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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국보다 낮술 Jul 06. 2017

익명의 거리, 뉴욕에서 일주일 #18

Red Cube


빨간 장미향을 맡으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행복이다. 향기도 향기지만 빨간색이 주는 시각적 강렬함과 일말의 불안한 느낌이 묘하게 섞여, 생동감 넘치는 긴장감을 갖게 해서 특히나 좋다. 숙소를 나서자마자 자리하고 있는 큰 꽃가게 덕분에 뉴욕의 아침은 오랫동안 그렇게 기억된다.

뉴욕에서는 장미뿐만 아니라 유독 빨간색이 눈에 많이 띄는데, 그 빨간색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뉴욕의 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저 빨간색이라고 말할 것 같다.












월스트리트 근처를 떠돌며 붉은 큐브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더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조바심마저 내려놓았을 때 쯤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Isamu Noguchi의 작품 Red Cube.

실제로 보면서 드는 첫 생각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크다.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빨간색'

뉴욕의 거리를 걷다가 만나는 공공미술품 중 단연 인상적인 작품이다. 새빨간 큐브가 모서리 끝으로만 불안하게 박혀 있는 모습이 주위 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다가도, 위치를 옮겨서 바라보면 주변의 건물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선을 보여주기도 한다.














불안하게 유지하고 있는 균형속에서 한 방향으로 뚫려있는 통로는 또다시 대칭을 무너뜨리는 요소이지만, 불안함을 뒤로하고 통로로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감정이 느껴진다. 빨간색이 눈에 가득 차는 가운데, 회색 통로를 통해서 보이는 건물의 일부분과 그 유리에 비친 반대편 건물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면, 어느새 크기와 색깔, 불안함이 주는 위압감은 사라지고 나를 다른 차원의 뉴욕으로 이끌어줄 통로일 것만 같은 신비한 상상에 빠져들게 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조형물 아래로 거부감없이 스쳐지나간다. 마치 고양이가 친근함의 표시로 동거인의 다리를 스윽 휘감으며 지나가듯, 익숙한 이웃에게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140번지 마린 미들랜드 은행앞, Isamu Noguchi의 Red Cube>




















<Arturo Di Modica의 Cahrging Bull>









<Red Cube 근처에서 만난 또 하나의 조형물>









<뉴욕 증권거래소 맞은 편 Federal Hall National Memorial>








그렇게 한마리 외로운 고양이가 된 것처럼 월스트리트를 스윽 스윽 스치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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