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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보다 낮술 Jul 03. 2017

익명의 거리, 뉴욕에서 일주일 #17

Luke's Lobster FiDi


출근하듯 유람선을 타고 리버티 아일랜드를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돌아온 맨하튼 선착장은 기다리는 사람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침 일찍 나섰던 1시간 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다림이었다. 길게 늘어선 자유(의 여신)에 대한 갈망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선착장을 벗어난 우리는 월스트리트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오랜 유학생활과 최근 몇 년 전까지 월스트리트에서 일을 한 기억이 있는 친구는 알알이 박혀있는 추억들로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같았지만, 12년 전 잠시 스쳐 지나가는 기념사진과 영화 속 몇 장면만으로 이곳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그때처럼 인상적인 장면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빌딩 숲 사이로 작지만 높게 자리하고 있는 하늘처럼 조금 들떠있었다.











하지만 12년 전 월드스리트의 멋진 하늘을 그리던 아티스트는 이제 만날 수 없었고,  다른 어떤 퍼포먼스도 마주치지 못해 다소 맥이 풀려버렸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없었지만, 누군가 그 작품을 기억한다는 걸 느낀다면 그 자체로 멋진 교감이 아닐까? 예술가와 그 작품은 언제나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예술이 밥 먹여주나"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

내 속에 영 마땅찮았던 이른 아침 베이글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Luke's Lobster FiDi.

좁은 인도 앞에 세워져 있는 차 덕분에 나는 이상한 사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갓 잡아 올린 듯 한 올 한 올 결이 느껴지는 촉촉한 랍스터는 물론, Allagash Dubbel Ale이 머금은 풍부한 탄산과 과일향 청량감의 조화는 정말 말로 표현하지 못할 황홀한 맛이었는데. 

다만 양이 조금 부족했지만, 그 옛날 인상적이었던 아티스트를 다시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예술이 별건가? 이게 바로 예술이지"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주변의 직장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Luke's Lobster FiDi

들어오는 사람과 서로 문 열기를 양보하며 주춤하는 사이 OPEN이란 팻말 뒤에 적인 재치 있는 문구를 발견했다. 유머와 여유가 느껴지는 글이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순간이다.












Camera  :  Leica M9 / iphone 6

Lens  :  35mm Summicron 4th / 50mm Summilux 4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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