 엉망이 된 게 보였다. 어떤 주문 건은 주문 들어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고 다음 주가 납품일인데 아직 작업이 시작도 안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주문자가 보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머리가 ‘띵’ 했다. ‘대체 일을 왜 이렇게 하는 거지?’ 싶었다. 시즌 때 매일 야근이라던데, 이런 식으로 해서 매일 야근했구나 싶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과장 G는 여전히 발주서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고 그걸 완료하고 과장 G를 찾아가면 다시 발주서 하나를 나누어 주었다. 어차피 사진만 다르지 다 같은 작업이었다. 작업에 대해 더 설명할 것도 없다면, 납품일 순으로 정리한 다음 일정량을 분담해 주는 편이 직원 입장에서도 작업 스케줄 짤 때 효율적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전 회사를 퇴사한 뒤, 앞으로 회사에선 조용히 묻혀서 지내야지라고 마음먹고 입사했기에 그의 방법을 따랐다. 그러다 과장 G가 납품일이 코 앞인 발주서를 발견해 다른 직원에게 바쁜 거라며 닦달하는 모습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는 내가 과장 G에게 납품일 정리를 해보겠다고 하면 본인의 업무에 참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언짢아할 줄 알았는데, 내가 정리해 보겠다고 하자 과장 G의 얼굴엔 조금 화색이 돌았다. 어찌 되었든 나는 나의 야근을 최대한 막기 위해 우선 1월 납품일인 발주서를 받아와 먼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다 보니 더 기가 막혔다. 아직 일정이 한 달 남은 게 먼저 작업되어 있었고 납품일이 촉박하게 남은 건 작업이 안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과장 G는 발주서를 직원에게 나누어 줄 때 순서를 생각하며 나누어 준 게 아니라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아마 이대로 진행했다간 일정이 늦어져 고객에게 욕을 배부르게 처먹을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과장 G에게 내가 1월 납품일 발주서를 정리할 테니 그동안 2월 발주서를 정리해 달라고 말하고는 1월 납품일인 주문 건의 진행 여부까지 체크해서 정리했다.     


그렇게 나는 미흡한 엑셀 실력으로 1월 납품일 주문 건 정리를 끝내고 과장 G에게 정리된 자료를 넘겨주며 1월 건 정리가 끝났으니, 직원들한테 고루 분배해서 작업하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옆자리서 일하던 동료 직원이 과장 G를 보며 내게 ‘우리 엄마가 일머리는 늘지 않는데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난 일이란 꾸준히 하다 보면 는다고 생각했었는데, 회사생활 경력 10년 차 과장 G가 곧 보일 행동을 보고는 동료 직원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겪어 보니 믿을 수밖에 없었던 동료 직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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