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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Oct 03. 2019

삼십육계 줄행랑

여덟 번째, 상사 이야기

어떤 때는 도망이 최선일 때가 있다. 하지만 저 혼자 살자고 다른 사람들 다 버리고 도망치는 사람을 보고는 뭐라고 해야 할까. 과장 G는 그런 사람이었다.     




회사는 2월이 다가올수록 더욱 바빠졌다. 실무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사장은 그 점을 고려하지 않고 들어오는 족족 주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과장 G의 일 처리는 더욱 복장 터졌다.     


내가 1월 납품일 건 주문을 모두 정리하여 그에게 넘겨주자 그는 그걸 참고로 실무자에게 작업을 분배했다. 물론, 납품일이 바쁜 것부터 덜 바쁜 것을 고루 분배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얼마씩 나누어 줄 뿐이었다. 참으로 속 터지는 사람이었지만 더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내가 1월 납품 건을 정리하는 동안 그에게 2월 납품 건을 정리해 달라고 했는데, 그의 책상엔 여전히 주문서가 질서 없이 쌓여 있었다.     


실무자들이 야근을 불사르며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뒤엉킨 작업 일정들로 인해 납품일에 맞추어 나가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고, 제때 나갔던 상품도 불량이 생겨 A/S 건이 들어와 사무실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그로 인해 과장 G는 매일매일 사무실과 공장을 오가며 불량품 처리를 해야 했고 그러고 나서 사무실에 돌아오면 힘들다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그렇게 멀거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출근하면 여전히 스케줄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일정이 꼬였고, 납품일에 문제가 생기고 다시 처리하러 뛰어다니다 힘들다고 사무실에 앉아 멍 때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일머리는 늘지 않는다.’는 동료 직원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확 와 닿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실무자 모두가 꾸역꾸역 버텨가고 있던 와중, 과장 G가 돌연 퇴사하겠다고 했다. 이번 달까지만 한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이 상쾌해 보였다. 함께하던 직원들 모두를 내버리고 혼자 도망가는 얼굴이 얄밉게 느껴졌다. 물론 그와 일한 기간이 짧았던 나는 ‘저게 뭐야?’하는 황당함이 컸지만, 여태 그를 믿고 1년 동안 함께 일했던 다른 동료 직원들은 그에게 황당함 이상의 배신감을 느꼈다.      


함께 일하던 동료 한 명은 어떻게 일도 제대로 해 놓지 않고 이렇게 바쁠 때 혼자 그만둘 수 있느냐고 내게 토로했다. 하지만 1년 동안 30명 가까운 직원이 입사했다 퇴사하는 이 회사가 나가겠다는 과장 G를 붙잡을 리 없었기에 어쨌거나 과장 G의 퇴사일은 착착 다가오고 있었다.     




퇴사 일을 받아 놓자 과장 G의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사회생활 새내기였던 나도 퇴사를 할 땐, 퇴사하는 끝까지 최대한 맡은 일을 다 마무리하려고 노력했고 퇴사를 하는 다른 사람들도 마지막까지 맡은 일은 마무리 지으려 했다. 물론, 퇴사를 앞둔 마당에 나갈 회사 일 해주는 게 꽤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지만 여태 함께 일했던 동료를 위해서라도 대부분은 그 번거로운 일을 했다.     


그런데 과장 G는 전혀 달랐다. 퇴사 선언을 한 그 날 이후 과장 G는 대체 사무실에 왜 와서 앉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책상 위엔 여전히 주문서가 쌓여 있는데 그는 자리에 앉아 핸드폰만 하염없이 쳐다보았고 업무 관련해서 물어보면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다.     


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수인계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사무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과장 G를 보고 있자니 저 사람은 어떻게 여태 직장 생활을 해 온 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실망스러운 행보에 1년 동안 그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렸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왜 자신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느냐고 툴툴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마지막 한 주를 휴가로 쓰며 이른 퇴사를 했다.     




어찌 되었든 상사라는 사람들도 다 사람이고 잘하는 분야와 못하는 분야가 있으니 모든 일에 완벽한 상사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이 회사는 회사 자체에도 문제가 많았기에 비단 과장 G만의 문제로 인해 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힘을 모으기는커녕 혼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무책임한 사람을 제대로 된 상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과장 G를 만남으로 인해 또다시 사회생활 뒷골목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되는 경험을 했지만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 만나면 100% 삶이 피곤해질 것이다.

줄행랑 치던 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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